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이라는 단어는 왠지 낯설고 두려운 이미지로 떠오른다. 땅인지 물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진창에, 만약 무언가 빠지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삼켜버릴 것만 같다.
그러나 늪은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다. 오랜 세월 물이 고였다 흐르기를 반복하면서
생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안식처를 만들어 주고, 영양분이 풍부한 삶터가 돼 주었다.
습지 보전을 위한 람사르협약 총회 개막을 계기로, 책꽂이에서 묵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우포늪’이라는 책을 꺼내들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우포늪의 사계와 그 안에 목숨 붙여 살아가는 생명들의
생생한 사진이 가득한 책이다.
초록융단처럼 깔린 물풀들과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물안개, 백로 무리가 날아가는 풍경들은
원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순식간에 무한의 세계를 열어준다.
수면을 뒤덮은 가시연이 강렬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여름, 자오록한 안개 사이로
장대나뭇배를 저어가는 어부의 모습이 신비로운 가을,
북녘의 철새들이 사랑의 몸짓을 하고 먹이를 찾아 비상하는 겨울…
우포의 사계는 언제나 푸르고 싱그럽다.
우포늪의 동식물은 물론 늪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우포를 노래한 시편들까지
구성이 알차다.
거기에다 우포늪 주변의 늪과 람사협약, 새들이 즐겨찾는 곳까지 꼼꼼하고
친절하게 해설해준다.
그런데 수면 면적만 70만 평에 이르는 이 거대한 습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억4000만 년 전 공룡들이 이 땅을 누비던 때, 빙하가 녹으면서 낙동강의 물이
범람하자 이때 실려 온 모래와 흙이 지금의 토평천 입구를 막게 되었단다.
이 때문에 커다란 호수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여기에 세월의 흐름이 보태져
지금의 우포늪이 되었다고 한다.
`우포늪엔 공룡 똥구멍이 있다’(손호경, 푸른책들)는 동화의 상상력이
어디서 연유했는지 이해되는 지점이다.
한편 우포늪에는 100살이 넘은 잉어가 살고 있는데,
보통 잉어와 달리 비늘이 검은색을 띠고 늪바닥에 몸을 숨겨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단다.
우포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이 잉어가 죽거나 다치는 날에는 나라에
큰 어려움이 닥칠지도 모른다고 여겨 주민들은 늪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전설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포늪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하고 그리워하게 만드는 힘,
습지 생명들의 생생한 기록들이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선물한다.
아무쪼록
“자연을 자연에 맡긴 하늘 뜻은 초록이다
우리 잠시 머물다 떠나야 할 길손일 뿐
자라풀 가시연잎 쇠물닭을 띄워놓고
섭리라 여기며 옷깃 여밀 일이다.”
(이상범 시)
정봉남
<`냉이꽃 피는 글방’(cafe.daum.net/4ugulbang) 운영·아이숲어린이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