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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공재 윤두서 <자화상>

▲ 공재 윤두서 자화상. 치켜뜬 눈이 정면을 쏘아보고 있는 듯하
지만, 자세히 보면 무언가 골똘한 생각에 빠져 있는 듯 철학적이
면서, 형형한 눈빛을 지니고 있다.
ⓒ 전라도닷컴

삼국지의 용장(勇將) 장비를 닮은 조선시대 선비가 해남 땅에 살았습니다.
‘당신은 누구세요?’ 하며 말을 건네니,
‘나는 윤두서요’  하고 형형한 눈빛으로 지긋이 말을 붙여 옵니다.

철학적이면서 형형한 눈빛
윤두서(1668∼1715)는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선비화가입니다.
본관은 해남으로 호는 공재(恭齋)이며,
<어부사시사>의 저자인 고산 윤선도 선생의 증손자이자
다산 정약용 선생의 외할아버지입니다.

이 양반은 선비이면서도 그림을 빼어나게 잘 그렸습니다.
우리 산천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진경산수화'하면 누구나 겸재 정선을 떠올리지만,
사실 겸재보다 더 먼저 우리 산천을 있는 그대로 그려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우리에게 전해준 분이 공재입니다.

그가 그린 <나물 캐는 여인>, <짚신 삼는 노인> 따위의 그림이 그것을 증명해주지요.
또한 그는 당대에 누구보다도 말(馬) 그림을 잘 그린 선묘(線描)가 능한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린 그림 중에서 가장 빼어난 것은 자기 자신을 그린 <자화상>입니다.

공재의 자화상을 처음 본 순간 저는 ‘이 양반 성질도 급하고 고집도 무쟈게 셌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꼼꼼히 보니 그림 속의 얼굴은 고집불통상이 아니라 오히려 다정다감하고
친근감 있는 후덕한 선비의 상이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사람의 첫 인상은 눈매에서 결정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양반의 눈은 매섭지가 않습니다.
치켜뜬 눈이 정면을 쏘아보고 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무언가 골똘한 생각에 빠져 있는 듯 철학적이면서,
형형한 눈빛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첫 인상이 무섭게 느껴졌을까요?
그것은 아마 위로 치켜올라간 눈썹과 눈꼬리,
그리고 얼굴 전체를 덮고 있는 구레나룻 때문일 겁니다.

구레나룻과 수염을 한번 유심히 들여다보세요.
가는 붓으로 정성을 다해 한 올 한 올 그린 수염이 가히 예술입니다.
구레나룻은 장비 것,
턱 수염은 아름다운 수염의 대명사인 관우 것과 비슷하며
풍모 또한 장비의 용맹과 관우의 지략을 합쳐놓은 듯합니다.

▲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사료집
진속》에 담겨있는 공재 윤두서의 자
화상. 유탄으로 그려진 상반신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나 보인다. 그런데 왜 현
재의 자화상에는 보이지 않을까. 후대
에 표구를 하는 과정에서 지워져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 전라도닷컴
상반신 사라진 얼굴상이어서 더 강렬
사실 이 그림은 완성작이 아닙니다.
대체적으로 전통적인 초상화는 옷을 입고 앉아 있는
모습을 전신 또는 반신상 위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 초상화는 두건을 쓴 얼굴이 귀가 없이
그려져 있습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얼굴 모습과
수염의 미려함이 더 살아났지만,
이런 초상화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럼, 왜 이 초상화만 유독 독특하게 그려졌을까요?
그것은 이 초상화가 진짜 초상화를 그리기 전에
연습 삼아 또는 밑받침 본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초본 초상화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초상화는 기름종이에 버드나무를
태워 만든 숯인 유탄(柳炭)으로 인물의 윤곽을 그
리고 그 위에 가는 붓으로 정식 선을 긋습니다.

그런 연후에 종이 뒷면에 기본이 되는 색을 진하게
칠한 후(이를 ‘배채(背彩)'라 합니다),
이 색이 은은하게 비치는 앞면에 음영을 넣고 세밀하게
색을 입혀 진짜 초상화를 그릴 초본을 완성합니다.

그 후 아교포수(阿膠泡水, 비단 올 사이의 구멍을 막아
채색을 좋게 하기 위하여 아교에 백반을 섞은 액을
비단에 바르는 것)한 비단을 초본 그림 위에 고정시켜
놓고 기름종이에 그린 선을 따라 비단 위에 먹 선을 그린 후, 비단 뒷면에 배채를 하고 앞면에서 정교한 색채 작업을 해서 진짜배기 초상화를 완성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초상화를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공재의 자화상은 종이에 그려져 있습니다.
또 일제시대 때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사료집진속(朝鮮史料集眞續)》이란 책에 남겨진
공재의 초상화를 보면 상반신이 목탄으로 분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현재 남아 있는
공재의 초상화는 자신의 자화상을 정식으로 그리기 전에 시험 삼아(또는 초본으로) 그린
미완성본 초상화라고 감히 주장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상반신이 그려져 있을 때보다, 상반신이 사라진 현재의 얼굴상이 더 강렬하게
공재 선생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때에 따라 완성품보다 미완성품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진귀한 예이지요. 

공재 윤두서의 작품 감상하기


                                                            쟁기질과 석공


               
                                                     선거도
  


                                                   돌깨는 석공

           

                                                                나물캐는 여인
 

                                                              짚신삼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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