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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식이나 엄숙함 대신 유쾌한 몰두 혹은 한눈파는 해찰. 지난 7월26일 저녁 ‘매개공간 미나
리’에서 <아트플랫폼-토요일 밤의 열기속으로> 행사가 열렸다. |
ⓒ 남신희 기자 |
그 골목 앞에 이르러 문득 발걸음이 부산해진다. 설렘이 이끄는 속도다.
지난 7월26일 토요일 저녁 8시.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이 행사를 몹시 고대한 듯한 사람들이 어스름 속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동네 산보 나온 양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 끌고 나가도 흉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
광주 대인시장 건너편에 자리한 ‘매개공간 미나리’(줄여서 ‘매미’)에서 <아트플랫폼-토요일 밤의 열기속
으로> 행사가 열렸다. 이른바 ‘매미시장 제3탄’. 지난 5월25일 개관기념 장터의 맛을 본 사람들에게 매미
시장은 한 달에 한 번, 달력에 동그라미 쳐둘 약속으로 자리잡았다.
낮에는 주차장인 앞마당의 즐거운 이중생활이 시작된다. 가격대 5만원 안팎의 작품들과 손때묻은 재활용
품들의 전시판매장이자 작가들의 다양한 몸짓과 시도를 담는 마당이 되는 것.
마당이라는 것이 그 비정형의 덕목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변주해내듯 의자 없는 이 공간은 자기 식대로
누리기를 스스로 결정짓는 자유로움을 보장하고 있다. 비움이 이뤄내는 채움이 있다.
프로그램에 충실해도 되지만, 무대가 중심의 권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격식이나 엄숙함 대신 유쾌한
몰두 혹은 한눈파는 해찰.
매미시장이 열릴 때마다 찾았다는 이선미(‘발해디자인’ 대표)씨는 “광주에는 이런 공간이 없지 않았나”
라고 반문하며 “다양한 장르가 한데 결합하는 것도 재미있고 상업적 소비와는 또다른 장터, 이야기와
만남이 있는 장터라 좋다. 그래서 분위기 자체가 생동감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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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신희 기자 |
구도심 스러져가는 창고에 숨결 불어넣고
그 곳엔 ‘역전’의 즐거움이 있다. 낮에는 주차장인 장소를 밤에는 축제 마당으로 역전시키듯, 전시장도
애초의 태생은 창고였다.
구도심의 스러져가는 이 창고에 ‘살림’의 숨결을 불어넣은 건 새로운 공간, 새로운 소통에 대한 열망을
지닌 지역작가들이었다.
‘매미’의 탄생에 중심 역할을 한 박성현(롯데화랑 큐레이터)씨는 ‘같이 놀기’의 힘을 믿는다. “퇴행적인
미술권력이나 기존 틀에 기대지 않고 ‘지역에서 작가로서 산다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 소통하고 판을 벌일 구심점이 필요했다”며 “자발적 에너지들이 모여들고 있는 만큼 즐거운 결과물을
쏟아낼 것”이라고 말한다.
‘매미’를 이끄는 운영위원회에는 박성현·윤준(신세계갤러리 큐레이터)·김정삼(옥과미술관 큐레이터)씨를
비롯 윤남웅·김상연·이정록·조광석·양문기·신호윤·조정태·마문호·박일구씨 같은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처음부터 팔 걷어부치고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작가들은 물류창고였던 이 공간의 ‘본색’을 지우지
않았다. 낡은 나무창틀이나 높은 천장이나 슬레이트 지붕 같은 요소들을 버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끌어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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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25일 개관기념 ‘매미시장’ 모습. |
ⓒ 남신희 기자 |
때문에 시간이 축적되고 지난 삶의 흔적이 배인 전시장이 됐다. 제 나름의 이야기를 거느리고 있으되
또다른 새로운 것들을 품을 수 있는 포용력 있는 공간. 네모난 평면의 느낌이 아니라 그 안에 예기치 않은
굴곡이나 다양한 선들을 거느리고 있는 점도 전시공간으로서 매력적이다.
거친 듯 미완성의 느낌은 매끄러운 공간이 지니기 십상인 심리적 문턱을 없애는 동시에 이 곳이 계속
생성·변화해 가는 가능성의 공간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전시공간 미나리의 출생을 알린 첫 전시는 ‘자/발/적 영역표시 릴레이전-滿새(사이)’였다.
작업을 이어간 작가 6명(정운학·이호동·임남진·장호현·주라영·조광석)은 실·종이배·장갑 등 서로 다른
소품으로 각자 영역을 표시하고 자신이 표시해놓은 영역 안에 작품을 배치했다. 개관전에 어울리는
공간 탐색이자 작가들마다의 개성적인 공간 해석을 만날 수 있는 전시였다.
젊은 작가가 아니라 ‘젊은 생각’을 가진 작가, 새로운 실험과 새로운 작업이 ‘매미’가 지지하고 응원할
대상. 전시는 연 4회 정도로 계획하고 있다. 대신 작가토크쇼, 외부프로그램 공모, 다양한 형태의 아트쇼
등을 꾸준히 꾸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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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26일 열린 '매미시장' 풍경 중 하나. |
ⓒ 남신희 기자 |
작가-관객 간 만남과 교류의 마당으로
‘매미’를 구별짓는 장점은 작가들의 적극적 참여다. 작가들은 전시 주체일 뿐 아니라 관객들과의 만남이
이뤄지는 마당에서는 공연자가 되기도 하고 이야기손님이 되기도 한다. 또 자신 역시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마당을 누린다.
지난 7월26일 열린 매미시장은 광주에 체류중인 네팔·태국작가들이 광주 시민들을 만나는 자리와
인도춤 공연, 타악퍼포먼스 등으로 꾸려졌다. 작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장으로 ‘스크린 리포트’도 펼쳐졌다.
안톤 숄츠(조선대 교수)씨는 동남아 곳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담은 영상물을 통해 행복의 잣대란 돈이나
물질에만 있지 않으며 삶의 가치는 다양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미디어 아티스트 박상화씨는 작고 하찮아 보이는 들풀의 생명력과 미국 쌍둥이빌딩이 해체돼 파편으로
흩어져 날리는 장면을 대비시키며 거대한 욕망의 보잘것없음을, 생성과 소멸을 이야기했다.
북구문화의집 정민룡씨는 학생들과 함께 말바우시장에서 진행했던 <미세스 말바우> 작업의 의미를
영상으로 소개했다. 이기고 지는 경쟁만이 전부일 것 같은 게임을 협동의 놀이로 전환시킨 작업과정과
지역 사회에 아이들이 어떻게 스며들어가고 어떻게 관계맺기를 해나갔는가의 보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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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개공간 미나리’ 전시장 안. 원래 창고였던 이 공간의 ‘본색’을
지우지 않아 시간이 축적되고 지난 삶의 흔적이 배인 전시장이 됐
다. |
ⓒ 남신희 기자 |
‘매미’는 개관 이래 작가와 관객간 대화의 자리로 ‘∼만말 토크쇼’도 몇 차례 진행했다.
‘∼만말’은 ‘∼만’과 ‘만가지 말’이란 이중적 의미. 하나의 주제에 대한 집중이기도 한 동시에 자유롭고
풍요로운 말잔치를 의도한다.
토크쇼에 참여했던 작가 임남진씨는 “작품을 중심에 두고 공적인 자리에서 발언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관객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 많았다. 작가로서 긍정적 자극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관람객의 입장에서도 작업 결과물만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게 아니라 창작의 과정을 공유하며 작가와
이어지는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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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신희 기자 |
생활과 예술, 시장과 전시장을 이으려는 꿈
‘매미’는 복합상영관에 밀려나 문닫은 계림극장, 시들어가는 기운 어쩌지 못하는 대인시장을 끼고 있는
위치다. 자본에 치이고 중심에 밀려나는 약자 혹은 변두리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는 천원샵이랑 좌판들이 자리해 있다. 생활과 미술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을 것
같다.
‘대안공간’ 대신 ‘매개공간’이란 이름을 내건 것도 그러한 ‘장소성’과 관련 깊다. 떨어져 있던 것들의
‘거리 좁히기’. 친해져야 할 사이들, 다리 놓아야 할 사이들은 많다. 생활과 예술, 작가와 관람객,
시장과 전시장….
‘매미’의 큐레이터 최윤정씨는 “기존의 대안공간은 전시공간으로서의 역할에만 자족하거나 스스로가
또하나의 권력기관화 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며 “매개공간을 지향하는 미나리는 ‘안’으로만 갇히지
않고, 자신이 자리잡은 장소성을 바탕으로 ‘현장’과 ‘(전시장)바깥’을 한데 고민하려 한다”고 말한다.
일단 그 현장은 이웃인 대인시장이다. 어느 날 뚝딱 몰려들어 장소만 물리적으로 취하는 이벤트가 되지
않도록, 팀을 꾸려 대인시장 상인 인터뷰나 시장 현황조사 등 밑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렇게 시장 사람들과 사귀고, 시장을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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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신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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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신희 기자 |
‘매미’의 지향성에 동의해 선뜻 광주 생활을 선택한 그는 평택대추리현장미술 아카이브 작업 코디네이터,
대구시립미술관 시공기념전인 ‘아트인 대구’ 전시코디네이터 등으로 활동했다. “매미에서 이뤄지는
작업들이 우리끼리의 잔치가 되지 않도록, 지역 속으로 실핏줄처럼 퍼져나갈 수 있도록 애쓰겠다”고 한다.
이번 제7회 광주비엔날레에서 대인시장을 무대로 ‘복덕방(福德房)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박성현 큐레이터는 시장의 매력과 가능성에 주목한다. 시장의 거래가 지닌 온기와 인정,
물건과 돈만이 오가는 것이 아닌 관계의 축적을 미술에도 활용하고자 한다. 비엔날레 개막에 앞서
9월3일 오후 6시 대인시장 안에서 전시를 미리 맛보는 잔치를 연다.
일회적 행사나 작업에 그치지 않도록 시장 내 빈 점포들을 이용한 입주작가 프로그램 등도 구상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중흥3동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던 그는 현장미술에 관심이 많다.
“작업과 삶이 따로 분리되지 않고, 삶 속에서 작업을 이야기하고 펼치고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시장과 예술과 일상이 짬뽕처럼 맛있어지길, ‘미나리’한테 주문해 본다. 진창 속에서도 푸릇한 맛을
알뜰히 키워내는 미나리 아닌가.
*문의 062-433-4960, 홈페이지 www.memispace.org
매개공간 ‘미나리’ 후원하실 분: 후원계좌번호 광주은행 010-121-7519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