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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27/토/중랑] 용마산폭포공원/망우리공동묘지
백선희  2008-09-28 16:26:15, H : 21, V : 2


[08/09/27/토/중랑/맑음]
용마산폭포공원/망우리공동묘지


= 걸은 거리: 6km
= 일 정 : 용마산 폭포공원(100대 절명상) - 사가정공원(점심) - 용마산능선길 - 망우리공동묘지(100대 절명상) - 사가정역 근처(저녁) - 송파 불광사(잠자리)
= 글쓴이 : 백선희(강릉등불)



                  
                


        
        


                    
                   


  지식을 나에게 들이대라!

  밤새 노닐던 무거운 기운을 안고 아침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안일한 생각으로 행동하는 순례단원들에게 도법스님께서는 너무나 당연히 대접받아야할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시며, 겸손과 긴장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가 갖고있는 지식으로 자기를 정당화시키거나 상대에게 이기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키라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지식을 적용시킨다!’ 참된 지식을 내가 그렇게 실천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참된 지식이란 뭔가 생각하게 되고 내가 어떻게 그에 빗대어 살고 있는지 또 묻습니다. 그러면 절명상 문안 20.21번의 말씀처럼 그릇된 버르장머리와 소견머리를 고치고 내면의 소리에 충실할 수 있게 될 것이지요.


  “다 그런거여”

  중랑3동어린이집 아이들의 깨알 같은 정성이 담긴 편지와 양말과 손수건을 들고, 선생님들의 환한 기운을 가득 안고 나서는 길입니다. 용마산 공원에 도착하여 오늘 안내해주실 김선미님, 해맑은공부방 장애청소년들과 인정현 선생님, 그리고 청년숲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 분들과 함께 용마산 인공폭포 앞 광장에서 100대 절명상을 하고 걸었지요.
  용마산은 화강암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곳에 채석장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그 이후 20년동안 산이 봉우리 하나 다 없어질 정도로 깎여나가고, 그 깎여나간 골재들은 종로의 건물들을 짓는데 일조했다 합니다. 난개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요. 흉터였던 곳에 임시처방을 했습니다. 기암절벽에 인공폭포를 만들고 공원을 세운 것이지요.
  “이걸 파다가 아파트짓고 도서관짓고 다 그런거여” 스님의 말씀 속에 뼈를 묻습니다.
  죄책감은 공사당사자와 골재사용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나의 이기심과 욕심을 조절하지 않는 마음에서부터 드는 것입니다.

  용마산 둘레를 돌아보고 다시 광장 앞에 모여 11시부터 시작될 폭포를 보려고 기다렸습니다. 인공폭포는 한여름 7,8월에는 천만원이 넘는 전기세가 나간다고 합니다. 공원관리자 아저씨께 순례단에 대한 설명을 드리고 폭포이야기를 묻는데,
  “잠깐 있어요! 3분있으면 틀어줄게” 하며 달려가십니다.
  잠시 후에 절벽 위에서 물이 떨어집니다. 장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쇼’에 불과했습니다. 자본과 탐욕을 끊임없이 추구하면서도 자연에 대한 연민을 늘 찾을 수 밖에 없는 결과이리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하고, 동네시장을 돌아 사가정공원으로 걸어갔습니다.  
  사가정 공원 팔각정 옆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순례단에 자주 오시는 관음성님과 환희성님의 지인이신 정숙인님께서 도시락을 싸오셨습니다. 맛깔스러운 음식이 순례자의 노곤함을 달랬습니다. 해맑은 공부방 아이들은 신나게 놀며 휴식시간을 보냈습니다.

  오후순례는 아차산 줄기인 용마산 능선에 올라 능선을 따라 망우리 공동묘지길로 향했습니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순례단을 보시며 어리게 보이는 도담이에게 학교안가냐고 묻습니다.
  “어리다는 건 착각이에요” 도담은 당차게 말했습니다.
  늘 보이는 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습관이 만들어낸 현상일까요? 나이가 어린 건 맞지만, 스펀지같이 빨아들이고 생각하는 순수한 도담의 모습이 요즘 순례단에서는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사람 중의 최고라 느껴졌습니다.

  용마산 능선을 따라 망우리로 가는 길에는 빽빽이 서있는 고층 아파트와 곧 재개발될 비스듬한 언덕 위의 낮은 집들, 저 멀리 북한산·도봉산·소요산·수락산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내려가는 길부터는 망우리 공원묘지라 합니다. 이곳은 잘 정리된 공원묘지가 아니고 워낙 오래되어 그대로 이곳저곳에 무덤이 있는 공동묘지였습니다.


  망자들의 안식처

* 죽산 조봉암 선생의 묘(1899~1959)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길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

* 서병호 선생(1885~1972, 독립운동가)
내가 있기 위해서는 나라가 있어야 하고
나라가 있기 위해서는 내가 있어야 하니
나라와 나와의 관계를 절실히 깨닫는 국민이 되자.

* 만해 한용운 선생의 묘
부인의 묘와 함께 있다.
3.1운동 선언자 중에 유일하게 변절하지 않는 마지막 사람(1879~1944, 독립운동가, 시인)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것은 인류가 공통으로 가진 본성으로써,
이같은 본성은 남이 꺾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스스로 자기 민족의 자존성을
억제하려하여도 되지 않는 것이다.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 중에서]

  그 밖에, 어린이를 위해 헌신했던 방정환 선생,
  “우리 가족에게 먼저 실험해보아야 안심하고 쓸 수 있지 않겠느냐”하시던 우두 보급의 선구자·의학교육자인 지석영 선생(1885~1835) 등의 묘가 함께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마음에 새기시고 온 마음 다해 기꺼이 목숨을 걸었던 이 말씀들이 양심에 소리에 충실한 모습으로 비춰졌습니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기 양심의 소리, 그 속에서 나오는 떳떳함. 그 순수함이 느껴져 부끄러웠습니다. 또 부러웠습니다. 자기인생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살았던 분들이니까요.  

  공동묘지에서 내려와 망자들을 위한 100대절명상을 드렸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불광사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대부분의 서울의 사람들은 시간이 생명으로 바삐 사시는지라 준비되지 않은 만남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조금 더 성의를 다해 만나야겠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다해 손을 건네야겠습니다.


** 함께한 사람들
= 도법, 장경훈, 이도담, 최성진, 이상환, 김경찬, 정수영, 백선희(8명)
= 최종수(신부/전주), 안명옥(양주), 광진구(관음성,김인순,환희성), 이종순(중랑구), 김영미(하남), 정윤주(충주), 김선미(중랑구), 해맑은공부방 10명, 청년숲 5명. 총 24명      
** 감사합니다!  
순례안내(김선미), 아침&떡&양말&황토손수건&엿(중랑3동어린이집), 점심식사(정숙인), 잠자리(불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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