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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의 관점에서 사회를 분석하고 의제를 발굴하고자 하는 공부모임 <화쟁> 첫모임이 9월 11일 8시부터 10시까지 장충동 한살림 교육장에서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모이시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1. 발제: 처음에는 발제를 맡으신 주요섭님이 김형기 편저의 <대안적 발전모델>이라는 책에서 두 개의 논문(김형기의 “대안적 발전모델의 비전: 새로운 경제질서를 향하여”, 그리고 홍태희의 “여성들이 만드는 참살이 경제의 가능성: ‘보살핌의 경제론’”)에서 제시된 두 가지 대안적 모델을 정리해주시고, 덧붙여 지난 사회포럼에서 강남훈 교수가 발표한 “신자유주의 대안의 정치”라는 논문에 제시된 논의도 부가적으로 정리하여 발표해주셨습니다. 발제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김형기는 ‘대안적 발전모델’, 홍태희는 ‘보살핌의 경제’, 강남훈은 사회주의로 가는 과정에서 ‘연대사회’를 대안적 모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다음의 표를 참조해주세요).
대안적 발전모델 |
경제 - 민주적-지식기반 시장경제 / 사회패러다임 - 참여-연대-생태 |
보살핌의 경제 |
경제의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가 아닌 조화로운 삶(넓게는 생태계) |
연대사회 |
베네수엘라를 모델삼아 참여사회주의(사회적 소유, 국가의 사멸 등) |
2. 논쟁: 주요섭님의 발제 이후에 자유롭게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논의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했습니다. 완전한 녹취가 아닌 메모 수준이라 논의가 매끄럽게 읽히지는 않겠지만 어떤 논의들이 있는지 짐작하시기에는 충분할 듯 합니다.
- 주요섭: 이 논의들을 보면서 공부가 많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김형기가 제시하는 대안적 발전모델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 생태지역주의를 가져가야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김형기는 성장연합에 대항하여 참여-연대-생태의 헤게모니 블록을 형성해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성장연합에 대해 무지개 연대(생태주의와 사회주의)를 형성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대안이 아닐까?
- 정규호: 발제한 내용에서 제시된 대안적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델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규범적인 방향은 있는데 실제로는 어떻게 가야하는지에 대한 전략이 없다. 대안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상황은 맨땅에 헤딩한 것과 같다. 모델도 없다.
그리고 강남훈님처럼 베네수엘라에서 배우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궁금한 것은 베네수엘라의 성공 이면에는 석유의 힘이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그러한 실험을 할 수 있는 물적 자산이 있는데 그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민중의 힘만 이야기 한다는 것은 공허한 것 같다. 또 김형기가 참여․연대․생태를 사회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는 것이 약간 뜬금없다. 이 주장이 이명박의 녹색성장과 어떤 차이점을 가질까? 여기서 말하는 생태는 사실은 생태효율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 주요섭: 김형기님은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요소들을 결합시킨 것 같다.
- 이규원: 지식기반 경제는 기본적으로 혁신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에 호봉에 따라 균일하게 임금을 배분하는 연공서열제가 아닌 능력에 따라 임금을 받는 연봉제를 도입했다. 이러한 제도는 포드주의 시대와는 달리 노동자들에게 균일한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는 기반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안적 모델로 지식기반 경제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참여나 연대를 사회적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현실을 너무 고려하지 않는 넌센스 아닌가?
- 정규호: 지식기반 경제에서 말하는 지식은 오직 경제를 뒷받침하는 종류의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자기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과 같은 다른 종류의 지식은 배제되어 있다. 생명평화의 관점으로 경제를 본다고 할 때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지금 시점에 다시 되새겨볼 수는 없을까? 지식은 인간다움의 실현의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닐까?
- 이규원: 지식기반 경제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러한 경제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담론이 갖고 있는 효과가 문제가 된다. 예를 들면 이러한 담론들은 이제 우리는 예전의 산업노동자와 같이 동일한 노동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지식과 정보를 끊임없이 습득하고 자기를 혁신하는 지식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평생 기술 변화를 끊임없이 쫓아가야 하는 프로그래머와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인 지식노동자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담론은 기업이 노동자를 교육해야 하는 고비용을 자기계발이라는 스스로의 책임 하에 노동자 각자에게 그 비용을 떠넘기는 아웃소싱 전략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진천: 지식정보화 담론을 주장하는 시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요즘에는 지혜라는 단어는 안 쓴다. 예를 들면 귀농에 대한 지식은 많이 있지만 그에 대한 지혜는 그곳에 가서 살아봐야 알 수 있다. 지혜에 대한 더 근원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 정규호: 보살핌의 경제에서 좀 걸리는 부분이 있는데, 첫 번째는 경제행위의 이유가 욕구와 욕망의 충족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공공재를 대가없이 이용한다는 점이다. 욕구와 욕망은 무제한적인데 그것을 제한 없이 충족시키려고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그리고 공공재는 대가 없이 사용한 것인가?
- 주요섭: 생명력의 발현이 욕망의 충족이라는 점에서 경제행위의 이유가 욕구의 충족이라고 표현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리고 공공재는 공기와 물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 이규원: 현재 우리가 곤란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느끼는 가장 큰 문제점은 윤리를 빼앗겼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향해온 자율성, 창조성, 자기조직화와 같은 말들은 어떤 면에서 현재 자본주의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자본주의는 단순히 경제를 통해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일정한 윤리를 내세운다. 요즘 기업들은 근면하고 성실한 노동자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노동자들을 원한다. 결국 기업은 개인이 구태의연한 노동형태를 벗어나 자율적이고 창조적으로 노동해야 한다는 윤리를 주장하면서 그를 통해 이윤을 갖고 가는 것이다.
- 김정지현: 팀블로그에 올린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라는 글에서도 운동이 자기 언어를 빼앗겼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 주요섭: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되찾기 위한 정치 투쟁이 필요하다. 지식정보자본주의의 왜곡된 발현을 폭로하고 원래의 의미들을 사회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저항이며 정치이다. 그 이후 대안으로 예를 들면 고진은 소비자의 연대 혹은 어소시에시션의 어소시에이션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우리로 따지면 생협 모델이나 협동 경제가 될 것이다.
- 이진천: 언어를 되찾아오자. 그것이 공명이 해야 하는 역할일 것이다.
- 정규호: 그렇다면 담론투쟁을 어떻게 잘 할 수 있나? 작지만 보여줄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 작은 현장을 발굴하고 엮는 것도 공명의 역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