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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 생명의 근원이자 인간 문화의 발원지
《습지와 인간》 김훤주 지음, 산지니
남신희 기자  
    
                                             

                                               전라도 닷컴

추천사를 쓴 서정홍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그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을 남에게 미루지 않고 늘 자신의 몫으로 감당해온 사람이다.

그래서 대학시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고 졸업 후에는 ‘현장’에 투신, 98년까지 12년 남짓 창원·마산에서 노동조합 운동과 진보정당운동, 지역운동을 했다.

99년부터는 도민 주주 6000여 명의 참여 속에 창간된 경남도민일보에서 기자로 일해오고 있으며 현재 전국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 지부장을 맡고 있다. 그는 김훤주(45) 기자다.

최근 펴낸 《습지와 인간》(산지니)도 ‘그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의 범주에 들 것이다. 경남 일대의 내륙습지와 연안습지, 산지습지를 두루 그리고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그 결과 책 제목은 다른 수식이나 설명이 끼여들 필요도 없이 간명하게 ‘습지와 인간’이 됐다. 저 멀리, 우리 일상의 외곽에 있을 것 같은 습지를 인간 옆에 데려다 놓음으로써 그 거리를 바짝 붙여 놓는다. 미처 알지 못했을 뿐, 둘 사이는 그렇게 가깝다.

경상도 소벌-우포와 전라도 배들-이평의 잘못
습지의 대표처럼 이름난 곳 중에 창녕 우포늪이 있다. 하지만 그는 ‘우포’라 부르지 않는다. 그에게 그 곳은 다만 ‘소벌’이다.

우포와 소벌을 놓고 그가 전라도닷컴에 썼던 글을 기억한다. 그는 ‘경상도에서 온 편지’의 필자로 전라도닷컴과 오랜 연을 맺고 있다. 이번 책에도 그 글은 <경상도 소벌-우포와 전라도 배들-이평의 잘못>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소벌이 왜 소벌이냐 하면, 땅 모양이 꼭 물을 먹으려고 목을 길게 뺀 소대가리처럼 생겼기 때문. 그런데 환경단체 사람들이 대대로 불려져온 원래 이름 소벌 대신, 공문서에밖에 있지 않은 행정용어인 우포로 잘못 쓰는 바람에 국제기구인 람사르협약에도 우포로 이름이 오르고 말았다고. 우포라 하면 소벌의 지리적 특성을 그대로 일러주는 역할을 하기 어렵고 또 소벌이란 말을 줄곧 써온 지역 주민을 소외시키기 쉽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알기 쉬운 토종 땅 이름들이 밀려나는 현실과 관련 그는 전라도에도 이같은 일이 많을 것이라며 전북 부안군 이평(梨坪)평야와 이평면을 보기로 들고 있다. 동학혁명 당시는 물론 그 뒤에도 사람들은 이평이라 하지 않았다 한다. 정읍천과 태인천이 합해져 동진강을 이루는 만석보 자리까지 물길 따라 배가 들어왔다 해서, 배들이라 했다. 그런데 일제 때 행정관청에서 배밭이라는 뜻으로 잘못 이평(梨坪)이라고 하는 바람에 그렇게 굳어지고 말았다는 것.

그것이 말이든 사람살이든 “잘못된 일은 서로 힘과 뜻을 모아 어떻게든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그가 지켜온 삶의 방식이다.

▲ 주남저수지.

경남 일대 내륙습지와 연안습지, 산지습지 두루 들여다봐

10∼20년 전까지만 해도 버림받은 땅으로 치부됐던 습지는 이제 생명이 움트는 자궁, 생물 다양성이 살아있는 생태계의 보고로 떠오르고 있다. 또 홍수와 가뭄을 조절하는 자연저수지에다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터전이면서 생태관광지로도 값어치가 매겨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그는 습지란 그 자체로 고립돼 존재하지 않고 사람에게도 소중한 보금자리이며 사람살이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인문과 역사로 습지를 들여다본 이 책이 첫걸음을 창녕 비봉리 신석기시대 습지 유적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는 이유다. 비봉리에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배경은 습지의 높은 생산성(생물 다양성)과 손쉽게 옮겨 다닐 수 있는 조건 등에 있었다. “언덕배기(구릉)만 발굴을 하니 ‘옛날 사람은 구릉에 살았다’는 발표만 나온다”(이상길·경남대 역사학 교수)는 꼬집음도 있지만 요즘 들어 ‘마른’ 땅  아닌 ‘젖은’ 땅 습지에 쏠리는 고고학 쪽의 관심은 크게 높아지고 있다.

그는 낙동강 범람이 만들어낸 다양한 내륙습지들뿐 아니라 사천 광포만·고성 당항만·하동 갈사만 등 남해 갯벌지대의 연안습지, 신라 왕자의 한센병을 여기서 나는 약수로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밀양 재약산 산들늪과 지율스님의 고투가 담긴 양산 천성산 화엄늪 등의 산지습지도 둘러보았다.

여태껏 습지의 역사는 인간에게 망가져온 역사이기도 했다. 개발, 개간, 매립, 건설 등 온갖 이름과 형태로 습지는 사라져 가고 망가져 가고 있다.

그는 습지를 관광지로만 여기는 지자체의 접근법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창원 주남저수지의 경우 사람들이 물가로 내려가 새를 볼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철새들을 내몰고 있다. 새가 없는데 어떻게 관광지가 될까. 그러므로 답은 “사람을 불편하게 해야 한다”는 말에 있다.

또 그는 ‘습지’로서의 논의 가치를 제대로 매기자고 말한다. 논은 물을 머금고 지하수를 만들어내고 기온을 낮추며 홍수 예방 구실까지 하는 ‘인공’습지로, 앞으로 더욱 소중하게 다뤄야 할 공간이라는 것.

하동 술상마을 갯벌, 논의 물길과 갯벌의 물길이 하나로 이어져 있는 풍경을 본다. “이처럼 이어져 있음이 생태계에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이 책 역시 습지와 인간의 ‘이음’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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