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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내 생애 최고의 순간: 2008 전통주 행사 참석 후기 아! 내사랑 남도

2008/09/24 17:57     복사 http://blog.naver.com/yahoya31/40055325465

출처 Only stock, company, and his monologue | 카네사다
원문 http://blog.naver.com/sebian523/50030979217


그 전에 우선 짚고 넘어갈 사안이 있다. 
 

....속으로 대단히 당혹스러웠다. 내가 인정하고 있는 최고의 술인데 찾는 사람들이 없다니. 약간 기운이 빠졌다고나 할까? 솔직히 롯데마트에서도 문배주와 이강주가 한산소곡주보다 비싸게 팔리고 있다. 문배주 700ml가 28,200원, 이강주 1L는 32,600원이다. 소곡주 700ml짜리 13,300원에 비해 두 배 이상이다. 주류에 대한 수요 모멘텀의 1순위가 가격임을 감안하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백화점에서 상대적으로 값싼 소곡주 대신 문배주와 이강주를 들여놓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전에 작성한 글 중, 문배주와 이강주가 소곡주보다 비싸게 팔리고 있는 것에 대한 나의 어설픈 지식에 관해서다. 이들이 소곡주보다 비싼 건 당연한데 왜냐하면 알코올 도수가 40도이기 때문이다. 롯데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한산소곡주의 도수는 18도에 불과하다. 술은 증류의 과정을 거칠수록 알코올 도수가 올라가는데 그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추가 공정이 첨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수가 얼마이던지 간에 전통주는 그 도수에 걸맞는 가치가 존재한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도수가 43도에 달하는 한산소곡주를 마셔봤지만 오히려 도수가 낮은 18도짜리 한산소곡주의 맛과 향이 나한테 더 감흥을 주었기 때문이다. 증류 과정을 거치면서 도수가 올라가면 독특하지만 강렬한 향이 후각을 자극하는데 이는 희석식 소주에서 맡게 되는 거북한 공업용 냄새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향기다. 요새 진지하게 전통주 세계를 알아가면서 소주는 한방울도 입에 대지 않게 됐다. 이제는 희석식 소주의 냄새만 맡아도 속이 거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드디어 전부터 기대하고 고대하던 2008 전통주 행사에 참석했다.

 

 

전통주 행사가 열리는 남산골한옥마을에는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행사장 가는 도중 만난 커다란 연못. 나중에 연인과 함께 오면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우리나라 술의 역사는 대단히 오래됐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지금의 전통주를 빚고 마시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미 고조선 시대부터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발효문화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술의 역사는 우리나라가 開國되면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고구려는 발효의 나라라고 불릴만큼 당대에 술 빚는 기술이 크게 발달했다. 이러한 주조기술이 중국에 영향을 끼쳐 곡아주를 탄생시켰을 정도다. 고구려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酒神으로 추앙받고 있는 수수보리는 백제의 양조기술자였다. 이렇듯 우리나라 술의 값어치는 어떻게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무형가치라는 측면에서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 못지 않게 사계절이 뚜렷한 천혜의 기후조건을 갖고 있어 각 계절에 따라 술을 빚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통주는 보통 계절주로도 불린다. 각 계절에 맞는 음식과 술의 향연! 전통주 행사장을 함께 둘러본 절친한 투자친구 D군은 옛날에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푸념 아닌 푸념을 했다. 크게 공감했다. 

 

  

(강원도 술)                                        (전라도 술)

 

계절에 따른 다양한 전통주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 따른 자연환경의 특징에 따라 술의 종류도 달라지는데 강원도와 전라도를 비교해 보았다. 강원도는 산악지대의 특성에 따른 산짐승 위주의 안주와 복분자, 머루주 같은 전통주가 主를 이루었고, 전라도는 바다와 농지의 조화로 홍어와 같은 안주, 그리고 전주이강주와 같이 특색있는 전통주가 主를 이루었다.

 

특히, 전주이강주의 맛은 참 독특했다. 

 

입 안에 머무는 동안 은은하게 풍겨오는 계피향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은은함도 잠시일 뿐, 갑자기 코 끝으로 강렬하게 밀려오는 울금향이 참 인상적이다. 전주이강주가 전주지방의 전통주인 이유도 이 울금때문이라고 한다. 전주지방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울금을 재배해온 지역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소곡주의 맛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도 신기했다. 극명하게 대비된다고 맛이 안 좋은 게 아니라 이강주는 이강주 나름대로의 색깔이 있다는 것이다. 즉, 마시고 난 뒤의 감흥이 완전히 반대였다. 소곡주는 농도 짙은 끈적끈적함이 입 속을 맴돌아 한창 뜨거운 사이의 연인관계가 느껴졌다. 목구멍으로 넘기고 나서도 이런 끈적함은 계속되었다. 마시다보니 계속 마시게 돼 앉은뱅이가 되는 거처럼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그런 연인사이를 소곡주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의 시작인 것이다!

 

하지만 이강주는 반대였다. 계피향의 은은함과 배의 달콤함이 소곡주처럼 연인사이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지만 이것은 시작되는 연인사이의 느낌이 아니라 헤어진 연인을 아스라히 생각하는 짧은 추억의 느낌이었다. 강렬하게 코끝으로 전해지는 울금향, 하지만 목구멍 너머로 술을 넘기고 나서의 느낌은 은은함도 강렬함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멍한 공허함이 입 속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헤어진 연인은 잊어야 하는 것이다! 

 

참 기가 막힌 술들이다! 이런 다양한 술맛을 지금이라도 알게된 것에 대해 난 정말 행복한 놈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통주의 시음은 계속되었다.

 

  

D군과 여기서 많이 마셨는데 D군은 음양곽주에 대해 호평을 내렸다. 나도 맛을 보았는데 달콤한 맛이 여성들도 좋아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를 준비하신 아주머니들과 많은 얘기를 했는데 이렇게 전통주 시음행사를 연 것은 많은 사람들이 전통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실제로 집에서 빚으면서 즐겼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한다. 

 

예전부터 곰곰히 고민한 부분이 전통주는 대중성을 바탕으로 한 시장확장이 어려운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오늘 행사장을 둘러보면서 느낀 점은 전통주를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하는 생각이었지만 실상은 맛보고 싶은 전통주를 일반 술집에서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나 같은 경우도 한국전통주라는 전통주 도매총판에 가서 구입한다. 희석식 소주나 맥주에 비해 다양한 유통채널을 확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인데 그 근본적인 이유가 보통 9,000원 이상의 출고가를 감안하면 소비자판매가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희석식 소주가 보통 800원임을 감안하면 10배 이상 비싼 것이다! 따라서 정책적으로 전통주의 주세를 낮춰줌으로써 어느 정도 가격인하를 유인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석식 소주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결론은 전통주 분야는 사업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예술의 영역에 가깝다는 것이다. 사업의 마진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량생산 체제를 갖춰야 하지만 실제로 전통주에 매진하는 분들을 보면 투철한 장인정신에 입각해 아무 재료나 함부로 쓰지 않는다. 값싼 재료 투입을 통한 원가절감이 아니라 최고의 술을 만들기 위해 오로지 최고의 원재료만 갖고 술을 빚고 있다. 대량생산이 불가능할뿐더러 이에 따른 마진확장은 택도 없다. 사업의 상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영역인 셈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도 전통주 시음은 계속되었다. 위 술은 언젠가 맛보고 싶은 구기주다. 신선주라고도 불리는데 맛에 대한 평가는 나중에 하고자 한다. 이 술은 단지 전시용으로 놓여있어서 이 술 주위를 얼마나 맴돌았는지 모른다.

 

 

 

오늘 행사의 하이라이트다! 막걸리 내리기! 저 노란 빛깔을 보라! 우리나라 술의 기본재료는 딱 세 가지다. 곡물, 누룩, 물 등 이 세가지가 전부다. 정말 놀라울 뿐이다. 어떻게 이 조합에서 그렇게 다양한 술들이 나올 수 있는지 경이롭지 않은가? 실제로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재료를 갖고 술을 빚어도 맛이 다 다르다고 한다. 발효되는 과정에서의 온도 등 외부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오는데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술을 빚는 그 시점에서 술 빚는 사람의 마음가짐때문이라고 한다. 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항상 정성스러운 조심스러운 마음가짐으로 빚어야 술맛이 좋게 나온다. 일말의 나쁜 감정들, 예를 들면 시기심, 증오심 등의 감정이 조금이라도 마음 속에 남아있다면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술을 빚었다고 해도 술맛에는 쓴 맛이 베어있게 된다고 한다.

 

아무튼 노란 첨가물을 섞은 거처럼 짙노란 색의 막걸리는 놀랍게도 발효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색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섞지않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색인 것이다. 그 맛은? 난 그 자리에서 10잔을 마셨다. 알코올 도수가 8도라 그리 높진 않지만 달달한 새콤한 맛이 사정없이 나를 정신없게 만들었다. 같이 마신 D군도 이런 평가를 내렸다.

 

....형? 여태까지 술 헛 마신거네요..이런 좋은 술 놔두고 지금까지 뭐했는가 싶습니다....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었다. 자진해서 내가 술 빚는 것을 도와주었다. 차갑게 느껴지는 술찌게미의 감촉이 무더운 날씨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고, 꾹꾹 눌러줄 때마다 밑으로 빠지는 시원한 막걸리가 갈증까지 없애주었다. 아주머니가 수고했다고 계속 막걸리를 따라주었다. 

 

 

 

어느 정도 행사장을 둘러본 후, 근처 전통주점에서 D군과 술 한잔 했다. 한옥의 운치가 느껴지는 나긋한 오후였다. 날은 더웠지만 한옥 내부는 시원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여기서 판매하고 있는 술은 상업적인 냄새가 묻은 술이었다는 것이다. 맛의 깊이와 농도가 아까 시음장에서 아주머니들이 손수 빚어서 주었던 술과 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그나마 파전이 맛있어서 넘어갔는데 이렇듯 나는 점점 전통주에 빠져들고 있었다.

 

오늘의 이 경험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게 어떻게 구체화될 지 모르겠지만 막연하지만 또렷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저녁도 전통주와 함께 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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