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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가고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여드레째 섬진교∼망덕포구
남인희 기자  

          

▲ 강물 위 바위 위에서 명상하는 새와 오래 눈맞추다. 걷는다는 것은 마음을 여행하는 것.
ⓒ 남신희 기자

마무리! “꽃이든 풀이든 작은 것도 아름답게 만나고 가세요”
섬진강 이어걷기의 여드레째 날. 마무리한다는 의미를 담아 남신희 김창헌 셋이 함께 길을
나선다. 다음날 걸을 이의 걸음을 줄여주려고 전날 구례구에서 섬진교까지 백리길을 걸어버린
‘농부’님 덕에 오늘의 출발지는 섬진교다. 망덕포구에서 석양을 만날 작정인지라 점심을 먹고
물 한 병씩 담고 가볍게 나선 발걸음이다.

차림새가 범상치 않은 정양로씨가 홀연 ‘출연’, 꼭 그러려고 나타난 것처럼 축복의 메시지를
건네 준다.  “나무숲을 지날 땐 꼭 그 아래에 들어가 그 기운을 느껴보고, 물을 지날 땐 발도
담가 보고, 하늘도 이따끔씩 쳐다보고, 꽃이든 풀이든 작은 것들도 아름답게 만나면서
가세요.”

오늘 하루 공평하게 내려진 축복을 받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는 당부다.

∼신원∼답동∼ “강이 너무 새파래서 모시옷을 요리 담가봤다고 안하나”
하동 송림 백사장 앞 강은 한껏 몸을 부풀려 있다. 여학생들처럼 조잘조잘 걸으며 초록 잎새
위에 파란 빛깔로 반짝이는 벌레를 들여다보거나, 강물 위 바위 위에서 명상하는 새를 멈추어
바라보거나, 자귀나무꽃 부채처럼 드리운 물가 잔물결에 마음을 실어 보거나…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답동마을에 닿는다.

인기척을 따라 들어간 철교 아랫집. 이행임(55)씨는 시집와서 35년을 이 강가에서 살았다.
“전에는 섬진강물이 그리도 맑았으까. 떠다가 그대로 밥물을 했다. 그러니 어른들이 그러셨다
안하나. 모시옷을 입고 나룻배를 건너가는데 그만 이 강이 너무 새파래서 모시옷을 요리
담가봤다고 안하나. 꼭 퍼어런 물이 들 것 같애서….”
 
예까지 오는 동안 나루터마다 끼고 있던 비슷비슷한 사연들이 이곳에서도 한 보따리
풀려나온다.

▲ 멀리 가까이 강마을을 지나는 길. 강바람 넘나드는 푸릇푸릇한 밭엔 일 나온 할매들의 머릿
수건이 숨은 그림처럼 박혀 있었다.
ⓒ 남신희 기자

“그 때는 배도 참 얄궂은 것 타고 댕깃다. 얼음 얼면 걸음으로 건너댕기고. 어매들은 이편에
서서 얼음 깨지면 죽는다고 소리 소리 지르고….”

앞 강물이 민물이었던 때라 그리도 깡깡 얼었을 거라 한다. 지금에야 오백리 머나먼 여정을
본디 제 갈 길대로 흘러오지 못한 강물은 바다가 가까운 이 곳에선 완전히 짠물이 돼버리고
만다. 가문 날이 오래 되면 바다처럼 적조가 들어서 재첩이고 다슬기고 죄다 건질 수가 없게
됐다.

산줄기가 돈박난 것 같다고 돈박골이라 하는 마을. 한때는 100가구가 살며 북적거리던 시절도
있었다. “순천에서 이고 지고 와서 여기서 배타고 하동으로 어디로 가는 거라.

그래노니 옹구공장도 있고, 시장도 있고, 이발소도 있고….” 강을 가로지르는 철교가 놓이기
전까지 커다란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돈박나루터는 그림 같은 곳이었다.

“우리는 아즉 갱조개로 묵고 산다. 마을이 공동으로 들어가는기라.
그랄 때는 참 재미지제 뭐.”
강마을에 깃들어 살며 강마을의 삶을 사랑하는 이행임씨.
“우리 동네가 봄이 제일 먼저 올라오는 동네”라고, 잊었다는 듯 자랑 하나를 더 보탠다.

드디어 매화가 피었노라고 해마다 춘신을 전하는 마을. 난분분 꽃소식은 이곳으로부터 강을
거슬러 올라가 청매실농원 비탈에서 하얗게 축포로 터진다. 65년 시집와 돌투성이 산자락을
매화마을로 만든 홍쌍리 여사. “이 손이 호미가 되고 괭이가 되었소.

섬진강 물도 나의 눈물보다 더 많지 않을 거요.” 꿈을 현실로 바꾼 그 한 사람의 의지로 봄날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남풍엔 매화향기가 그토록 흐드러지는 것이다.

▲ 이어걷기 여드레째 날의 출발지 섬진교가 저만치 보인다.
ⓒ 남신희 기자

∼월길리∼송금리∼ “너들은 밥이나 묵고 댕기나”

아직 포장되지 않은 강둑길은 걷는 이들에겐 ‘비단길’이다. ‘섬진강변 도로’ 예정지라니,
가까운 날에 이 길은 자동차를 위해 아스팔트로 덮일 것이다. 그런 길에선 어느 풀섶에선지
내 등을 타고 올라와 고물고물 뜻밖의 여행을 한 자벌레와의 인연 같은 것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너는 나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아카시아 줄기 하나 따서 잎사귀를 뜯어내며
명랑하게 외고 가는 저 청년의 무심심한 놀이도,  “우리 수박 서리나 할까요”
불쑥 꺼내놓는 장난기도 이렇듯 느리게 가는 길 위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나무 의사 우종영이 권하는 걷기의 속도는 한 시간에 1㎞를 넘지 않는 것.
이 나무 저 나무에게 인사하랴 껴안아 보랴 하다 보면 늘 그처럼 게을러지기 일쑤라 했다.

효율과 경제의 시대에 강물결이 자꾸만 발바닥을 간질이는 것 같은 둑길을 찬찬히 걸으며
이 길이 섬진강 도보여행자를 매혹시키는 흙길로 다듬어지기를 ‘시대착오적으로’ 소망해 본다.

천상데미샘에서부터 우리가 이제 다다르게 될 망덕포구까지 섬진강 물길을 따라 가장
평화롭고 느린 길을 이어내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처럼, 강을 따라 걸어가는 이들이 섬진강 도보길 표지를
맞춤한 자리에서 만나고, 섬진강도보여행객 전용쉼터에서 고요하게 쉴 수 있고, 드문드문
강마을에 들러 함뿍 웃음을 담은 할배 할매로부터 ‘예까지 잘 걸어왔으니 끝까지 싸목싸목
잘 가거라’고 예쁜 도장 하나쯤 받을 수 있고….

그리하여 그 소박한 인증들이 이 땅에 아름답게 살아가려는 이들의 긍지가 되는,
그런 길을 만들어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신송, 송현, 금동마을을 지나가는 길. 강바람 넘나드는 푸릇푸릇한 밭엔 일 나온 할매들의
머릿수건이 숨은 그림처럼 박혀 있다.
“오후 네 시 되믄 나와야 헌다. 오늘은 해가 좀 수월헌게 싹 다 일찍 기나왔다. 너들은  
밥이나 묵고 댕기나. 시상 배가 고파서 어찌나. 놀러댕겨도 배가 불러야 좋제.”

열 아홉에 송현서 금동으로 가마 타고 시집와서 인자 ‘칠십 너이’라는 송현떡. 보리 비고
나믄 보리 이삭 주워다가 주린 배 채우는 시절을 겪어낸 할매는 놀러댕기는 젊은것들이
행여 끼니를 굶고 다닐까 걱정이다.  

“감자 숭궈놓고 싹 비래(버려) 불고 인자 콩 심는다. 늦콩이라. 이런 거사 깔짝깔짝 허믄 허제.”
깔짝깔짝=어렵고 지난한 일 앞에서도 엄살 부리지 않고 그깟 것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한
할매들이 자주 사용하는 의태어.
 
저기 갈매기 난다. 바다가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 돈탁마을을 짱짱하게 지키고 선 푸르른 송림. 지난해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장려상을 받았다.
ⓒ 남인희 기자

∼돈탁마을∼ “여그는 파 보믄 순 조개껍데기라”

저 멀리서 쳐다보면 거북등같이 생겼다고 ‘거북등’이라 부르는 돈탁마을. 마을 앞을 지키고
선 푸른 솔숲의 자태가 범상치 않다. 홍수를 막기 위해 심은 나무들이 제 역할을 짱짱히 하고
있는데, 게다가 지난해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장려상을 받았다고 한다.

깔끄막 넘어가는 곁으로 김봉규(62) 어르신의 고추밭엔 허연 조개껍데기가 가득 깔려 있다.
“여그는 파 보믄 순 조개껍데기라. 전에 요 자리가 바다였던 거라.”

돈탁은 신석기 유물인 패총(조개무덤)터가 발굴된 마을이다. BC4000년경 신석기인들이
이 곳에 살면서 조개를 그리 묵고 살았노라고, 빗살무늬토기조각이며 패각(貝角)등의
유물이 나왔다는 곳이다.

솔숲 안에 든 정자엔 솔바람 불겠지, 소나무 목침을 베고 누우면 솔바람소리 들리겠지.
허나 갈 길이 솔찬하니 다시 길 위로 나선다.
이제 ‘비단길’은 끝나고 아스팔트길이다. 봉암산성 표지판을 지나 드디어 반가운 이정표를
만난다.

‘망덕포구 2km’.

▲ 강은 이제 바다가 되었다. 저만치 보이는 섬이 배알도. 저 섬처럼 절한다.
예까지 흘러오면서 만난 그 모든 인연들에.
ⓒ 김태성 기자

∼선소마을~망덕포구
“여가 그리 벅덕벅덕 푸졌다”
자동차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섬진강휴게소에 닿으면 늘 그 뒤로 넘어와 부추를
송송 띄우낸 푸르스름한 재첩국을 “이건 섬진강국이야”라며 먹곤 했다. 오늘은 걸음으로
닿은 재첩집 앞을 그냥 지나친다. 망덕이 코앞이다.
덕유산을 바라보고 있어 ‘망덕(望德)’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망덕산 발치를 해안도로가
휘감고 있다.

“들에 가면 곡석 있고, 산에 드가면 낭구 있고, 강에 나가면 생선 있고, 김 조개 재첩에 숭어
농어 항어에 가을이면 전어에,‘망덕 전어’라고 안하나, 굵은 벙꿀(벗굴)에, 여가 그리 푸졌다.

물이 바짝 써믄 배 타고 가서 장화 신고 장갑 찌고 섶에 놓은 기(게)도 따고. 여가 벅덕벅덕했어.
인자 불꺼진 항구 돼 불었다. 제철 생기고 나서부터 오염이 올라와서 인자는 다 들어가불고
만고에 해묵을 게 없다.”

ⓒ 김태성 기자

일출식당 전순도(72) 할머니는 망덕에서 질로 사랑스런 것은 벙꿀이라고 한다.
“큰 손바닥만썩 안하나. 껍데기가 요리 이삐까. 차말로 복스럽고.”
 
쌀뜨물처럼 뽀얀 알의 맛이 일품인 강굴은 섬진강 물속 바위에 붙어서만 사는데 수중에서
보면 꽃핀 듯 화사하다 한다. 설을 전후해 칼바람 속에서 따기 시작해 4월 말까지 채취하는 데
크기가 무려 30cm. 어른 신발짝보다 크다.

빗방울 섞인 바람 선선한 망덕포구. 눈앞의 작은 섬은 ‘배알도(拜謁島)’. 망덕산을 향해 
배알하는 형상이어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꼭 저 섬처럼 절하고 싶다. 걷기는 세상을 여행하는 방법이자 마음을 여행하는 방법이라 했던가.
걷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풍경과 사람들, 작은 꽃들과 나비와 자벌레와 그리고 모든
것들과의 인연에 절한다.

오백리 섬진강 물길 따라 우리 예까지 흘러왔으니, 흐르는 강물처럼 모든 것이 흘러간다는
것을, 이 강물도 나의 삶도 흘러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섬진강의 끝에서 다시 되새겨본다.


ⓒ 김태성 기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망덕에서 만난 ‘윤동주 시인 원고 숨겨져있던 곳’

촛불의 거대한 일렁임에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거짓과 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시인이란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일까.

당장 눈앞의 이익만 좇는 후안무치한 사람들에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란 염원과 성찰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비실용’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고 자기보호성 진술을 할 일이 터졌을 때나 비로소 ‘쓸모’가 있을까.

점점 귀해져 가는 ‘부끄럼’의 미덕을 그 집 앞에서 떠올려 본다. 부끄럼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또 그 부끄럼의 힘으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갔던 사람.

망덕포구에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하는 전어만 있는 게 아니다. 저 멀리 북간도나 후쿠오카와 함께 떠오르는 시인 윤동주(1917∼1945)를 예기치 않게 섬진강 끝자락 남도땅에서 맞닥뜨린다.

‘윤동주 시인 유고(遺稿) 보존 정병욱 교수 가옥’(광양 진월면 망덕리 23번지·등록문화재 341호). 윤동주의 시 원고가 숨겨져 있던 집이 예전 모습대로 남겨져 있다.
원고가 숨겨져 있던 곳은 마룻장 밑. 말들마저 짓눌렸던 시대의 긴장이 오늘에도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세워진 이 집은 국문학자 정병욱(1922∼1982)의 옛 집이다. 주변 횟집들이 새로 층수를 올리고 포구가 번화해져 가는 동안에도 이 집은 1920년대 점포주택(양조장을 겸한)의 모습을 지키며 지난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1941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여의치 않게 되자 자필원고를 친한 후배 정병욱에게 맡기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시인은 1943년 일본 유학중 항일운동 혐의로 일본경찰에 검거돼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지만, 이 집에서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은밀히 보존되던 시인의 유고는 정병욱에 의해 1948년 한 권의 시집으로 간행돼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서시’ ‘자화상’ ‘별 헤는 밤’ 같은 원고들이 이 곳에서 보존되지 않았더라면, 한 아름다운 청년의 존재는 묻혀졌을지도 모른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새로운 길’ 중)
섬진강 도보길을 맺는 자리에서 만난 윤동주 시인의 시. 길에는 그침이 없다고 말해준다.

글=남신희 기자

 

사진설명


강물 위 바위 위에서 명상하는 새와 오래 눈맞추다. 걷는다는 것은 마음을 여행하는 것.

이어걷기 여드레째 날의 출발지 섬진교가 저만치 보인다.

멀리 가까이 강마을을 지나는 길. 강바람 넘나드는 푸릇푸릇한 밭엔 일 나온 할매들의
머릿수건이 숨은 그림처럼 박혀 있었다.

저 푸른 옥수수숲을 가꾼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장하다.

물결을 흔들고, 도라지꽃을 흔들고, 여름 한낮을 걷는 자의 마음을 흔들고 가는 바람.
강바람.

돈탁마을을 짱짱하게 지키고 선 푸르른 송림. 지난해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장려상을 받았다.

강은 이제 바다가 되었다. 저만치 보이는 섬이 배알도. 저 섬처럼 절한다.
예까지 흘러오면서 만난 그 모든 인연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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