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일차(10.22) 소식>
- 낮춘 몸으로 바라보는 눈 앞에 거대한 생명이 있었습니다. -
비가 왔습니다. 빗물이 흥건히 고인 도로위에 몸을 내려놓습니다. 멀리 서울에서 온 참여자도, 85세의 할머니도 간절히 두손 모아 기도할 따름입니다. 비가 오는지라 차량 소리는 더 위협적으로 들리고, 차가워진 도로에 몸은 떨리지만 그 속에서 작은 생명들을 바라봅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생명들이 그곳에도 있었습니다.
<비오는 도로 위 풍경>
비가 왔습니다. 비가 오는 상황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비가 왔습니다. 새벽 2시를 조금 넘긴 시간부터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 비가, 아침 시간 조금 멈추었으나, 순례를 시작하면서 다시 왔습니다.
직불금 논란 등으로 가슴 타들어가는 농민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였던 것이 가을 가뭄이었습니다. 일부 지방에서는 식수조차 부족할 지경이라 하였으니 메말라 가는 대지를 바라보아야 하는 농민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됩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순례단에서는 마무리 행사에 기우제라도 지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예전 선조들은 이처럼 오랜 가뭄이 지속되면 나라의 임금부터 지극정성으로 비를 기다리며 제를 지냈다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농민들의 타들어가는 마음도, 메말라가는 가뭄도 그저 하늘만 바라보아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농심을 위로할 정부가 농심에는 직불금 논란을, 대지에는 투기를 조장하니 시절이 거꾸로 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 내린 비가 타들어 가는 대지와 농민의 마음에는 여전히 부족하겠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단비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비가 오는 도로 위 풍경은 다양합니다. 거센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라가는 차량도 눈에 보이지만, 몸을 낮아야만 볼 수 있는 풍경도 있습니다. 차량들이 속도의 경쟁을 벌이는 4차선 혹은 6차선의 국도에도 몸을 낮추어야만 볼 수 있는 생명들이 있습니다. 순례단의 오체투지를 바라보며 그 조차도 너무 빠르게 세상을 보는 것이니, 더 느리게 더 몸을 낮추라고 가르치려는 듯 달팽이는 무심히 순례단을 지나쳐갑니다. 비단 달팽이만 아닙니다. 비가 온 이후에는 도로 위에 끝을 모르는 인간의 속도에 질려버린 지렁이와 달팽이, 그리고 여러 곤충들의 흔적이 제법 남겨져 있습니다.
차량 하나 변변히 다니지 않는 도로까지 전국에 그 많은 도로를 만들지만,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고 공동체와 공동체를 연결하던 도로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도로가 마을과 공동체를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옆 마을 동무 찾아가던 도로는 이제 도보로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중앙분리대까지 만들어진 무섭게도 빠른 도로로 변했습니다. 도로가 오히려 마을과 마을을 공동체와 공동체를 단절시키고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조차 소외시키는 것이 지금의 도로이니 작은 미물이야 오죽할까요?
우리의 눈이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건설사와 자동차만을 위한 도로가 아니라 사람과 작은 생명조차 고려한 정책을 추진하는 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가 오는 날 도로위의 풍경. 그곳에서 몸을 낮추어 나와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생명을 바라봅니다.
<비를 맞았습니다>
오늘 아침은 논산로터리 인근 지역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출발 장소를 쉽게 알 수 있는 변변한 건물 하나 없는 도로 지점이다 보니 순례단보다 먼저 도착한 ‘진보신당’ 이덕우 공동 대표 등 관계자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백승헌 회장 등 관계자들은 도로 맞은편에서 순례단을 기다리는 일도 발생하였습니다.
하루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메마른 대지를 적시어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주고, 이제 가을이 끝나가고 겨울이 올 준비를 하라는 듯 늦가을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순례를 시작하였습니다.
오랜만에 비가 내리니 순례단도 조금은 당혹스러웠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상황을 감안하여 여러 준비를 하였지만 자연이 벌이는 일에는 당항 재간이 없는 듯 합니다. 50여일에 이른 순례길에서 익숙해질 법 하지만, 비는 계속 내리는 상황에 비닐 장갑과 온수, 우비는 여전히 부족하더군요.
비가 오니 모든 것이 어렵습니다. 한 두간이 끝나자 세분의 성직자 뿐만 아니라 참가자 모두 빗물을 머금은 옷과 장갑 등을 짜기 바쁩니다. 그리고 몇 번의 구간이 끝나면 이마저도 아예 포기를 합니다. 도로 바닥에 흐르는 빗물을 당할 재간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 서울 봉은사의 신도들이 버스를 이용하여 도착하였습니다. 비가 오는 상황인데도 모두 오체투지로 자신의 몸을 낮추고 순례를 이어갑니다. 빗물이 흐르는 도로 위. 하얀 우비를 입은 자벌레의 대열이 계속됩니다.
오늘 점심은 참여자들과 함께 마을 회관의 공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오전 구간이 종료될 즈음에 빗방울이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더니, 다행히 점심 식사 시간에는 제법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오후 순례 중에는 비가 약해졌다가 다시 오후 순례가 끝난 무렵에 비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허리를 구브린 85세 할머니와 공중보건의의 간절한 기도>
오늘 순례에서 기억되는 분이 두 분 계십니다. 한분은 그동안 참여자 중에 가장 고령이신 분이고, 다른 한 분은 얼굴도 모르지만 멀리서 순례단의 징소리에 맞추어 연신 몸을 조아리며 기도하던 분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익산의 ‘나위위 성지 성당’의 신자들과 함께 참여하신 김양순 마리이 할머니는 그동안 순례에 참여한 분 중 가장 고령(85세)입니다. 구부러진 허리를 바라보는 것조차 마음이 아프기만 한데, 할머니는 연신 허리를 조아립니다. 김 할머니는 “저는 잘 몰라유. 그래도 우리 모두를 위해 저렇게 힘든 고행을 하시니 마음이 아프네요”라며 연신 허리를 구부려 반배로 순례에 참여하였습니다.
김 할머니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잘해서 나라가 잘 돌아가면 좋겠다”며, 그래도 “나는 잘 살았으니 자손들만 잘살면 여한이 없어유”라고 말하십니다. 그러면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남의 것 빼앗지 않고 양심 것 살아야 해요. 저도 모든 사람들을 위해기도 할 터이니 순례하시는 신부님과 스님들도 고통스럽지만 세상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한분이 계십니다. 순례단이 지나는 도로에서 약 200m 이상 떨어진 건너편 지점에 보건소가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 순례단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지도를 펴놓고 건너편 건물들을 살피던 중 우연히 순례단을 향해 연신 두 손을 흔드는 분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어리둥절하였지만, 다시 순례가 지속되며 징소리가 울리자, 그 분 역시 정성스레 반배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분께서는 순례단이 징소리에 맞추어 오체투지 순례를 하는 과정에 맞추어 반배를 계속해주셨습니다. 멀리서 보니 손님이 찾아왔는지 다시 건물로 들어가기까지 계속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하며 순례단을 배웅하였습니다.
이분들의 이토록 간절히 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닐 것입니다. 지성감천(至誠感天)이라고 ‘지극한 정성은 하늘을 감동시킨다’다 하였습니다. 너무나 아프기만 한 국민의 마음이 평온해 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과정 한 과정 진행되는 절과 오체투지는 간절하기만 합니다.
오늘 비가 오는 과정에서 진행된 오체투지 순례. 다른 날보다 힘들었나 봅니다. 왕전1리 주유소 갓길 마무리 지점을 앞두고 마지막 구간을 알리는 소리에서야, 세분 성직자 뿐만 아니라 참여자 고통으로 굳어졌던 얼굴이 환하게 풀렸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비가 와서 기쁘고, 비가 와서 힘들었던 하루였습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하루 종일 비옷도 없이 빗물이 고인 도로에 몸을 던졌습니다. 하루 순례가 끝난 이후에는 ‘이런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세분의 성직자에게 말을 건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백승헌 회장(변호사). 백 변호사는 “오체투지를 하신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부터 함께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오늘 이덕우 변호사(진보신당 공동대표) 등과 함께 참여하였는데, “오늘 함께 해보니 보는 것과는 달리 무척 힘든데 49일 동안 하신 분들을 생각하니 힘들다는 말도 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백 변호사는 “오체투지를 통해 스스로 성찰하면서 사회의 아픔을 안고자 하는 마음에 저희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 생명, 평화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고 있는 이 세상에 사회, 정치, 문화 등의 아픔은 시급을 떠나 중대한 문제”라고 하시고 “오체투지 같이 움직임도 작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김경희(논산내동성당)님은 “오늘 비가 와서 그런지 더욱 마음이 안 좋다”고 하시고 “아직 낮춘다는 뜻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낮음을 주제로 기도해 보고 싶어 왔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약자 입장에서 생각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이 사람들이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사람이 가야 할 길은 남녀노소 직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 행복이 있고 감사하는 삶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신도들과 함께 참여한 ‘봉은사’의 진화스님은 “오체투지에 대한 소감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땅에 몸을 던질 기회가 어디 또 있겠어요! 또 그동안 너무 높은 곳을 향해 가고 있지 않았나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소감을 말씀하신 후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 침묵으로 임하시는 성직자분들을 뵈니 이것이 기도의 원력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은 항상 밖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체투지가 그러한 기회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밖에서 보았던 것과 실제는 다를 것입니다. 직접 동참에서 느껴 보기를 바란다”고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부탁하셨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송희철, 정재권, 윤병일(서울) / 장 헨리까 수녀, 박 아그리피나 수녀(까리따스 수녀회) / 곽문진(대구) / 문정현 신부, 구중서(평화바람) / 김지수, 최미경(서울) / 이덕우 공동대표 외 3명(진보신당) / 백승헌 대표 변호사 외 2명(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 김경희(논산내동성당) / 진화 스님 외 30명(봉은사) / 윤영이 외 4명(평화동 성당) / 김기곤 신부 외 5명(나바위성당)등이 함께하였습니다.
<일정 안내 - 상황에 따라 변동 가능>
● 10월 23일(목) : 23번 국도 논산시 광석면 왕전리 왕전초등학교 인근(시작) - 23번 국도 논산시 노송면 도리 인근(종료)
● 10월 24일(금) : 23번 국도 논산시 노송면 도리 인근(시작) - 691번 지방도 계룡면 지경리 지경교회 인근(종료)
● 10월 25일(토) : 691번 지방도 계룡면 지경리 지경교회 인근((시작) - 691번 지방도 신원사 사거리 1km 전 상도교회 인근(종료)
● 10월 26일(일) : 691번 지방도 신원사 사거리 1km 전 상도교회 인근(시작) - 신원사 중악단 / 2008년도 회향 행사(종료)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봉은사, 가현숙, 백승헌, 나바위 성당교인일동, 신원사신도회, 왕전리 노인회관, 김복희 김정섭, 연산면 농민주유소와 연산면 농민회 등께서 후원해 주셨습니다.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