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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의 생명권소송이 갖는 의미
-도롱뇽소송의 문명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정호
(초록공명생명문화센타 상임이사)
1. 들어가며 - 지율스님은 누구인가
'천성산 공사' 중단요구, 350여일 단식...
경남 양산 천성산 내원사에서 수행하던 지율스님은 2001년 천성산의 습지가 관광지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훼손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2003년부터 경부고속철도의 천성산 터널 공사를 중단하고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라며 도롱뇽소송운동을 시작했다.
2002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후보가 경부고속철천성산관통노선의 백지화를 약속했지만 공약을 이행하지
않자, 2003년 2월 부산시청 앞 단식(38일)을 시작으로, 같은 해 11월 2차 단식(45일), 2004년 6월 3차
단식(58일), 같은 해 10월 4차 단식(100일), 2005년 9월 5차 단식(약 100여일) 등
모두 350여일을 굶었다.
지금도 조선일보·동아일보를 상대로 왜곡 보도를 바로잡으려는 '10원 소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채, 경북 영덕 산골에 살고 있다.
2. 꼬리치레도롱뇽은 왜 법정에 섰는가?
- 법정에 선 꼬리치레도롱뇽의 가상 인터뷰(지율, 숲에서 나오다 209쪽 참조)
“인간들이 살고 싶다면 나부터 살려야 한다는 걸 알려 주고 싶어서예요.”
“인간들은 우리들을 1급수 환경지표종으로 분류하고 있죠. 그건 우리가 비교적 수온이 낮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동족의 수가 줄어들면 그만큼 환경이 오염됐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예요. 그런데 지금 동족의 수는 절반으로 줄었고 우린 법적 보호양서류 1호로
규정돼 보호를 받게 됐죠.
그런데 인간들이 개발을 명분으로 산간도로 등을 진행하면서 토사가 계곡으로 유입되고 농약, 오물투기 등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산하가 오염되고 대기오염으로 산성비가 내리면서 우리들의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죠.”
“특히 도로공사는 육지와 물을 이동하며 사는 우리의 이동경로를 절단시키는데 이게 아주 무서운 거예요.”
인간들은 이런 끔직한 일이 우리 꼬리치레도롱뇽만의 일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요. 생태계는 상호 유기적 관계에 놓여 있는 것 아닌가요.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인간들이 살아 갈 공간이 점점 사라져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은 생명들의 죽음이 결국 인류의 명을 재촉하는 일임을 정말 모르는 걸까요?
이번 소송은 천성산의 도롱뇽들만이 아니라 새만금의 갯지렁이, 백합 그리고 전국의 하천에 숨죽이고 살고 있는 수달친구들을 대신해서 용기를 낸 거죠.“
“솔직히 인간 법정에 가기로 결심한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지율스님의 큰 도움이 있었지요.
그분이 오셔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분의 목숨을 건 단식을 통해 우리만이 아닌
인간의 생명까지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꼭 승소할거예요”
“만약 제가 원고 부적격 판정으로 법정에 서지 못한다 해도 도 다른 친구들이 계속 소송을 하고 법정에
설 테니 언젠가는 승소할 거예요.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승소합니다.”
3. 지율스님의 도롱뇽소송에 대한 입장
(2005년 6월 22일 세계여성학대회 기조연설 "초록공명과 에코페미니즘“ 참조)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자연물이 지구가족이라는 보편적인 세계관과 윤리관 그리고 생명관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이 보편적 진리는 급격히 훼손되어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는
생각은 매우 고루하여 보이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것에 아무런 저항을 느끼지 않으며
인류전체의 운명을 위협하고 있는 환경문제에 실제 위험을 느끼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천성산이라는 아름다운 늪과 계곡이 있는 산을 통과하는 16km의 터널공사반대운동은 우리사회의 다양한
집단의 이익과 가치관이 얽혀있는 복잡한 사건이나, 이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41만의 친구들이
도롱뇽의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문명사적 운동입니다.
이 소송은 한 생명의 생멸은 지구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그 영향은 인간에게도 미친다고
하는 단순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소송을 통하여 인간만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발과 성장위주의 정책이 아름다운 땅과 뭇생명을 죽이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미래를 위해 보다 생태적인 생명관과 세계관을 열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말하고자 합니다.
도롱뇽이야기는 지난 50년 동안 양서류의 32%가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렸다고 하는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지구환경지표종이라 부르는 양서류의 32%가 사라져버렸다고 하는 이야기는 우리의 환경 32%가 사라졌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생태계의 하위 포식자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공룡의 멸종 원인처럼 생태계 전반에 걸쳐 큰 위험이 됩니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아토피 자녀를 둔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이 원인 모를 문명병의 치료를 위해 오랫동안
그 원인을 연구했던 아이의 부모님들은 마침내 자신의 아이가 아픈 것은 지구의 아픔이 아이를 통하여 일어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자신이 살아왔던 생활습관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자연의 경고에 이 아이의 보모님처럼 겸허하게 귀 기울여야합니다. 우리가 작은 생명에게 까지 마음을 회향 할 수 있을 때 개인적인 평화와 지구적인 평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우리가 도롱뇽소송을 제기하는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50년 동안 지구 환경의 60%가 파괴되어 이제 지구환경시계가 3시간 밖에 남지 않은 엄중한 시점입니다.
이제 우리의 선택은 개발이냐 보존이냐가 아니라 이제 더 이상 한발자국도 이대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하는 자연의 경고에 대하여 대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4. 도롱뇽소송은 어떻게 되었는가?
2006년 6월 2일 한국의 대법원(제3부 주심 김영란대법관)은 양서류 ‘도롱뇽’과 환경단체인 ‘도롱뇽의 친구들’, 천성산 내 사찰인 내원사와 미타암이 한국철도시설공단을 상대로 낸 공사착공금지 가처분 신청 재항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먼저 “피신청인은 고속철도 건설에 있어 자연환경을 보호해 그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나아가 후손에게 이를 물려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피신청인은 환경영향평가 후
종전에 고려되지 않았던 새로운 사정이 발견돼 환경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개연성이 나타나면 새로이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거나 환경이익의 침해를 예방할 수 있는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또 “신청인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단층, 지하수 등으로 인한 안전성의 위협 염려 및 천성산
일원의 습지들과 자연환경 보호 등이고 이에 관해 최초의 환경영향평가서에 반영되지 않았던 새로운
사정들이 발견된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나 비록 새로운 사정들이 발생됐다 하더라도 새로운 환경영향평가에 준하는 조사가
이뤄지고, 적절한 방법이 보완됐다면 더 이상 사업시행의 중지를 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피신청인은 신청인들이 주장하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대한지질공학회 등에 의뢰해
자연변화 정밀조사를 실시했고, 그 조사결과 및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등의 검토의견에 의하더라도
터널공사가 천성산의 환경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어 “피신청인은 대안설계 단계에서 신청인측이 문제 제기한 단층대 등의 지질적 특성을
파악해 설계 및 공법에 반영한 만큼 현재로서는 터널공사로 신청인들의 환경이익이 침해될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신청인들은 헌법상 기본권인 환경권을 근거로 개인이 직접 공사중지를 청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재까지는 공사중지를 청구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 학설과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라며
“따라서 환경권에 관한 헌법조항이나 자연방위권 등 헌법상의 권리에 의해 직접 피신청인에 대해
고속철도 일부구간의 공사금지를 청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이 사건 신청인 중 하나인 동물 ‘도롱뇽’의 소송당사자 자격과 관련해
“도롱뇽이라는 자연물이나 자연 자체는 이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원심 결정을 유지해 각하 결정했다.
◈참조 - 진행경과
○ 1990. 6. 15 = 천성산을 지나는 현재의 고속철도 노선 확정
○ 2003. 3. 7 = 대통령 지시로 공사 중단하고 대안노선검토 추진
○ 2003. 9 = 국무총리 산하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 기존노선대로 건설하기로 결정발표
○ 2003. 10. 15 = 신청인 미타암, 내원사 이 건 가처분신청 제기
○ 2003. 11 = 공사 재개
○ 2003. 12 = 피신청인의 의뢰에 의한 대한지질공학회가 자연변화 정밀조사보고 발표
○ 2004. 4. 8 = 1심 결정 (가처분 신청 기각)
○ 2004. 8. 26 = 환경부장관실에서 “지율은 단식을 풀고, 피신청인은 공사를 중단하고,
환경부와 신청인측이 공동구성한 인원으로 공동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
○ 2004. 10. 14 = 환경부의 의뢰에 의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등의 전문가들이,
위 자연변화 정밀조사보고서의 내용이 적정하다는 검토결과보고서 제출
○ 2004. 11. 15 = 원심재판부 조정권고 → 승복하지 않음
○ 2004. 11. 29 = 원심 결정 (항고 기각)
○ 2004. 12. 22 = 신청인들, 대법원에 재항고장 제출
○ 2005. 2. 3 = 쌍방이 동수구성에 의한 공동조사를 하여 그 결과에 따르거나
대법원에 조사결과보고서를 제출하기로 합의
○ 2005. 2. 3 ∼2005 . 11. 30 = 공사중단
○ 2006. 2. 28 = 공동조사결과 발표
○ 2006. 3. 14 = 공동조사보고서 대법원에 제출
○ 2006. 6. 2 = 대법원 결정 (재항고 기각)
5. 도롱뇽소송의 사회적 의미
도룡뇽을 원고로 내세운 '자연의 권리' 소송은 패소했다. 그러나 인간 중심의 환경권이나 발전권이 아닌
자연의 권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인간의 존엄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자연의 존엄, 자연 자체의 권리 주체성을 주장하는 이 소송은 우리 사회에 새롭고도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도룡뇽 하나 살리자고 국책사업을 중단시키는 게 말이 됩니까?", "자연의 권리라니요? 인간이 우선
아닙니까?" 여론은 '비구니 스님 하나의 아집으로 공사가 지연돼 2조원의 혈세가 낭비됐다'고 비난했다.
당시 한국철도시설공단은 공사 지연 손실이 2조5000억 원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145억원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지율스님은 2조5000억원을 근거로 들며 천성산 보존 운동을 공격했던 거대 신문사들을
상대로 지금도 나 홀로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다.
"자연은 인간의 생존과 존재의 기반이고, 인간의 편익에 봉사하거나 인간에 의하여 함부로 개척되고
극복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고유한 가치를 지니며, 그 속에 깃들어 사는 도룡뇽도
생태계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똑같은 생명인데, 왜 불평등한 대접을 받는가?“
‘자연의 권리에 대해 답하라’는 공식적인 문제제기이다.
'자연의 권리'가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미국 남캘리포니아 대학 법철학 교수인 크리스토퍼 스톤에
의해서였다. 그는 1972년 <나무의 당사자 적격>이라는 논문을 통해 “자연물에도 법적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가 침해될 경우 방해 배제, 원상회복, 손해 배상 등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국가나 법인, 학교 등 인간이 아닌 존재가 법인격을 갖듯이 자연물도 법인격을 가질 수 있으며,
이 권리는 자연의 권리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시민(또는 단체)에 의해 대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톤의 주장은 같은 해 월트 디즈니사가 미네랄킹 계곡에 스키리조트 등 대규모 위락시설을 건설하고자
했을 때 환경단체인 시에라클럽이 제기한 소송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소송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윌리암 더글라스 대법관은 소수의견에서 "자연의 생태적 균형을 보호하고자 하는 현시대의 대중적인
관심은 자연물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의 보호를 위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당사자 자격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이듬해인 1973년 미국은 '멸종위기 종 보호법'을 만들고 "시민은 누구라도 자연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소송할 수 있다"는 조항을 삽입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하와이 희귀조류 팔리아 사건(1979년), 바다오리 사건(1996년)등에서 미 법원은 원고 적격 판정을 내렸다.
자연물을 권리 당사자로 인정한 셈이다.
반면 일본과 독일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자연의 권리를 주장하는 소송이 줄을 이었지만,
대부분 원고 부적격 판정이 내려졌다. 이처럼 외국의 경우 자연의 권리 주체성을 인정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난개발에 제동을 건 판례들이 미약하나마 축적되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자연의 권리 주장에
대해 매우 인색하다.
도룡뇽 소송에 대해 1심 재판부는 2004년 4월 "자연물인 도룡뇽 또는 그를 포함한 자연 그 자체에
대하여는 현행법의 해석상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소송을 각하했고,
2004년 11월 항소심 재판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98년 3월에도 녹색연합이 낙동강 재두루미의
떼죽음과 관련해 재두루미를 원고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부적격 결정이 나온 바 있다.
자연의 권리 주장은 기존의 환경 관련 법률이 생물 다양성이나 생태계의 보전에는 무게를 두지 않는
인간 중심성에 기초해 있다는 반성으로부터 비롯된다.
196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인권으로 발전해온 환경권 개념은 특정 개발 사업이 인간의 재산권이나
생명권, 건강권 등에 직접적 피해를 양산할 경우 인간을 보호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자연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인간이 보호를 요청하지 않는 한 자연 자체를
보전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자연의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자연 보호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자연에도 현재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생존권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이 개발정책의 결정과 재판의 기준이 될 때만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배경은 ‘사람이 아닌 국가나 다국적기업들이 인간을 위해, 인간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얼마나
많은 전 세계 자연을 효과적으로 파괴, 약탈하고 있느냐’ 그렇다면 ‘왜 자연은 인간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자신을 변호하고 방어할 수 없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자연'과 '자연을 파괴하려는 인간' 사이의 법적 다툼은 사실 '침묵하는 자연의 아픔을 들을 수 있는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려는 인간' 사이의 다툼이다.
이와 관련하여 인권을 생태적으로 재구성하자는 주장이 있다. 자연의 권리라는 것이 결국 인간의 이성과
양심을 통해서만 주장될 수 있고 또 자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인간에 의해서만 대행될 수 있는
것이라면, 기존의 인권 개념을 생태적으로 재구성하는 편이 자연의 권리 주체성을 둘러싼 논쟁으로
시간을 소모하는 것보다 났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발전권을 생태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생태계 파괴가 '발전'을 내세운
개발과정에서 빚어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발전을 추구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초기단계에서부터 자연의
독자적 권리(자기결정권)를 반영하자는 것이다.
1986년 유엔총회에서 '개인과 집단이 참여한 가운데 발전의 방향을 선택하고 발전의 혜택을 향유할 권리'
라는 의미로 선언된 ‘발전권’은 애초 국제경제질서의 불평등, 인간의 포괄적 발전을 무시한 경제성장
위주의 개발정책, 발전과정에서 배제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 등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싹튼
권리개념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86년 유엔총회의 선언에는 자연의 독자적 권리에 대한 존중을 명시한 조항은 없었다.
비록 1992년 리우선언과 이듬해 비엔나 세계인권회의 선언 등을 통해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이 주창되면서 발전권 개념의 일정한 전환이 시도되기는 했으나,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도
인간중심으로 정의되었을 뿐, 인간과 다른 생물종 사이의 불평등 문제는 적극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했다.
그동안 자연의 가치를 등한시한 인간의 오만은 기후변화, 생물 다양성의 감소 등 생태위기의 심화와
인류생존의 위협이라는 뼈아픈 결과를 낳아 왔다. 따라서 기존의 발전권 개념이 가진 인간중심성을
반성하고, 인간중심주의로부터 생태주의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발전은 인간의 복지 향상만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의 존엄과 자연과의 공존을
함께 꾀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지속가능한 발전은 인간의 지속가능성만이 아니라 인간이
그 일부로서 자리 잡고 있는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고, 그럴 때만이
발전의 혜택도 고루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주장은 생태계의 지속가능성과 발전이 양립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발전권의 주체는 결국 인간이라는 인간중심주의로 환원돼버리고 만다.
6. 근대 휴머니즘에 대한 문명사적 반성
-인권을 넘어 생명권으로
유럽과 전 세계, 그리고 한국의 법제가 명백히 휴머니즘 ‘인권’에 서 있는 한, 자연생명에 대한 법적 권리는
있을 수가 없으며 생명권은 철저하게 유린되고 만다.
천성산 이전, ‘새만금삼보일배'의 강력한 메시지도, 천성산터널개통을 막는 지율스님의 단식도,
오체투지순례도 대법원이 '도롱뇽은 소송주체가 될 수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지금의 법률이나 철학, 윤리, 상식으로는 이를 뒤집을 수 없다. 이것은 유럽에서 시작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회계약'에 기초해 있고 그것을 현대적으로 보완했다는 후썰, 하버마스, 한나 아렌트 등의
철학적 테마인 '생활세계' 개념도 인간과 인간의 마음 사이의 상호 소통과 일치에 기초한 시민사회론,
즉 '사회적 공공성'에서 한걸음도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공공성‘은 그대로 존중되고 추구되어야 한다. 문제는 바로 '계약'사상이다.
‘인간불평등기원론’으로부터 출발하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문제이다.
로크의 ‘국민주권’ 루소의 ‘인민주권론’이 여기에서 나온 것 아닌가?
물론 최근 유럽에서 미셸 셰르에 의해 루소의 '사회계약'에 대비되는 '생명계약'이 주창되고 있고,
법철학논쟁에 이어, 극히 제한된 차원이지만 '동물보호'의 현실문제 등 소폭의 실정법 개혁으로 일단
나타나고는 있다.
2002년 독일헌법이 동물권을 명시하기 시작했다. 독일 기본헌법 20조는 “국가는 미래세대의 관점에서
생명의 자연적 기반과 동물을 보호할 책임을 갖는다.” 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앞서 스위스도 1992년 유사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법적으로 동물을 ‘사물’이 아닌 ‘생명’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미셸 세르'의 진일보한 '생명계약론'도 ‘우주의 조리와 인간의 윤리는 일치한다‘는
동아시아 사상에서는 유치한 이야기이다.
‘땅을 소중히 여기기를 어머님의 살같이 하라. 어머님의 살이 중한가 버선이 중한가.’
‘침을 뱉고 코를 푸는 것은 천지 부모님 얼굴에 뱉는 것이라면서 땅을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는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물물천(物物天) 사사천(事事天)‘이나, ’한 톨 먼지 안에도 우주가 있다
(一微塵中 含十方)‘는 불교의 생물학적 프랙탈 원리에 이르면 '매개'나 '계약'은 있을 수 없다.
생명은 한 번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죽여도 죽여도 안 죽고, 분명 죽어야 하는데도 내내 살아있는
생명체들, 몇 년 전 영국 생물학자 마이클 위팅은 <네이처>지에 아득한 옛날 퇴화돼 버린 뒤 진화가
끝난 곤충 겨드랑이에서 다시 날개가 돋아나는 현상을, 그것도 30종에 걸쳐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근대 이성의 진화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삼보일배’와 ‘단식’을 통해
요구한 생명권이 ‘촛불’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촛불’의 의제는 도롱뇽소송을 통해 주장하는 것과 일치한다. 자연환경 생태문제를 넘어 쇠고기 등 음식과
건강, 생계의 절대성, 교육의 철학 부재 등에서 생명권 문제가 최근 몇 달 동안 치열하게 제기되었다.
생활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일상적인 생활문제로서의 생명문제 등 '사회적 공공성'이 도롱뇽이 주장하는
생명가치에 닿아 있다. 대운하 등 생태 문제와 기후 변화, 에너지 문제, 식량문제 등 ‘사회적 공공성’이
우주 및 지구 전체의 변동이라는 '우주적 공공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생명의 세계관은 인간 개체와 우주 생명을 달리 보지 않는다. 근대이성의 반생명적인 인권을 넘어 생태계
전체와 소통하는 ‘생명공동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도롱뇽소송이 말하고자 했던 핵심이 ‘촛불’로 드러나고 있다. ‘총체적 위기’ 에 대한 동의가 이를 웅변한다.
유럽의 근대를 뛰어넘지 않고는 어떤 생명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근대인간은 ‘국가와 계약을 맺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계약’도 허구다.
인간은 국가와의 계약관계를 언제든 해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근대인간은 실제로 국가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국가 밖으로 나서는 순간 그것은 개인이 아니라 말 그대로 ‘호모사케르’ '벌거벗은 생명'에 불과하다,
실은 다시 국가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권리 주체로서의 개인은 여전히 ‘벌거벗은 생명’에 불과하다.
주권자로서 지위를 획득한 인간은 ‘근대국가가 제공하는 법과 제도의 편의를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국가에 넘겨 버림’으로서 인권을 국가주권의 예속물로 전락해 버렸다. 이는 근대민주주의가 ‘아포리아’(통로 없는 민주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대민주주의는 아르도․ 레오폴드의 토지생태학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토지생명공동체(biotic community)’에 동의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물은 생명공동체의 종합, 안정, 미를 유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바르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잘못되고 있다.”라는 「토지」의 이용에 있어서 최소한의 자세도
견지할 수 없다. 생명공동체로 가기 위해서는 근대의 인권을 뛰어 넘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이에 숨결을 불어넣어야한다.
소통의 민주주의 이른바 생명전체 간 소통을 전제로 한 만장일치의 새로운 ‘화백민주주의’를 검토하여야
한다. 이 때 도롱뇽의 권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이른바 ‘생명주권시대’로 넘어갈 수 있다.
이것이 지율스님의 단식과 도롱뇽소송이 문명사에 던진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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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호모 사케르(Homo sacer)' -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아감벤의 개념. 즉 '벌거벗은 생명'
아포리아 - 철학용어. 사물에 관하여 해결의 방도를 찾을 수 없는 난관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는 해결이 곤란한 문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대화의 상대를 아포리아에 빠뜨려
무지(無知)를 자각시켰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포리아에 의한 놀라움에서 철학이 시작된다”고 하였다.
플라톤의 경우에는 대화에서 로고스의 전개 로부터 필연적으로 생기는 난관을 아포리아라고 하였다.
7. 과제 - 새 헌법 제정운동
에콰도르는 최근 국민투표를 통해 새 헌법을 만들었다. 세계 최초로 ‘국가의 생태파괴 예방의무’를
명문화했다. 숲 속에 사는 재규어와 안경곰, 갈색머리거미원숭이 등에게도 생존권을 보장하는 헌법이
만들어졌다.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사임하겠다는 배수진을 치고 밀어붙인
에콰도르의 개헌안이 국제사회의 눈길을 끌게 된 것은 무엇보다 기간산업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고
국가가 유휴농지를 재분배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사회주의적 색채가 크게 강화됐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개헌안은 세계 환경운동가들에게는 또 다른 이유로 이목을 끌었다. 역사상 최초로 자연계의
다른 생물들에게까지 지속적으로 존재하며 재생산하고 진화할 기능을 유지할 권리를 부여하는 조항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 이런 권리를 부여한 에콰도르의 새 헌법 조항은 선언적 조항에 머무른 것이 아니다.
국가에 생물종의 멸종과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올 수 있는 행동들을 예방하고 제한할 의무를
부여했을 뿐 아니라, 국가의 조처가 미흡할 경우 일반 시민들이 자연을 대신해 법적인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길까지 터놓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항은 에콰도르의 천연자원을 개발하면서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를 낳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을 직접 겨냥한 것이라는 것이 주요 외신들의 분석이다.
현재 에콰도르 사람들은 에콰도르에서 석유를 퍼내면서 유전 주변의 광대한 지역사회에
‘아마존 체르노빌’이라고 불릴 정도로 치명적인 환경오염 문제를 일으키고도 대책을 세우지 않는
미국계 석유회사인 셰브론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새로운 헌법제정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틀림없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이 근대 휴머니즘에 갇혀있는 한, 인간은 영원히 소외될 수 밖에 없다.
자연을 떠나 실존 가능한 존재가 있는가?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새로 써야한다.
“대한민국은 생명공동체이다. 주권은 생명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생명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0조도 따라온다. “모든 생명은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모든 생명을 보호할 책무를 진다.”
이렇게 되면 헌법 제11조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쓰여 질 것이다.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
8. 끝으로 - 지율스님의 생명권소송은 여전히 진행형
(경향신문 2008년 10월 23일 인터뷰 참조)
-단식을 5차례나 하셨는데 후유증은 없습니까.
"병원에 안 가서 잘은 모르겠어요. 저는 이상하게 제 몸에 대해서는 통증이나 아픔 같은 것을
떨어뜨려놔요. 어디가 아프면 그것을 들여다보고 거기 집중하는 게 아니라 그걸 한 쪽에 놓고
저 하는 일에 전혀 지장을 안 받고 그냥 아파요. 너무 아프면 눕고. 아픈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보통사람이라면 소송을 혼자 해야 할 경우 그냥 포기해버릴 것 같습니다.
"왜 나같이 배우지도 못하고 세상물정도 잘 모르는 사람을 천성산이 불렀을까.“
저 위에 꽂혀 있는 책이 화엄경인데 저게 발단이에요. 제가 화엄경을 사경한 적이 있어요.
천성산 화엄벌에 올라가면 화엄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원효스님이 1000명의 대중을 모아놓고
화엄경을 설했다고 해서 그렇게 불러요. 그때는 그곳이 습지인지도 모르고 지뢰밭이라서 아무도
안 갔는데 제가 붓글씨로 써서 80권이나 되는 책을 들고 가서 읽은 겁니다.
큰소리로. 거기 새나 나비가 날아다녀요. 꽃밭이니까. 생명이 많이 사는 곳이에요.
저는 그것들이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읽었어요.
10년 후에 그곳에 갔다가 관광지를 만든다고 길 닦는 현장을 본 거지요.
다른 스님은 거기까지 쫓아 올라갈 일이 없었을 거예요. 고속철도 문제도 산사태 현장을 제가 목격했고.
그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니까 여기 지질이 단층대다, 이렇게 된 겁니다."
-천성산에 가 보십니까.
"부산에 가끔 가요. 모니터링은 직접 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로 일을 하고 있어요.
2조원 문제가 끝날 때쯤엔 천성산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처음에 문제제기를 했던 것들이 그대로 가고 있잖아요. 꼭 터널 구간이 아니더라도 지반이 약해서
그 입구가 벌써 무너졌고 공사 지연 얘기까지 나오고 있고요.
실제로 천성산 앞 구간의 지질이 비슷하거든요, 15-5 공구가. 지난해에 9900㎡(3000평)가 5m
밑으로 가라앉았어요.
지금 터널 안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고 사람이 죽기도 했다는데 밖으로는 전혀 보도가 안 되고….
늪이나 계곡의 지하수 문제도 정리를 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