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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와 우리나라 생협운동의
만남을 위하여!
이정호(행정자치대학원 1기)
1. 들어가기
지난 2007년 제정된 ‘사회적기업육성법’을 계기로 우리사회에서 ‘사회적경제’와 ‘사회적기업’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다. 아직까지 사회전반적으로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이 논의는 정부가 주도하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 복지단체 등을 중심으로 서서히 공론의 장으로 나오고 있다.
이러한 논의가 우리사회에 등장하는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사회가 본격적으로 서구사회가 걸어갔던 ‘시장의 실패’와 ‘국가의 실패’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이미 자본주의가 지난 2세대(약 60년)의 기간동안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경쟁을 통한 사회적배제’ 현상이 뚜렷히 증가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사회적으로 배제’된 수 많은 다수대중의 삶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게 된 것이다.
서구사회의 경우 이런 경우에 ‘복지국가모델’을 통해 일정정도 이 ‘사회적배제’를 완충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사회의 경우는 서구와의 달리 소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 이후에 ‘사회적 완충망’의
일환으로 몇 개의 사회복지정책이 채택되고 있다.
서구의 복지국가모델이 사회적부에 대한 재분배의 성격이 강했다면, 우리의 경우는 ‘사회적 붕괴’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구성한다는 성격이 강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사회는 복지국가모델의 실행단계를 거치지 못한 채, 소위 신자유주의의 ‘작은정부,
복지정책축소’라는 논의에 노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100여년간의 자본주의의 부흥기의
‘성장의 혜택’을 누릴 기회라는 ‘국제경제질서의 외부적 효과’가 주어져 있지 않다.
둘째, 급속하게 진행된 7-90년대의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인한 ‘성장된 시민사회’의 역량이 새로운
사회적 과제인 ‘사회적 양극화’와 ‘사회불안정’에 대해 ‘정치민주화’와 더불어 새로운 과제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 20여년간 우리사회의 시민사회는 급격하게 양적팽창을 이루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 시민사회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대부분 ‘주창형정치운동’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지난날의 과제가 ‘국가권력의 민주화’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기에 그러하다.
지난 97년 중앙정부의 성격이 ‘군부’에서 ‘민간’으로 평화적으로 이양된 이후 우리사회의 과제는 서서히
변해갔다.
지난 10여년의 기간동안 ‘국가권력’이 가지는 비민주성에 의한 문제보다는 ‘자본주의’가 가지는
‘과도한 경쟁과 사회적배제’라는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한 사회적 문제가 되어 왔다.
이에 많은 수의 시민사회단체들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과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들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분야가 ‘생활협동조합’과 ‘유기농업운동’
그리고 ‘각종의 생태주의적 프로그램’들이다.
우리나라의 정부에서는 새로운 사회적과제에 대하여 ‘사회적기업육성’을 통해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아마도 시민사회단체들에서는 ‘사회적경제’에 대한 조심스런 접근과 ‘생태주의적 프로그램의 모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글에서는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경제’와 ‘사회적기업’에 대한 조심스러운
태도가 어떠한 이유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고 이 ‘사회적경제’와 ‘사회적기업’에 대한 긍정적
검토를 위한 조건에 대하여 대략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2. 우리나라 사회적경제 논의의 태동과 흐름
1) ‘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와 공공근로사업
* 97년 국제통화기금 사태를 계기로 ‘산업구조조정’에 따른 조기퇴직의 ‘사회적붐’으로 인해 대규모의
실업사태가 사회현상으로 구체화 됨
* 정부를 중심으로 하여 ‘실업극복운동’이 민간과의 협력하에 진행됨
* 정부와 민간이 합동으로 하여 ‘실업극복국민운동’을 만들어서 본격적 활동에 들어감
* ‘실업극복국민운동’차원에서 대규모의 공공근로사업이 진행됨
* 초창기 ‘실업극복운동’은 주로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으며, 향후 사회적으로 ‘생산적 복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되었음
2) ‘생산적복지’와 사회적일자리 사업
* 최고의 복지는 ‘생산적복지형태’이며 생산적복지의 대표적 방법은 ‘일자리창출’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제안됨
* 이러한 사회적 합의하에 기존의 ‘공공근로사업’은 2002- 2003년을 계기로 ‘사회적일자리’라는 새로운
슬로건으로 변경되었음
3) 지속가능한 일자리로서의 ‘사회적경제’와 ‘사회적기업’
* 우리나라에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논의는 정부가 주도하여 ‘사회적기업’에 대한 사회적 제안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 ‘국제통화기금’ 사태이후 우리사회는 만성적인 대량실업이 지속되었고, 그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와
사회불안이 점차 증가하였다. 이에 ‘시장실패’와 ‘국가실패’에 대한 대안으로 대량실업과 사회양극화에
대한 ‘사회적 대안’으로서 ‘사회적기업’을 육성하자는 논의가 제안되었다.
* 이에 2006년을 계기로 ‘사회적기업육성법’에 대한 사회적논의가 시작되었고, 지난 2007년을 기해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 운영되었다.
3. 생협운동의 역사와 현황
1) 세계 생협운동의 흐름과 맥락
‘협동조합’은 1844년에 영국의 로치데일이라는 곳에서 탄생했다. 로치데일은 산업혁명의 국가 영국에서도
가장 섬유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이러한 곳에서 협동조합이 탄생한 것에는 당연하게도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자본주의 초창기에는 급속한 노동력의 집중이 필요했다. 큰 공장들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교통이 발전되어 있지 않았던 그 시절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밀집지역을 대공장 주변에
형성했다. 로치데일이 대표적인 곳이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살았으나, 아직 그곳에는 생활의 편의를 갖추지는 못했다. 시장이 가까이 형성되어
있지도 않았고, 몇 개 안되는 가게는 당시 노동자들의 생필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에는 부족했다.
노동자들의 생필품은 턱없이 부족해 비쌌으며, 그 품질 또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로치데일의 노동자들의 일부는 당시 유명한 공상적 사회주의자였던, 오웬의 사상을 알고 있었다.
일군의 노동자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기 시작했다.
오웬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 공동체를 실험한 ‘유능한 경영자’였다. 물론 오웬의 시도는 그가 가진
이상과는 별도로 현실속에서는 구현되지 못했다. 위로부터의 이상에 의한 생산공동체의 건설을 상상했던
오웬은 비록 자신의 실험은 험난했으나, 협동조합이라는 인류의 자산이 탄생되는데 긍정적, 부정적
경험적 교훈을 주었다.
로치데일의 노동자들은 위로부터의 이상적 공동체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협동의 이념’과 조합이라는 형태를 통해 자신들의 가장 근원적인 이해를 풀어가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필품을 싼 값에 안정적으로 들여오기 위해, 조금씩 출자를 하였다.
그렇게 마련된 자본금으로 작은 가게를 열었으며, 이 가게에 들여온 생필품을 반드시 현금을 주고
스스로 이용하였다. 물론 그 생필품은 과거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질 좋은 것이었으며,
안정성이 있게 공급되었다.
이 가게는 어느새 약간의 잉여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 노동자들은 이 잉여를 순서를 정해서 사용하자는
원칙을 합의하였다. 그들은 제 비용을 제외한 이 잉여를 미래를 위한 투자와 각 출자자들에게 배분하는
순서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영국의 경험은 20세기를 맞기 전에 이미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초기 협동조합은 이렇듯 초창기
영국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을 협동을 통해 해결하고자 생겨났다. 1-2차 세계대전을 겪고 새로운 과제가
지역과 시대를 달리하면서 제기되기까지 이 유형은 크게 변화되지 않고 100년을 유지하였다.
생협은 협동조합의 일종이다. 협동조합이라는 방법론은 인류가 약 160여년전에 발견한 지적유산이다.
이러하니 ‘생활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는 ‘협동조합’의 기원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다.
요즘의 협동조합은 ‘농업협동조합’, ‘임업협동조합’, ‘노동자생산협동조합’, ‘농민생산자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 ‘의료생활협동조합’, ‘교육생활협동조합’, ‘주택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등 많은
종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익숙한 것은 이른바 ‘농협’과 ‘신협’이다. 그리고 최근들어서는 ‘생협’이
고개를 살포시 내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협의 현대적 대두는 90년대 초반 동구사회주의권의 실험이 현실적으로 막을 내린
이후로 볼 수 있다. 당시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대안으로 인류가 실험하였던 큰 흐름이 좌절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일부의 지식인들과 실천가들이 ‘암중모색기’에 들어갔다. 이들의 눈에 띈 것이 사회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니면서도 분명하게 존재하던 ‘몬드라곤’이었으며 일본의 생협이었다.
당시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거둘 수 없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생산양식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한 소유권의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의사결정의
민주주의에 대한 방식이었다.
자본주의는 이에 대하여 생산양식의 사적소유와 그에 입각한 위로부터의 독재적 의사결정의 타당함에
대하여 합리화 하는 제도였기에 그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몬드라곤’과 ‘일본생협’은 소유자와 경영자와 이용자가 하나인 요술장치를 가지고
있다고 비춰졌다. 소유자와 경영자와 이용자가 하나라면 소유권의 문제와 의사결정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물음이 생겼다. 당연히 이에 대한 치열한 학습과정이 수반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초창기에 이를 접한 많은 사람들이 ‘협동조합만능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실재로 우리나라의 농협의 역사는 충분하게 이를 증명하는 경험을 선물했다. 우리나라의 일군의 활동가와
지식인들에게 한 10여년의 기간동안 ‘몬드라곤’과 ‘일본생협’은 이러한 이중적인 위상에 놓여 있었다.
2) 우리나라 생협운동의 흐름과 맥락
우리나라에서 근대적인 민간 협동조합은 일제시대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계열의 협동조합이래
1950년대 말까지 협동조합운동은 싹트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의 소비조합운동은 70년대 원주를 비롯한 영서남부지역의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저렴하게 공급함으로서 서구에서 시작된 협동조합 운동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초창기 소비조합운동은 원주지역의 ‘장일순과 그의 동지들’에 의해 서구적 이원론과 조직의 한계를
성찰되었다. 그들은 역동적인 한국사회의 변화속에서 1977년 이후 생명사상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초기 생명운동은 농촌에서 전개되었던 소비조합 운동을 도농간 직거래를 통한 생명의 농업 살리기 형태로
진행되었고 1985년 무렵부터는 한 살림 운동으로 명명되기도 하였다. 1990년대 초반까지 생명운동의
형식은 협동조합운동이라는 틀속에서 생명운동의 특징을 살리는 방향으로 전개 되었다고 볼 수 있다.
90년대 이후 많은 도시 생협들과 한살림 조직들이 만들어졌고 생협이든 한살림이든 유기농업 생산물을
기본으로 하는 생명 살리기를 주요한 모토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한살림운동이든 생협운동
이든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되었고 지금도 성장가도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이 성장의 이면에는 한국사회의 변화(물질적 부의 증대와 민주주의 증대, 시민의식의 성장 등)도 있을
것이고 생명사상과 운동에 대한 이해의 확장도 있다. 또한 조직의 운영자들이 기업적 경영방식과
조직방식을 도입함으로서 이루어낸 것 또한 많음을 부인할 수 없다.
현실의 한살림운동이든 생협운동이든 거대화 되고, 집중화 되고, 권력화 되고 있다는 점은 이제 부인 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의 생협운동은 거대한 두개의 연합조직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한살림운동 또한
거대한 연합조직이 운영하고 있다.
운동의 방향이 아래에서 받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향하고 있다. 조직 양식은 점차 기업을
닮아가고 있고 생협과 한살림은 상표화 되어 가고 있다. 소비자들은 생협과 한살림의 브랜드를 구매하고
있고 농민들은 생명 운동체로서가 아니라 유기농산물 생산자가 되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현재 협동조합 운동이 자본주의와 기업을 세련되게 닮아감이요 아직 생명운동으로서 자기정립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바 다름 아니다. 공급의 양을 늘리고 조직을 키우고 수직적으로 세울 것이 아니라
생명가치에 의한 개체 생명의 유대를 기초단위로 하는 수평적이고 느슨한 연대로 해야 함에도,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천천히 우리주위의 생명들을 잘 모시면서 가야 함에도, 현실의 속도는 빠르고
성장에 대응하기에 급급한 것이다.
무엇이든 커지면 규율과 체계를 필요로 하고 그것은 반드시 인간 소외를 낳게 되고 인간의 창의성을
해치게 된다. 또한 커짐으로서 민주주의도 형식화 된다.
생명운동의 두 측면 하나는 생활속에서 생명평화 지평의 확장이고 또 하나는 반 생명적인 것에의
비 폭력적 저항이다. 이 저항은 권력의 형성을 위한 저항이 아니라 생명적인 지평의 확대를 위한 저항이다.
생명사상과 운동이 저항 비판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생명적인 것에 저항하고 생명적인
지평을 열 것을 촉구하는 비폭력 평화운동과 결부되어 있다.
생명운동이란 것은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세계자본주의 착취체제를 반대하고, 이라크의 생명을
죽이는 전쟁을 반대하고, 농민의 삶을 말살하고 억압하는 체계와 정책에 반대하고, 개발과 생산력주의에
기초한 새만금 갯벌의 생명을 몰살시키는 것을 반대하고 모든 생명이 하나로서 공생을 위한 체제로
나아가자고 외치고 실천하는 것이다.
생명운동은 나를 낮추고 상대방과 뭇 생명을 잘 모시는데서 출발한다.
그러기 때문에 생명이 자연의 원리를 벗어나 위협 받는다면 생명의 상생과 영속을 위한 저항을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생명사상은 누구를 경쟁상대로 하고 혹은 타도하는 운동이 아니라 다 같이 잘사는
공생체제로의 전환(이행)을 위한 가르침이다.
현실의 협동조합운동은 기본적으로 이원철학에 기초한 생명파괴 질서에 대응하는 상생의 운동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운동이 이원론에 입각해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고 인간과 인간을 분리해 그 안에서
강자들이 있고 약자들이 살아남기 위한 운동이었다면 이제 자연과 인간의 합일로서의 인간도 자연도
모두 하나라고 하는 생각 즉, 생명으로의 관점을 이동한 가운데 새로운 운동의 지평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초창기 원주협동조합운동의 지도자는 생산력의 증대가 아닌 자족과 연대의
협동조합운동이요 자연과 인간의, 인간과 인간의 공생의 협동조합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에 있어서도 1인1표와 다수결을 기본원리로 하는 민주주의를 넘어서 자기를 낮추는
성찰과 자연의 지배자로서의 인간이 아닌 평등을 넘어선 낮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건조한 수평적
평등이 아니라 낮춤으로서 공경(모시는)하는 민주주의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그것은 자신을 끊임없이 낮추고 자연을 공경하고 다른 사람을 공경하는 민주주의이다.
그것은 자연에 귀거(歸去)하는 일원론적 협동조합운동을 강조하는 것이다.
4. 생협운동과 사회적경제 결합을 위한 사회역사적 배경
1) 우리나라 생협운동의 특징과 사회화의 전망
도시생협운동의 시작은 원주와 안양에서 동시에 시작 되었다고 판단된다.
원주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농촌소협운동의 주체자들은 한국자본주의 발전이 농촌을 붕괴시키고
도시를 급격히 키움으로서 농촌운동만으로 현실을 타개 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새로운 의미의
운동을 모색하게 되는데 그 시점은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반이다.
이 시기에 원주에서 새로이 조망되기 시작한 사상은 오늘날 ‘생명운동’이라 일컫는 한살림 운동과
생협운동의 사상적 기초라 할 수 있는 생명 사상이다. 또한 이에 기초한 ‘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제기된다.
그런데 이 생명사상과 협동조합운동의 결합은 오늘날 한국 생협의 현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한국생협운동의 과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1985년 원주소비자협동조합(‘원주 한 살림 생협’의 전신)이 창립하고 본격적인 유기농산물의 도농직거래
운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당시 시작된 생협 운동의 특징은 앞서 이야기한 사상적 특질과 더불어
5가정을 전후로 한 ‘반개념’ 과 사전주문에 의한 ‘공동구매’ 방식이 일본 생협 운동을 모델로 하여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운동은 1986년 ‘서울한살림공동체’ 로 전전이 되고 1987년 6월항쟁으로 넓혀진 민주적
공간과 의식, 1989년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한 새로운 운동 출구의
모색과정에서 당시 노동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운동을 하던 세력들이 생협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
1988년에 서울 한살림은 ‘ 한살림공동체 소비조합’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89년 한국농민운동을 이끌어
왔던 가톨릭 농민회는 전농(전국총농민회)에 농민의 사회적 지위와 변혁적 운동의 지위를 넘기고 자기
역할을 ‘생명공동체운동’으로의 역할 전환을 선언하였다. 이는 단순히 역할전환이 아니라 새로운 운동
으로의 나가는 것이었다.
1990년부터 인천의 부평생협, 성남의 주민생협, 여성단체인 여성민우회, YMCA, 경실련 등에서 생협을
조직하기 시작함으로서 이제 본격적인 도시생협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들 생협운동은 앞서 이야기
한 대로 대부분 유기농산물직거래를 점포도 갖추고 사전주문에 의해 반조직에 배송도 하는 형태의
조합이었으며 전통적으로 소비조합명칭에 ‘생활’ 이라는 이름을 붙여 생활협동조합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생활’은 일본에서 도입한 것이기도 하지만 당시 생협운동의 선두 주자였던 한살림과 당시 생협운동가
들이 일본생협을 보고 한국생협운동의 사상과 조응한다고 여겨 ‘생활협동’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임으로서 1989년경부터 사용되기 시작 하였다.
이렇게 도시생협이 급속도로 신설되면서 제기된 문제는 물류의 문제였다. 단위조합들이 모두 동일한
패턴의 생협운동을 전개하면서 당시 몇 안되는 생산지와의 교류하고 있었는데 이수도권의 생협들은
상당히 산재해 있었고 이들 생산지들은 생산지별로 단위조합의 주문에 대한 배송업무를 각기함으로서
다양한 문제를 잉태하게 되었다.
이에따라 생협중앙회는 1993년 중앙회 사업부를 신설하고 물류를 집중하게 된다. 이로부터 약 5년간
이 물류센터가 운영 되는데 당시 생협운동의 열악성과 경영부실, 생협중앙회의 지도력 빈곤등이 결합
하여 적자가 누증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부터 생협중앙회는 이전의 부실운영과 경영의 불투명성
에 더하여 깊은 불신의 골이 생기고 단위조합간의 분파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로부터 중앙회사업부는 현 ‘생협수도권사업연합회’가 인수하여 독립하고 이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생협그룹은 현 ‘21세기 생협연대’(현 한국생협연대)로 독립하며, 이 그룹은 독자적으로 ‘ 한국생협연합회’
까지 구성하였다.
더욱이 1998년이 되면 수도권 지역의 한살림생협은 생협중앙회에서 탈퇴하여 독자적인 사단법인
‘한살림’으로 독립하고 독자적인 물류체계와 브랜드체계를 가져갔다. 이후 한살림은 전국적인 한살림
조직사업을 조직하여 2003년 독자적인 ‘한살림 사업 연합’을 창립함으로서 한국의 생협운동은 3개의
거대 조직으로 분화되고 경쟁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이것은 부정적으로는 생협운동의 분열이라는 부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생협운동의
성장기에 나름대로의 노선들을 가지고 그룹별로 조직적인 체제정비를 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
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러나 이러한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생협운동은 친환경농업의 수준과 발전속도의 더딤과 맞물려
3조직의 독점적 지위로 인해 신생조합의 물류활동을 어렵게 하고 있으며 다른 길과 선택을 어렵게
해온 측면이 있다.
이러한 일련의 생협운동의 흐름은 1997년 IMF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삶의 질’ 논의와
다양한 수입 및 가공 식료품의 위해가 보도와 맞물리면서 급격한 양적증대를 가져왔다.
이미 3그룹의 년 공급고가 2003년 2000억에 이르렀다. 생협의 양질적 성장은 2005년을 전후로 하여
3그룹이 물류센터를 확대 신축함으로서 적어도 물량면에서는 안정의 기반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2005년 쌀 파동이라고 하는 중대한 고비에 직면한 적이 있지만 최근 안정성을 다시회복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으로 이 3그룹의 분화는 한국생협운동의 사상적 분화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생명사상에 기초한 생명운동체로서 자기정체성을 규정하고 독자노선을
구축한 ‘한살림’과 서구 소비조합운동에 근거하면서 일본생협운동의 긍정성을 수용하며 생명운동과의
접합지점을 모색하며 생협운동을 전개하는 ‘수도권사업연합’과 전국연합회 그룹, 그리고 같은 서구
소비조합 운동의 전통에 서 있으면서도 소비자 주권주의에 근거해 래디컬한 소비자운동을 지향하는 ‘
’한국생협연대‘ 그룹이다.
2) 생협운동속에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논의
현대사회는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과 삶의 방법론으로 일원화 되어 있다. 전세계적 규모에서 진행
되고 있는 금융위기와 경제위기의 모습은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소위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국제질서는 ‘시장의 실패’와 ‘국가의 실패’라는 신조어를 낳고 있다.
시장에서는 경쟁에서 탈락된 다수의 대중들이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이에 국가기구가
사회의 양극화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각종의 복지활동과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기구의 여러 정책은 사회대중들의 합의에 의하여 진행하기에 사회의 모든 분야를 다 포괄
하여 정책을 추진하지는 못한다. 이에 수 많은 소외대중들이 필연적으로 양상되는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주요하게 드러나고 있는 사회모순이 ‘사회적 양극화’와 ‘사회분열’이다.
지난 1997년 ‘구제금융시대’를 거치면서 우리사회는 ‘IMF'에서 요구한 사회개조 프로그램에 의해
다수 대중이 실질상태에 빠지고, 만성적인 경기침체로 이미 들어섰다.
우리사회가 당면하는 문제는 아직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한 항구적 대책이
국가기구도, 기업도 그리고 시민사회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만성적인 실업과 가정파괴 그리고 사회불안은 사회의 가장 아랫단위부터 무너뜨리고 있다.
사회의 아랫부분이 허약해지면 사회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새로이 등장하는 문제는 국가와 시장과 시민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할 성격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중 시민사회의 노력이 국가와 시장과의 관계속에서 일정한 역할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
‘사회적경제’라는 영역이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이런 사회적경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를 서두르고 있다. 이런 사회적경제의
영역에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사회복지활동’과 ‘협동조합과 공제회’ 그리고 ‘사회재단과 각종
엔지오’등이다.
이를 주의깊게 들여다 보면, 사회의 각 영역에서 조직화 대중들의 힘을 바탕으로 비화폐적인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고, 이러한 것에 바탕을 두어 약간의 ‘화폐자본’을 투여하여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기구’를 활성화 하자는 구상이다.
이러한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기구’가 현실속에서 구체화 되고, 나아가 일정한 ‘사회적역할’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민주적으로 훈련된 조직화된 대중’의 힘이다.
여기에 각종의 기금과 모금활동을 통한 화폐자본이 일정한 사회적 합의절차를 걸쳐 결합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시민의 힘’이 잘 조직된 분야는 ‘시민사회단체’등의 엔지오그룹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시민사회단체들의 경우는 ‘정치운동과 정책비판운동’에 활동의
중점을 두어 왔다. 그렇기에 정부와 기업과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경제개념과 함께하는 사회활동’에는
익숙치 않다.
뿐만아니라 정부와 기업의 힘이 시민단체와 함께 한다면 어떻게 시민사회단체의 ‘사회비판적 기능’을
잘 지켜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도 최근 사회대중들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선’을 확보하고,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위한 새로운 논의 흐름이 생겨나는 것이 사실이다. 시대의 가장 큰 어려움을 맞으면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위한 ‘사회적 수렴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 내부에서도 이러한 조심스러운 수렴현상을 위해 ‘각종의 생산자 및 소비자협동조합’에
대한 검토가 시작되고 있으며, 나아가 지역재단 및 각종의 공제회에 대한 논의가 내부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 생협운동내부에서의 워커즈콜렉티브에 대한 점검
* 각종의 일공동체에 대한 실험
* 여전히 과제인 ‘생명사상’과 ‘생활협동정신’의 조화
5. 생명운동조직으로서의 생협과 사회적경제조직으로서의
생협
1) 생명운동과 생활협동조합
(1) 우리나라 생명운동의 특징
우리나라의 생명운동이 사상운동의 차원에서는 근 20여년을 맞고 있다. 그러나 대중운동으로서의
생명운동은 약 10여년 안팎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대중으로서의 생명운동은 지난시기에 유기농업운동, 생협운동, 공동체운동, 귀농운동, 지역공동체운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모색되었다. 이제 생명운동은 다양한 형태의 부분적 운동경향으로 존재할 것이
아니고, 하나의 문명대안운동차원으로 본격적으로 제기되어야 할 상황인 것 같다.
하나의 대중운동의 흐름으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사상과 이념적 지향 그리고 조직적 차원 등 몇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생명운동이 그것을 획득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생명운동 흐름의 경향에는 몇가지 공통의 특징들은 존재한다.
하나, 우리민족 고유의 특성과 생태주의 사상을 결합시키고자 하는 경향이다.
이는 대개의 경우 사상적, 정서적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속에서 생명운동의 문제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노력과 더불어 운동의 방법론에서도 전통적 생활양식과 서구의 생태주의 운동의 경험을 접목하고자
하는 지향에서 살펴볼 수 있겠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의 민중운동의 경험과 시민운동의 경험을 창조적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생명운동의 조류들은 대개 민중운동과 시민환경운동의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에 의하여 모색되어 왔다.
그러나 이것들과의 분명한 차별성을 가진다. 그럼에도 이러한 운동들에 대한 분명한 연대의 입장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창조적 전환’의 태도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세 번째는 중앙집중적인 사고 및 활동방식과 수평적 네트워크의 방식을 적절하게 조화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생명운동을 지향하는 활동가들은 중앙집중적인 조직활동에도 익숙하다. 그렇기에 그것이 가지는
한계성에 대하여도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급부로 제기되는 수평적 네트워크에
대하여도 또한 그것의 필요성 만큼 한계성도 알고 있는 것 같다.
아직까지 조직활동속에서 충분하게 익숙해진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경향들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익숙하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하여 찾고 있는 과정인 것 같다.
네 번째는 생태농업과 지역사회 등 급속한 도시화 및 산업화에 대한 반대급부의 생활패턴을 당분간
지향하고자 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기우뚱한 균형’ 혹은 ‘일렁이는 균형’, ‘움직이는 균형’ 등의 표현이 상징하듯 너무나 급속하고 과도하게
진행된 근대화와 공업화에 대해 ‘실천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농업과 지역화’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2) 생명운동으로서의 생협운동
생명운동의 이념은 ‘생명평화, 민족화합, 중앙과 지역의 조화, 비폭력, 풀뿌리민주주의’ 등으로 사회화
되고 있다. 이러한 이념이 구체적인 물리력과 결합이 되려면 우리의 운동이 지향하는 사회적 상에 대한
토론이 이제는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이는 생명운동 내부의 요구에서도 생겨나고, 주변대중들에게 생명운동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도
생겨나고 있다.
가령 생협운동은 여러 가지 이념을 가지고 활용할 수 있는 운동기제이다. 이를 생명운동의 관점과 그에
입각한 사회상을 가지고 생협운동을 할 수도 있겠고, 생협운동의 방법론을 다른 관점을 가지고 활용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최근 생협운동 내부에는 몇가지 의미있는 정책토론거리가 생겼다. ‘소비자주권론’ 혹은 ‘민중교역론’,
‘지역순환운동론’ 등으로 표현되는 몇가지 정책조류가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들에는 일정한
형태의 ‘이념좌표와 사회상’에 대한 상이한 전제가 있지 않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뿐만아니라 최근 4-5년동안 소위 생명운동계의 어른들이 추진하고 있는 ‘생명평화운동류’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기는 하나, 뭇 대중들의 구체적 동참을 이끌어 내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생명운동활동가들은 우리 이념의 구체화와 더불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활동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생명운동의 이념이 구체적인 사회적 힘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대중들과의 접촉망을 넓혀가야 한다.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은 주로 대공장과 대도시에서 대중들과 접촉망을 형성했다.
생명운동은 대중들의 자치적생활공간과 농촌사회에 기반을 두고 대중들과 함께 할 필요가 있겠다 싶다.
약 20년전에 카톨릭농민회 및 한살림선언 등에서 ‘도농공동체운동’이 주창되었다.
당시에 이는 ‘혁명적 슬로건’이었다.
지금 시기 우리나라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 이 슬로건은 더욱 진전이 될 필요가 있겠다.
그러나 현실속에서 ‘도농공동체운동’의 슬로건은 이념적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제 도농공동체운동은 ‘소지역도농공동체’라는 슬로건으로 더욱더 구체화 시켜가는 것이 어떨까 싶다.
물의 순환과 생활의 순환이 적절하게 만나는 사회시스템에 대한 과감한 구상이 ‘소지역도농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 개의 중규모 시와 몇 개의 군으로 통합적 생활공동체를 만들고, 이러한 몇 개의 생활공동체 단위를
수계에 따라 또다시 상류와 하류간의 중대규모의 순환공동체를 향한 체제대안에 대한 실험이 필요치
않을까 싶다.
이러한 공간구상은 새로운 경제구상과 정치구상, 에너지구상, 교육구상 그리고 사회구상을 담는 총체적
체재대안에 대한 꿈을 담는 문제이다.
2) 경제민주화 운동과 생활협동조합
(1) 사회민주화운동과 경제민주화
급속한 근대화를 거친 한국사회에서 인류의 총체적 생명위기 문제는 굉장히 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서구사회가 근 200여년을 거치면서 서서히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변혁기를 거쳐오면서 자신의 삶의
질서를 형성했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근 50여년동안 급속하게 그 과정을 밟아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열풍과도 같은 근대화과정(새마을운동으로 대표되는)을 거쳤으며, 80년대의 변혁기를 거쳐
이제 IMF라는 조정기를 거치고 있다.
생명살림운동의 관점은 철저히 관계성과 균형의 입장에 서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을 통해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살펴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정리를 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하나는 중앙과 지역, 도시와 농촌간의 불균형과 관계의 단절이다. 두 번째는 정치와 경제에 있어서 관계의
단절이다.
첫째, 중앙과 지역이 너무나도 단선적인 구조로 정립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서울이 아니면 전부
지역과 지방이다. 그래서 서울은 중앙이고 다른 것은 전부 주변부이다. 이러한 믿음이 서울과 수도권은
2,500만의 거대한 도시무덤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이유이다.
서울은 사람이 너무많다. 그리고 지역은 사람이 너무없다. 그래서 많은 문제가 파생되고 있다. 아마도
서울이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은 서울의 인구가 반으로 줄면 8-90%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들이다.
오래전에 서울이 세계의 10대도시에 속한다는 말이 굉장히 자랑스러웠던 적이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0번째로 땅덩어리가 큰 나라인가? 물론 아니다. 그러면 세계에서 10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인가? 역시 아니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10번째로 큰 대도시가 존재한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 여기서는 아직까지 대답을 내리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보다 많은 중앙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유럽사회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도시라고 해봐야 인구 200만을 넘지 않는다. 그런 도시가 전국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것이 유럽사회의
특징이다. 이러한 구조가 지방자치제도의 생성과 발전의 초석이 되고 있다.
우리의 기형적인 중앙과 지역의 관계는 그 유명한 새마을운동을 통한 급속한 조국근대화가 가져온 커다란
구조적 업보이다. 이를 넘어서는 것이 너무나도 절실한 상황이다.
관계성과 균형의 시각으로 이를 해석하면 전국적으로 기와 혈이 통하지 못해 국가라는 큰 개체가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
물론 우리나라는 이러한 논의가 공식화 되지 못하고 있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우리나라가 지난 90년도 이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을 하고도 여전히 활발하게 운용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와같은 거대한 도시무덤이 해체되지 않는 한 지방은 여전히 중앙인 서울의
종속적인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정치와 경제의 불균형과 단절의 문제를 짚어보자. 흔히 한국사회의 병폐중 정경유착의 예를 든다.
그런데 뜬금없이 정치와 경제 단절이라니? 우리나라 사회를 몰라도 너무나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너무나도 정치와 경제가 결합된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 아닌가?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경유착의 문제는 정치인과 경제인이 너무나도 유착하여 자기들만의 공생관계를
만들어 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하는 정치와 경제의 단절은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 따로있고, 이를 운용하는 사람
따로있고 한다는 말이다.
앞에서 말한 정경유착의 문제는 정치인과 경제인 공히 대중경제 및 대중정치와 동떨어진 철학과 방법론을
택해온데서 생겨난 문제이다. 상품을 생산하고, 가공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대중들이라면
이를 어떻게 생산하고, 가공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도 또한 대중들이어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의미에서 정치와 경제의 관계성이고 균형이 되지 않겠는가? 현대사회에서 참여민주주의나
참여경제의 문제는 이런 의미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2) 경제민주화운동으로서의 생협운동
1970년대를 넘어서면서 유럽사회의 협동조합은 이미 대자본과의 경쟁관계에 있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각국의 협동조합은 합병을 통해 크기를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끝없는
대자본과의 경쟁에 있었으며, 이를 통해 조합원들의 민주적참여와 자주적 지배라는 원칙은 온간데없게
되었다.
다만, 유럽의 경우는 우리가 ‘생협’이라고 불리는 ‘소비자협동조합’ 대신에 생산의 영역에서
‘경제의 민주화’를 추구한 ‘노동자협동조합’ 혹은 ‘생산자협동조합’의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험의 최대가 아마도 스페인 몬드라곤 지방에서 실험한 ‘협동조합지역사회론’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것은 아마도 나중에 우리가 살펴야 할 ‘유기농생산자협동조합’과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지역공동체건설’이라는 화두를 풀어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유럽의 경우 도시우위 혹은 공업우위의 생산자협동조합 유형이었다면, 우리가 추구할 것은 농촌우위
혹은 농업우위의 생산자협동조합 유형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일본의 생협은 소비의 영역에서 풀어가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하였다. 그리고 유럽의 경우 협동조합운동이
‘생산’의 영역에서 풀어간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최근들어서는 ‘워커즈콜렉티브’라는 형태로 생협조합원들간의 협동을 통해 작은 ‘협동조합기업’을 만들어내는 활동들이 활발하다.
협동조합운동을 ‘소비’의 영역을 넘어서 ‘생산’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흐름이다.
국제적인 협동조합운동체의 경험교류를 통해 현대에는 유럽형에서는 일본형의 모델을 배우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 유럽사회의 ‘생산자협동조합 - 협동조합지역사회론 - 사회적경제’라는 개념들을 배워가는
것으로 수렴되는 것 같다.
생활협동조합 혹은 협동조합 문제를 공부하다가 보면, 하나의 의문이 떠오른다. 협동조합운동이 생겨난
가장 큰 이유가 뭘까?라는 것이다. 뭐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오늘 나는 그것을 ‘경제의 민주화’라는 것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현대사회가 정치사회적
민주화가 되더라도 도저히 민주화 되지 못하는 곳이 경제이다. 이것은 경제에는 경제주체인 기업의
오너가 한사람 혹은 몇몇의 과두체제이기에 그러하다.
그야말로 ‘국가기구의 민주화는 했으니, 이제는 기업이다’라는 과감한 한걸음이 느껴진다.
협동조합운동가들의 가슴속에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과감한 도전정신이 들어있다.
협동조합의 역사속에는 주식회사를 뛰어넘어 인간적인 경영의 주체로서의 ‘협동조합기업’을 만들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나아가 이러한 ‘협동조합기업들간의 지역적 협동’을 통한 ‘협동조합지역사회’를 위한 노력이
숨겨져 있으며, 이들은 조합원들만의 배타적 의사결정을 넘어서 자신들의 토대인 지역사회와 전체사회의
구성원들과 함께 의사결정하고자 하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나는 이와같은 생협운동의 도전정신과 경험이 오늘날 우리사회의 현실문제를 어떻게 다루어 나갈지가
궁금하다.
실업문제와 농업농촌의 붕괴, 생명평화의 한반도사회를 만드는 문제, 국제적인 에너지전쟁,
거대한 기아문제 등에 직면한 현대사회가 협동조합의 역사경험속에서 어떠한 해법을 제시받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되는 의문이다.
6. 생협속에서 사회적경제의 바람직한 논의전개를 위한 과제
1) 사회적경제 논의의 사회화와 대중운동성의 확보노력
(1) 사회적경제 논의의 사회화를 위한 과제
지금시기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에서 사회적경제와 사회적기업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는 또 하나의 사실은 이들 단체들이 아직도 이러한 사회적경제와 사회적기업에 대한
많은 우려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본다.
첫째, 우리사회에는 아직까지 사회적경제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기에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둘째, 우리사회의 사회적경제에 대한 논의가 어느 순간 ‘사회적기업’이라는 형식으로 ‘위로부터 제안’된
형태로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가 ‘주창형운동’단체의 형태로 창립되고 운영되어 왔다.
따라서 경제적 논의가 기본바탕이 되고, 정부와 기업이 함께하는 운동모델을 경험하지 못한 상태이기에
그러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우리사회에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논의가 무르익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저절로
확산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것은 두 가지 방향에서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하나의 방향은 정부의 노력이다. 사회적경제 논의의 처음에는 IMF 구제금융 위기와 그에 따른 시급했던
민간합동의 ‘실업극복운동’이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가 사실 민간영역의 참여가 지속적으로
확대하면서, 법과 제도의 문제로 넘어가지 못했다.
대신 이러한 사회적 논의가 정부의 일방적인 논의로 발전되어 왔다. 지금부터라도 정부에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다양한 참여단위를 시민사회단체에 제안하여, 민간과 정부가 함께 진행하는 ‘사회적기구’의 설립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본다.
두 번째의 방향은 민간의 노력이다. 비록 우리사회에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논의가 정부가 제정한
‘사회적기업육성법’이라는 법과 제도로부터 본격화 되고 있을지라도, 이 문제의 성격은 분명한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사회적경제’와 ‘사회적기업’에 대한 논의는 우리사회에만 특수하게 존재하는 논의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렇기에 우리사회에 이런 논의가 건강하고, 합리적으로 도입되고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2) ‘사회적경제’와 생활(지역)민주주의 운동의 접목
2) 생협운동의 사회화와 ‘사회적경제’의 역할
(1) 생협운동의 내적과제와 외적과제
(2) 생협운동은 ‘사회적경제’ 논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7. 사회적경제조직으로서의 생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