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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여자가 1년 만에 다시 나타났다. 빌려준 돈 350만 원을 받으려는 게 ‘다시 나타난’ 이유다.
350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남자는 하루 종일 도시를 쏘다니며 평소에 알고 지내던 여자들에게
돈을 빌린다. 헤어진 여자는 그 남자를 따라 다니면서 돈을 챙긴다.
포스터나 홍보동영상으로만 보면 <멋진 하루>는 사랑이야기 같다.
돈을 받으려는 건 핑계일 뿐 ‘다시 나타난’ 진짜 이유는 ‘감정’이 남아서인 것처럼 ‘광고’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가 풀어놓은 내용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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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닷컴 | 빌려준 돈 350만 원이 연출시키는 풍경들은 쓸쓸
여자의 등장은, 다른 이유 없이, 다만 돈을 받기 위해서라고
영화는 여러 번 강조한다. 이 강조가 빚어내는 효과는 삶의
건조함이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고 할 수 있는 350만
원이 연출시키는 풍경들은 쓸쓸하다.
로맨스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숫자로 치환되는 쓸쓸함이
도시를 한없이 메마르게 만드는 것이다.
대략 영화의 2/3까지는 그렇다.
남은 1/3 즈음에서 영화는 촉촉해진다.
그러므로 2/3에서 1/3로 넘어갈 즈음 내리는 겨울비는
무의미한 게 아니다. 자, 이제부터 영화는 촉촉해집니다,
라는 상징장치로 읽을 수 있다. 영화의 매력은 이 촉촉함
마저 쓸쓸하다는 데 있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겨울비’ 이전에는 부정이었고, 이후에는 긍정으로 바뀐다.
하정우와 동행하는 여주인공 전도연의 시각이다. 그렇다고 이 ‘긍정’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삶의 근본적인 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된 것은 없다. 시각이 바뀌었을 따름이다.
무료 시식코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겨 먹는 하정우, 그를 차 속에서 바라보는 전도연,
이 둘을 동시에 잡아내는 최후의 카메라는, 여전히, 지독하게 쓸쓸하다.
사람이, 도시가, 세상이 답을 가지고 있더냐
<멋진 하루>는 로드무비의 구조를 차용하고 있다. 어떠한 목적을 위해 누군가와 함께 길을 걷는다.
걸으면서 그들은 이러저러한 사람과 상황을 만나게 되고, 이 만남을 통해 삶의 여러 결들을 체험한다. 체험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깨달음을 낳고, 깨달음은 생각의 변화를 제안한다.
주인공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멋진 하루>가 제안하는 ‘생각의 변화’는 매력적이다. 사람에 대한, 상황에 대한 영화적 진술들이
대부분 상식을 뒤엎고 있어서이다. 이 뒤엎음이 옳으냐, 그르냐는 둘째 문제다.
뒤엎어 봄으로 인해서 우리가 얻는 것은 넓게 확대된 인식의 지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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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자유로울 것 같은 오토바이족들이 지극히 세속적인 잣대로 하정우를 평가한다.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잘 나가는 젊은 부부는, 맥주 몇 잔을 함께 마셔보니 하나도 멋이 없는,
그저 속물이다.
세상을 해석하는 빼어난 통찰력은 속물처럼 보이는 몸 파는 여자의 말에서 나오고,
역시 속물처럼 보이는 나이 먹은 여사장의 마음 씀씀이는 적당히 넉넉하다.
너희들, 평소에 이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 세상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라고 감독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감독의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 속 캐릭터가
하정우이다.
그는, 정말 재수없는 녀석처럼 보였는데 알고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사람이었다는 이야기.
이 대목에서 영화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알고 보니’ 하정우가 나쁜 녀석은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굳이 그를 좋다고까지 말하지는 않는, 매우 절제된 입장을 영화는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막걸리의 우화가 여기에 닿아 있다.
괜찮은 사업아이템인 것도 같고 허황스럽게도 느껴지는, 알 것 같으면서도 확신할 수 없는, 그런….
<멋진 하루>는 질문들만 몽땅 풀어놓고 답을 하지 않는, 상당히 불친절한 영화에 속한다.
하지만 이 불친절함은 영화의 전략이다.
사람이, 도시가, 세상이 답을 가지고 있더냐고, 온 몸으로 영화는 말하고 있는 셈이다.
쉽게 만나기 힘든 ‘불친절함’이어서 <멋진 하루>는 충분히 멋있는 영화로 보였다.
이정우 <문화웹진 씨네트워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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