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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이 말한다
“어서 꺼져!”


         

▲ 광주 금남공원. 휠체어 리프트는 버튼을 누르고 사람을 불러야
작동이 가능하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다.


나는 지체장애 3급 장애인이다.
지난 추석 연휴 마지막 날에 휠체어를 타는 친구와 함께 몇 주 전부터 벼르던 영화를 보러 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도착한 극장 입구에는 몇 개의 계단이 점령군처럼 가로막고 있었다.

계단 있는 극장에서 영화 보기 위한 소동
경사로가 있나 살펴보던 중 가장자리에서 특이한 물건을 발견했다. 이름하여 ‘수직형 리프트’였다(수직형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추락하여 사망한 사고도 있어서 장애인들에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러나 리프트는 휠체어를 탄 채로 혼자서 작동하기는 어렵게 만들어졌기에 직원 2명을 불러내고, 한바탕 소동을 치른 후에야 극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후에도 매표소를 거쳐 관람석에 앉을 때까지 계속해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물론 영화관람 후에도 다시 역순으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서야 극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에게 영화 관람은 아주 특별한 외출이거나 연중행사가 되었다.
지금도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 중에서 단체로 영화보기는 꽤 인기 있는 사업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단체로 영화를 관람한다는 것은 상당한 번거로움과 약간의 ‘쪽팔림’을 수반한다. 차라리 두세 명이 오붓하게 보는 편이 훨씬 좋다.

▲ 인도와 차도 사이의 턱. 휠체어로는 넘을 수 없는 벽.

▲ 계단도 경사로도 “오지 말라” 고 거부한다. 요식행위로 설치된, 급경사의 경사로는 있으나
마나. (광주시 이승희 의원 제공)

도시는 장애인들의 접근이 금지된 성역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에게 도시 전체는 생존을 위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전쟁터다. 그러나 이미 도시는 적군들에게 점령당한 지 오래다. 아니 처음부터 도시는 장애인을 위한 영토가 아니었다.
도시는 장애인들의 접근이 금지된 성역과도 같다. 계단이 그 증거다. 그러나 일부 ‘버르장머리 없는’ 장애인들은 결과가 뻔한 싸움을 오늘도 계속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휠체어로 이동하려면 목숨 담보로 내놓아야
장애인들에게 계단과의 싸움은 일상이다.
요즈음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실 공간을 임대하여 개조하고 있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출입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차도에서 인도로, 인도에서 건물로 들어오는 동선에 위치한 턱들을 깎아 내거나 경사로를 설치하고, 내부 화장실 등을 장애인의 ‘휠체어 바퀴’에 맞추고 있다. 
세상의 건물은 두 종류가 있다.
장애인의 접근이 가능한 ‘베리어프리(Barrier Free)’ 건물과 장애인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장애(障碍)’ 건물이다. 장애인들이 경험하는 장애는 장애 건물, 장애 버스, 장애 도로, 장애 환경을 만났을 때 생겨난다.
휠체어로 이동하려면 목숨을 담보로 내놓아야 한다.
인도는 늘상 좁거나 장애물이 많다. 휠체어를 타고 인도를 지나가는 것은 거의 언제나 불가능에 가깝다.
장애인들이 차도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리고 휠체어를 타고 차도로 이동하는 것은 모험이요 도박이다.

▲ 투표소 가는 길. 저 화살표를 따라 갈 수 없다.

▲ 광주 푸른길 주월~진월 구간. 또 턱이 가로막는다. 공원을 조성하면서 장애인이 공원에 어
떻게 들어올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고려하지 않는다.

차도 앞에서 개나 고양이마냥 ‘로드킬’ 당할 위기

계단과 턱으로 가로막힌 장애인들의 일상은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게 만든다.
횡단보도 없는 지하도나 육교 앞에서 장애인들은 쌩쌩 차들이 달리는 차도를 가로질러야 한다.
장애인들은 개나 고양이마냥 ‘로드킬(road kill)’을 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 실제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장애인이 많아지면서 장애인의 교통사고는 급증하고 있다.
도시의 얼굴은 철저히 야만이다.
혹자의 표현대로 장애인의 몸은 생리적으로 자본주의를 거부한다. 동물의 왕국처럼 강자만이 살아남는 도시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이 설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천국에도 계단이 있을까?
계단은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제한하고 배제하고 분리하고 거부하는 원흉이다.
하루에서 수십 번 계단은 나에게 말한다.
“여기는 장애인 따위가 들어올 곳이 못돼, 어서 꺼져!”
나는 계단에게 말한다.
“좀 봐 주라. 나도 좀 살아야 되지 않겠니?”
언젠가 다른 장애인들과 ‘천국에도 계단이 있을까?’ 진지하게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천국에 계단이 있다면 그 곳은 진정한 천국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천국은 멀고 이 땅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오 주여, 지금 이 낮은 곳에 임하소서!

김용목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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