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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26/금/중랑/맑음]
봉화산/법장사/녹색병원/중화3동어린이집
= 걸은 거리: 11km
= 일 정 : 중랑구청 - 봉화산 봉수대(100대 절명상) - 법장사(점심) - 먹골역 - 중화역 - 면목2동 사거리 - 녹색병원(100대 절명상) - 중화3동 어린이집(간담회/잠자리)
= 글쓴이 : 백선희(강릉등불)
선선한 바람이 붑니다. 하룻밤 새 성큼 다가온 가을 냄새에 피부가 생각보다 먼저 반응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기에 행복한 아침이 되었습니다.
아차산 줄기에서 평화의 불을 켜다.
한성포교원 법농스님과 보살님의 따뜻한 환대를 받고, 나오는 길입니다. 중랑구청에서 오늘 안내를 해주실 중랑문화원 향토문화해설사 분들을 만났습니다. 중랑구청 옆으로 지나가니 큰 벽화가 있었는데, 느티나무·배꽃·중랑천·봉화산·망우산 등등 벽화 하나에 중랑구의 모든 역사가 담겨있었습니다. 여러 곳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은 이 곳이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동네임을 알려준다 합니다.

면목동 토성을 보면 마을과 마을을 중심으로 한 부락국가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조선시대 때, 중랑구는 도성 밖 경기도 양주였습니다. 물과 흙뿐만 아니라 땔감도 충분해서 8개 이상의 가마터가 봉화산에 있었는데, 도성 안으로의 안정적인 판로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벽화의 기운을 따라 봉화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봉화산으로 오르는 길에 배나무를 보았습니다. 일명, 먹골배라 하여 먹을 많이 갈고 팔았던 고을에 모래가 많이 섞여있는 흙에서 자란 배가 유명한 곳이라 합니다.
조선시대 때,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여 단종복위 운동을 하던 신하들 중에 ‘왕방연’이라는 사람이 단종을 청령포로 호송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합니다. 사약을 먹이고 돌아오는 내내 가슴을 졸이며 슬퍼하였는데, 한양에 돌아와 관직을 버리고 봉화산 기슭에서 배나무를 심고, 수확한 배로 단종이 죽어간 영월을 향하여 제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안내자 이희정님은 그 때 가슴을 졸이며 읊던 시를 낭독해 주셨습니다. 먹골의 모래 많은 땅에서 자란 배는 태흥·구리까지 배가 맛있다는 소문이 돌아서 배농사가 퍼져나갔는데, 구리시에서 먹골배라 특허를 내어 봉화산 먹골배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고, 황실배라 이름하게 되었다 합니다. 이름이 제 이름과 뜻을 함께 지니고 사용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봉화산 봉수대 밑에서 중랑구 생명평화기원제를 드리니, 비둘기 한 마리가 빙 둘러앉은 가운데에, 순례자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지 제 먹이를 찾느라 야단이 났습니다. 마치 평화의 기운을 되찾은 듯 노니는 모습과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순례단의 모습, 그 위로 비치는 따사로운 햇살과 그 사이에 흐르는 바람의 소리가 빛바랜 영상처럼 순간을 포착하며 번뜩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평화에 만족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이 평정심을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스스로 다짐해 보았습니다.
중랑구의 봉화산, 망우산, 용마산이 아차산 줄기에서 이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에 산 아래 마을 마을이 생기면서 산이 끊어지게 된 것이라 하지요. 봉화산 뒤편 기슭 사이 배밭길로 지나 법장사로 향했습니다. 법장사에서 퇴휴 주지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맛있는 비빔밥을 탁발 받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신도 분들과 생명평화순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질문들이 오가고 안부가 전해지고 웃음이 오가는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편안하고 따뜻하게 돌보는 병원을 만나다.
오후순례는 법장사에서 먹골역 - 중화역 - 면목2동 사거리를 돌아 녹색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안내 없이 가는 길임에도 헤메지 않고 잘 걸어갔습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녹색병원을 알고 있었습니다. 녹색병원에 들어서자, 김봉구 외과의사께서 맞아주셨고, 이내 양길승 병원장님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5년 전에 만들어진 녹색병원은 원진레이온 직업병 환자들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1979년 8월, 가발공장이었던 YH무역에서 한 노동자의 암 판정으로 시작된 직업병 싸움으로 문 닫는 이후에 서울기독병원이 세워졌었고, 그 이후 7년 전 건물을 매입하여 녹색병원을 꾸렸다 합니다.

양길승 원장님과 함께 7층부터 1층까지 내려오는 길은 임옥상화백과 백옥란 화백 등 이곳이 마치 갤러리인가 착각할 정도로 많은 그림과 사진들이 걸려있었습니다. 각 층마다 햇볕이 들어오고 환기가 잘 되도록 유리창문으로 되어있었고, 치료하는 사람과 치료받는 사람 모두 편안하고 따뜻한 병원이 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었습니다. 장기요양병동·진폐증 환자병동·가족들이 돌보지 않는 요양병동도 있었습니다. 전국의 직업병 관련 문의는 이 곳 녹색병원으로 문의를 한다 할 정도라니 이런 병원이 곳곳에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순례단원 장경환님께서는 이런 병원이 없어도 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에서 일하셨던 분이 녹색치과를 열고, 갖가지 다양한 노동·의료·건강관련 단체에서 의식적으로 활동하셨던 분들이 병원 곳곳에서 희망의 씨앗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병원의 얼굴이라 할만한 지역건강센터에서는 간호사들과 사회복지사들이 지역 사람들을 방문·치료하고 있다고 합니다. 원장님께서는 직원들이 일에 보람을 찾으려면 봉사활동을 많이 해야 한다 말씀하셨지요. 곳곳에 혼신을 기울였을 그림들과 혼을 담았을 사진들을 보는 사람들의 영혼의 치유가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랬습니다.
‘사랑의 고리’라는 천주교 장애인단체에서 글라라(유민자)님께서 2005년에 많은 돈과 자신의 시신까지 병원에 기증하셨다 하셨습니다. 그 결에 양주에서 오신 안명옥님이 그 분을 추모하며 오늘 하루를 걸었다 하셨지요. 7층부터 1층까지 주욱 내려오는 신영복님의 글씨작품 밑에서 글씨내용의 혼을 받아 안고 생명평화의 기운을 내며 녹색병원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100대 절명상을 하였습니다.

“생명과 사람의 가치를 가장 귀하게 생각하고 잘 모시려고 하는 믿음들이 잘 만들어지고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현장엣 우리가 희망하는 생명평화의 삶이 깊이 스며들고 가득차올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절명상을 했습니다. -. 도법스님
“340명의 직원들이 다 의식적으로 녹색적인 것은 아니고 직장으로 안다. 환자와 의사에 대한 신뢰가 없고 기술적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들을 보면서 ‘의료도 상품화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명상 구절구절 그런 마음으로 살면 좋겠습니다. 생명평화가 발전할 수 있는 사회로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김봉구 외과의사
“80년도 납가루 만드는 공장 노동자였는데, 원진레이온현장을 보고 기겁했던 기억이 있다. 어려움이 이겠지만 이런 병원이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 이상환님
탁발순례의 보이지 않는 길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녹색병원의 과거와 녹색병원 이전의 과거와 녹색병원의 바로 지금! 생명의 기운으로 춤추기를 기원하며 절명상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생태유아공동체, 중화3동에서 꽃을 피우다.
마당에는 놀이터가 있고 3층건물인 중화3동어린이집에 도착했습니다. 생태유아교육을 실현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건물 곳곳에는 아이 눈높이에 맞는 설계와 아이를 위한 공간이 다양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순례단원 도담이가 3살 때, 이 어린이집을 다녔다고 합니다. 도담이 엄마가 오셔서 도담이와 동네를 살던 옛적 이야기들을 해주셨습니다. 도담에게는 더 의미 깊은 시간이었겠지요.
“식당밥 많이 드셨을 것 같아서 집에서 만든 밥으로 준비했어요.” 유혜주원장님과 선생님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아서 넘치게 고마웠습니다.

간담회는 중화3동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유혜주원장님의 예전에 야학을 같이했던 분들이 함께하셨습니다. 생명평화로고를 자기방식으로 풀어보는 시간을 가졌고,
“순수한 의미에서의 얻어먹고 얻어자는 경우가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이 오갔습니다. 도법스님께서는 처음 지리산순례 때는 미리 계획하고 탁발하지 않고 바로바로 지인들을 통해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운동으로 해가려다 보니 만남과 숙식을 계획하여 움직이게 되었다 설명해주셨습니다.
뒤늦게 오신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 최종수신부님께서는 방북을 하셨다 오신 이야기를 풀어내 주셨습니다. 개마고원과 백두산을 봤을 때, 인간으로서는 어쩌지 못할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에 대해 이야기해주셨고, 평양 등 북한의 문화와 현실에 대해서 절절하게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만남이 이어지는 내내, 중화3동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환한 미소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 것 같았습니다. 아니면 아이들의 행복한 기운을 얻어 선생님들이 기쁨의 힘을 내는 것일까요? 뒷풀이자리까지 마련해주시고 애쓰신 유혜주 원장님과 중화3동 어린이집 선생님들, 마음써준 아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함께한 사람들
= 도법, 장경훈, 천선혜, 이도담, 최성진, 이상환, 김경찬, 정수영, 백선희(8명)
= 안명옥(양주), 이연규(오산), 중랑문화원(향토문화해설사/이희정,이혜성,문정애,이영숙,김성숙), 퇴휴스님 외 신도11명(법장사), 양길승/김봉구(녹색병원), 유혜주님 외 중화3동어린이집(14명), 최현수(송파구), 총36명
** 감사합니다!
순례안내(이희정), 아침식사(한성포교원), 점심식사(법장사), 저녁식사(중화3동 어린이집), 잠자리(중화3동 어린이집), 음료(김인순), 후원금(법농스님, 퇴휴스님, 정연희, 남궁정, 허계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