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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한겨레신문/ 류이근 기자
 
‘시장’의 실패 설거지, ‘국가’가 다시 온다
‘월가 금융쇼크’ 파장
민영화·탈규제·자유화 신자유주의 신화 붕괴
구제금융·국유화 나서…금융시장 넘어 확대
한겨레
» 에릭 디날로 뉴욕주 보험국장(왼쪽)과 데이비드 패터슨 뉴욕 주지사가 16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보험회사 에이아이지(AIG)에 구제금융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
“나는 어제 조간 신문을 들고서, 내가 프랑스에서 깨어난 줄 알았다.”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 7월13일 연방의회에 모기지(주택담보) 채권을 보증·발행하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구제금융안을 제안하자, 다음날 공화당 짐 버닝 상원의원이 했다는 말이다. 버닝 의원은 앞서 파산에 몰린 베어스턴스에 300억달러(30조)를 지원한 미 연방정부를 빗대, “아마추어 사회주의”로 묘사한 바 있다. 시장주의자인 그에게 국가의 개입 증대는 불편한 현실이었다.

불과 두 달여만에 미 금융시장에서는 짐 버닝이 걱정했던 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9월 들어서 미 정부는 민간 주식회사였던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소유·경영을 아예 국가가 맡는 ‘국유화’를 단행했다. 16일에는 민간 보험사인 에이아이지(AIG)에 850억달러를 투입하면서, 정부관리체제로 개편한다고 밝혔다. 하루 전 연방은행은 신용이 경색된 금융시장에 500억달러를 풀었다. 정부가 금융시장의 실패와 낙오자들의 구원자로 나선 것이다. 앞서 영국 정부는 지난 2월 파산을 앞둔 모기지 업체 노던록을 국유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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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이런 일련의 사태의 공통점을 “국가의 귀환”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30년동안 미국 경제를 지배한 건 민영화·자유화·탈규제의 3가지 주문이었다. 그동안 정책결정자들은 국가의 역할을 축소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정책을 답습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촉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앵글로-아메리카식의 자본주의가 심하게 금이 가”(<파이낸셜타임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17일 “미국 경제의 커다란 부분이 (과거 정부의 간섭을 꺼렸던) 관련 업계의 열광적인 호응 아래 정부의 손에 넘어가고 있다”며 “월가의 도산이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고삐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공고화시켰다”고 전했다.

» 미국 정부가 85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투입하기로 한 미국 최대 보험회사 에이아이지(AIG)의 한 직원이 16일 뉴욕 본사 건물을 나서고 있다. 뉴욕/AP 연합

국가의 역할은 금융시장을 넘어 확대되고 있다. 지난 10일 미 상원은 고속도로 건설에 자금을 조달하는 ‘유에스트러스트펀드’에 8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승인한다고 밝혔다고 <블룸버그뉴스>가 보도했다. 도로·교량·철도 등 사회기반시설 업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인 셈이다. 생존의 기로에 선 지엠 등 미 자동차 3사는 이달 들어 의회에 500억달러의 특혜성 자금의 지원을 요청했다.




지금 시장의 실패는 역설적이게도 오랫동안 정부의 개입 축소를 일종의 절대선으로 여겨온 시장이 자초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미 진보성향의 주간 <네이션>은 “빌 클린턴과 조지 부시 대통령이 1930년대 뉴딜(정책)로부터 내려온 규제의 틀을 거세하거나 파괴했다”며 “그들의 탈규제 정책은 경제적으로 시민사회에 가장 위험한 죄수들이 수감된 감옥의 문을 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고 8일 지적했다.

금융시장 실패의 중요한 원인으로 탈규제가 지목되는 이상, 앞으로 시장실패 예방을 이유로 국가의 시장에 대한 규제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1930년대 월가가 몰락했을 때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붕괴한 은행산업의 개혁을 추진하면서 감독을 강화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6일 “느슨한 금융규제 시대의 종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 예상했다.

앞으로 국가의 입김이 커지면서, 시장만능론자들의 목소리는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인디펜던트>는 “2008년 시계추가 1930년대식 정부의 개입과 규제를 향해 다시 방향을 틀고 있다”며 “오는 11월 존 매케인이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1980년 레이건이 집권할 수 있었던 보수적인 움직임이 ‘김이 다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바꿀 순 없다”고 전했다.

s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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