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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지구온난화의 기름 
 정호(초록정치연대 FTA특위 위원장/ 환경분야 대변인)


문제인식 1.

최근에 국내에서도 소개된 제레드 다이어먼드의 책 <문명의 붕괴>에는, 한때 풍요로웠던 문화를 일구었던 남태평양의 고도(孤島) 이스터 섬의 주민들이 어떤 연유에서였는지 모르지만, 거대한 석상(石像)들을 부족간에 경쟁적으로 세우는 데 몰두한 나머지 석상의 제작과 운반에 필요한 나무를 함부로 베어냄으로써 마침내 불모화된 자연 속에서 절멸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 생생하게 복원되어 있다. 생태계가 붕괴되고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최종 단계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마침내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동료인간을 죽이고, 식인(食人)까지 할 수밖에 없는 처참한 상황에 내몰린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오리라는 것을 그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아직도 숲이 남아있었을 때 이 절해고도의 숲을 죄다 파괴해서는 자기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여태까지 계속해왔던 관성대로 석상 건립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권력욕망을 제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섬의 마지막 남은 한 그루 나무까지 베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녹평 2007 3~4월 호)


문제인식 2.

맹자의 첫 편에 나온 이야기다. 양혜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노인께서 천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오셨으니, 장차 저희 나라의 국익을 위해 좋은 방도가 있으시겠지요?"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하필 국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왕께서 '어떻게 하면 국익에 도움이 될까? 하고 생각하면, 높은 관리들은 '어떻게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모두 '어떻게 하면 내 몸만을 이롭게 할까?'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니, 서로 자기의 이익만을 취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집니다." 맹자의 이 양혜왕 편은 국익을 생각하기 전에 무엇이 올바른 일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1. 문제는 국익론이다.

A학점, 수, D학점, 낙제... FTA에 대한 찬반그룹의 평가다. FTA가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의 여부가 초점이다. 협상단과 대통령의 말대로 우리가 얻은 것이 많은 협상이거나, 민노당의 주장대로 얻은 것은 없고 다 내준 협상이거나, 이렇게 정리하는 것은 모두 국익에 기초한 주장이다. FTA를 국익의 관점에서 보면 실은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WTO체제 하에서 FTA는 단순히 당사국 간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준을 넘어선다. '포괄적 경제통합협정’이다. FTA는 한마디로 초국적기업과 금융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무제한한 이윤추구 활동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시장구축이다. 결국 공동체의 호혜적 나눔과 같은 전통적인 보호조치를 남김없이 철폐할 것을 강요하는 시스템이다.

오늘날 세계를 통치하는 권력은 어느 국민에 의해서도 선출된 바가 없는 초국적기업이나 금융기관의 간부, 그리고 그들과 이해를 같이하는 경제학자, 전문가들이 밀실에서 행하는 결정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 권력 엘리트들은 세계적 기업들의 무제한한 영리활동을 통해서 '세계 전체'가 부유해질 것이며, 그럼으로써 세계의 빈곤문제가 해소될 것이라고 말해 왔다. 신자유주의의 신봉자들은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나 공적 권력에 의한 개입을 극도로 혐오하면서 오직 시장의 규칙만 따를 것을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 그들에게 시장은 무소불위의 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들은 늘 경제는 어디까지나 경제논리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때 경제논리란 어떠한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 요구에 의해서도 제어(制御)되지 않는 자율적인 시장 메커니즘을 뜻한다.

그러나 이 무한대의 자유경쟁을 부추기는 시장만능주의의 필연적인 귀결은 극단적인 약육강식의 상황, 즉 세상의 가장 힘없는 자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들끼리 피나는 경쟁, 투쟁 속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 결과 당연히 경쟁에서 진 패배자들이 속출하지만, 이들을 껴안는 시장은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대처 수상이 매몰차게 말했듯이, 자유시장주의의 교의(敎義) 속에서는 "사회적 연대라는 개념은 없다." 이른바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나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시장원리주의가 최우선적인 경제논리가 될 때, 거기에는 사회적 약자들과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는 공공성의 공간이 극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이미 세계 전역에 걸쳐 충분히 증명되어온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제논리를 계속하여 고집한다면, 그것은 결국 정책 결정자들이 무슨 이유로든 사회적 약자와 환경, 그리고 민주주의를 제물로 바치는 일이다. 결국 국익론은 지구생태계의 전면적 위기 앞에 새롭게 검토되는 지역적 자립경제를 원천봉쇄해 버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올가미 그 이상도 아니다.


2. FTA는 지구온난화에 기름을 붓는 일이다.

지난 2월 2일 IPCC는 온난화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는 과학적 보고를 발표한 후, 4월 6일 보고서에서 기후변화의 진행속도가 마치 ‘멸종의 고속도로’를 치달리는 자동차로 비유하며 그 심각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이번 보고서는 인류가 되돌리기 힘든 심각한 상황에 처했으며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경고였다.

기후변화의 문제는 미국이 쥐고 있다. 미국은 기후 재앙의 주범이다. 지금도 전 세계 온실가스의 4/1을 배출하고 있고 교토의정서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있는 국가군의 36%를 배출한다. 역사적인 누계를 따지면 미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9%에 이른다. 이런 미국은 계속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재를 뿌리고 있다. 교토의정서 서명을 철회한 데 이어, 기술을 통한 자발적 감축을 고집하면서 국제사회와는 상반된 길을 걷고 있다. 미국이 복귀하지 않는다면 교토의정서나 추가적인 온실가스 감축 노력도 본래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각각 전 세계 온실가스의 18%와 4%를 배출하는 중국과 인도도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중요한 당사자임에 분명하다. 중국과 인도는 최근 온실가스 배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양국에는 세계인구의 거의 40%가 살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 배출량 기여도도 크다. 한중, 한인도 FTA가 염려되는 부분이다.

한국 역시 '온난화 주범‘이다. 한국은 현재 온실가스 배출 세계 10위의 나라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통계에 따르면 지난 1990년에서 2004년 사이에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무려 104.6%가 증가했다. 같은 기간 유럽연합이 불과 1.6% 증가했다. 더군다나 2003년에 한국 정부가 발간하여 유엔에 제출한 국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에는 200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이 70%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국가 보고서는 온난화에 대한 국가대책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미국이 자국의 입지와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만든 '아시아-태평양 기후변화 파트너십'에 참여하고 있는데, 한미FTA체결은 경제종속을 넘어서 기후정책의 예속이다. 이는 미국이 자행하고 있는 온난화라는 지구범죄행위에 적극 가담하는 일이다. 지난 10월 니콜라스 스턴 전 세계은행 부총재는 기후 변화의 경제적 비용을 분석하면서, 지구 온난화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세계 GDP의 20%나 되는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FTA체결 보다 더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지구온난화 문제라는 것이다.


3. 한국농업, 포기해서는 안된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농업을 지키려면 FTA 체결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말은 거꾸로 한국농업과 농민은 결국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생각은 한마디로 농업은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포기하고 다른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쌀을 지킬 이유도 사실 없다. 국내 쌀값은 국제 가격의 네 배를 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세계 어디에도 경쟁력이 없다고 농업을 포기한 나라는 없다. 일본, 프랑스 등 많은 선진국들은 오히려 농업을 주요 산업으로 지키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4년 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에 대비해 농업대책을 발표하면서 ‘대책을 세우고, 개방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FTA협상 등에 대비해 대책을 세운 뒤 개방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미국과의 합의내용은 기존 정부 정책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경제성장률 때문에 농업을 포기하는 것은 지구의 파멸 전에 민족생존권의 자멸을 부르는 일이다.

지구의 미래는 소농의 부활에 달려있다는 쓰노 유킨도(津野幸人)가 생각난다. 그는 FTA에 절망하고 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이 지구상에서 가장 존중받아 마땅한 일은 농사일이고, 그 농사일의 주체가 되는 사람으로서 소농은 생태민주주의의 초석이라고 강조한다. 현대사회가 농업중심의 자급적 생존방식을 버리고, 공업사회를 지향해오는 과정에서 지구의 생태적 미래를 생각할 때, 공업화의 전략으로는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다는 것, 즉 농업중심의 순환사회가 아니고는 장기적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그리고 대규모 경작지를 근거로 기계화와 화학물질에 의존하는 '현대적 농법'으로는 이러한 순환사회를 이룩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급속히 사라져가는 소농의 존재를 되살리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문명사회의 지속적인 생존여부를 결정하는 사활적인 문제이다.(녹평 2007 3~4월 호) 그런데 지금의 FTA는 소농의 파산을 기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무서운 것은 추진론자들이 미국산 옥수수의 한정 없는 소비에 의존하는 공장식 축산업과 그 산물인 맥도널드 햄버거가 번창하는 세계에 내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중국 시장에 핸드폰을 내다팔기 위해서 한국의 마늘 농가가 파산을 감수해야 하는 경제시스템의 필연적인 결과는 전체 사회의 몰락이라는 것을 꿰뚫어보고 있다. 갯벌과 바다를 죽이고, 아름다운 산과 들을 거덜내면서 '친환경 개발' 운운한다는 건 결국 기득권자들의 상투적인 속임수라는 것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지금 우리의 핵심적인 비극은, 이러한 사물의 핵심을 뚫어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소농의 몰락과 더불어 우리사회에서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소농은 식량안보와 국토보존이라는 측면에서만 보호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소농을 살리는 문제는 우리의 인간다운 삶 전체의 운명과 직결된 문제이다.

4. 어떻게 할 것인가

1) 국익론을 돌파하자.

FTA를 국익론으로 접근하면 반대운동은 필패한다. 주고받는 게임이기 때문에 기준과 해석에 따라 결과는 다르게 나온다. 문제의 핵심은 성장론이다. 지구는 더 이상의 성장은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성장의 한계를 지적한 과학적 보고서는 이미 보편화 된 이야기 아닌가. 지구온난화의 위기 앞에 좋은 FTA는 없다. 국익과 지구온난화 중 무엇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가.

2) 이제는 소비자와 환경운동가, 종교인이 나설 때다.

정부는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어질 한EU, 한중 FTA도 밀어붙일 전망이다. 한미 FTA 국회비준 반대운동이 중요하다. 대선국면에서 국민의 반대여론을 조직해야 한다. 광우병소고기가 결국 쟁점이다. 찬성론자들을 상대로 설득해야 한다. 일본의 입장이 중요한 자료이다. 한미FTA반대 소비자대책위와 환경대책위가 반대운동의 중심에 서야 한다. 소대위는 생명주권과 안전문제를, 환대위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져야 한다. 여기에 종교대책위가 결합해야 한다. 농대위는 지금 전선에 대치하고 있다. 상당히 지쳐 있다. 지도부가 구속된 지역도 있다. 이제 소비자와 환경운동가, 종교인이 전선에 나서야 한다. 국민투표 방식으로 결정하자는 것은 위험하다. 지구온난화는 투표로 확인할 문제가 아니다.

3) 생태적 대안사회로의 전환을 검토하는 그룹이 조직될 때다.

지역자립론에 주목해야 한다. 지역자립에 기초한 에너지 전환, 소농의 부활을 검토해야 한다. 한국 농업의 생존에 대하여 국민적 합의와 대타협이 나와야 한다. 온난화는 지구의 절멸을 예고하고 있다. 자본에게 생태계의 운명을 넘기는 FTA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기초한 성장은 멈추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도 위험한 생각이다. 결국 우리의 선택은 생명지속가능한 공동체여야 한다. 생태계평화생명평등사회로의 전환을 내놓고 이야기 할 때가 되었다. FTA는 민주주의 이전에 객관적 상황을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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