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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비협조운동' 글요약 모아봤어요 간디

2008/12/11 12:11    http://blog.naver.com/gangamin/70038621321

 

 

 

● 나는 할 수만 있다면 현재의 학교들을 완전히 버리고
   인도의 미래를 걸머지고 갈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종류의 교육을
   제공하고 싶다.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은 스스로 정부학교를 가득 메우기를 거부하면,
행정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온 세상을 한 번 보라.
그러면 우리는 아동들에게 전수되는 교육이 정부의 원활한 운영을 촉진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민중에 대한 교육이 중지되기를 한 순간이라도 바란 적이 없다.
그러나 학교를 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민중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돌볼 수 있다.
 

저는 학교와 대학이란 서기와 공무원을 생산해내는 공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정부에 대한 협조를 철회하기를 원하므로, 서기와 공무원들을 생산해내는
이 거대한 공장을 돕지 않을 것입니다.

타고르는 학생들이 갈 수 있는 다른 학교가 있기 전까지 정부학교를 포기하라는
부름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나는 문자교육을 결코 맹목적으로 숭배할 수 없다.
나의 경험은 문자교육이 그 자체로는 사람의 도덕적 위상을 높이는 데
단 1인치도 보태주는 것이 없고, 인격 형성과 문자 교육은 별개의 것임을 충분히
증명해 주었다.

정부학교가 우리의 용기를 꺽고 우리를 무력하게 하고 신을 없애버렸다는
견해를 나는 굳게 갖고 있다.

 나는 정부조직이 전적으로 또는 주로 악이었다는 점을 발견하자마자,
우리 아동들을 그것과 관계맺게 하는 것이 죄짓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학생들 가운데 가장 강하고 진실한 자들은 기댈만한 민족학교 없이
학교를 나와 버렸고, 이러한 최초의 자퇴가 최고 수준의 봉사였음을
나는 확신한다.

  

● 비협조는 인류를 구원하고 고양시켰던 종교들의 교리와 전통을
   위배하고 있는가?
 

바가바드 기타는 악의 세력과 선의 세력 사이의 비협조를 가르치는 복음이다.
예수는 사두개파와 바리새인들의 권세에 타협없이 도전했고, 진리를 위해
주저없이 자식을 부모로부터 떼어놓았다.

이슬람의 예언자는 메카에서 생명에 위협이 없는 한 가장 적극적인 방식으로
비협조를 했다. 

 

모든 종교는 정의로운 사람들과 왕들에 대해서는 협조의 의무를 엄격히 하고,
동시에 부정의한 사람과 왕들에 대해서는 비협조의 의무를 엄격히 명한다.

실제로 이 세상의 대부분의 경전들은 비협조를 넘어서, 악에 대한 나약한 순종
대신 오히려 폭력을 선호하고 있다. 
 

비록 단 한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사퇴함으로써 비협조한다고 해도,
그는 얻은 것이지 잃은 것은 아니다.
나는 전 민족이 무력화되기 보다는 천배나 더 큰 폭력을 각오할 것이다.
 

 

● 비협조는 인도가 칼과 폭력에 기초한 정의가 아니라
   자기 희생에 기초한 정의를 믿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저는 적 앞에서 맨 가슴을 드러내고 비무장인 채로 감히 목숨을 걸 수 있는
군인이 최강임을 믿습니다. 저는 비협조의 교의가 비폭력으로 남는 한
그 교의에 위헌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힘사에 대해 그것이 불상해라는 소극적인 상태만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적극적인 상태, 악인에게도 선을 베푼다는 적극적인 상태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그것은 악인이 악을 계속하도록 도와준다는 것,
또는 그것을 수동적으로 묵인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아힘사의 적극적인 상태인 사랑은 악인으로부터 여러분 자신을
분리시킴으로써 그 악인에게 저항할 것을 요구한다. 
 

비협조는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강력하게 능동적인 상태로서
물리적 저항이나 폭력보다 능동적이다. 수동적 저항은 오칭이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비협조는 비폭력적이어야 하고, 따라서 징벌이나 보복의
의미가 있어서는 안되고, 악의, 원한, 증오에 기초한 것이어서도 안된다.

나는 이 정부가 죄악의 길에서 벗어나는 데는 1천번이라도 협조할 것이지만,
죄악의 길을 지속하는 데는 단 한 순간이라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다.
 

유럽의 발아래 엎드려 있는 인도는 인류에게 아무런 희망을 줄 수 없다.
각성한 인도, 자유로운 인도는 신음하는 세계에 평화와 선의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비협조의 의도는 인도에 그 메시지를 설교할 수 있는 연단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 저는 혁명이 아니라 질서 잡힌 진보를 원합니다.
    저는 무질서의 질서를, 혼돈을 원치 않습니다.

정부의 전제적인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폭군이 확립한 질서가 있다면,
그 질서는 저에게 있어 전혀 질서가 아니고 무질서임을 말씀드립니다. 
 

● 나는 모든 비협조자들의 동기가 사랑이 아니라 무의미한 증오라는 점에 동의한다. 내가 증오를 무의미하다고 한 것은 수많은 비협조자들이 품고 있는 증오가 비협조의
계획에서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증오심에서 자신을 희생할 수는 없다.
그는 하릴없이 그가 상정한 원수에게 위해를 가하고자 한다.

 비협조에서 거두려는 성과는 처벌이 아니라 정의의 달성이다.
증오의 결과는 결코 정의가 아니고 보복이며 맹목적인 분노이다.
그러나 비협조자가 증오를 자신으로 돌리게 되면, 그 증오는 예봉을 상실하게 되고,
자신을 정화하며, 그가 증오하는 상대방이 개혁되도록,
그리고 오던 길을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서 원수로서 시작한 비협조자는 끝난 때는 친구가 되어 있다. 
 

필자는 불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는 비협조자들이 완전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완전하다면 비협조운동을 벌여야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
처음부터 악과 협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협조는 자신을 정화하거나 완전하게 만드는 시도이다.
그리고 대다수 사람은 지식이 아닌 신앙에서 정화의 길을 추종한다.
다른 말로 한다면 사심없는 지도자를 추종하는 이기적인 비협조자들은
결국 잘 해나갈 것이다.
그들이 비협조의 덕을 사심 없음의 교의로서 자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 비폭력 정신은 사람을 반드시 겸손으로 이끈다.
그러나 우리는 비협조운동원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고
관용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나는 그들이 자만심을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모든 당당함과 영광을 상실할 것임을 알고 있다.

우리가 자긍심을 느끼려면 더 많이 희생하는 것이 필요한데,
하물며 기고만장할 수가 있겠는가?
 

비협조는 큰소리, 허세, 엄포의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성실성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것은 순수하고 조용한 자기 희생을 요구한다.

그것은 국민적인 사업에 대한 우리의 정직성과 능력에 도전해온다.
그것은 생각을 실천하려는 운동이다.
 
그리고 우리는 많은 일을 하면 할수록,
예상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불완전성에 대한 생각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말 것이다.
 

말은 자신감의 결여를 나타내는데, 그 말이 거만할 때 특히 그렇다.
말은 자신의 대적으로 하여금 그 행동 자체의 진실성에 의심을 품게 한다.
그러므로 겸손은 신속한 성공으로 가는 열쇠이다.
나는 비협조운동원 개개인이 겸손과 자제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바란다. 
 

비협조 운동원의 참된 힘과 겸손은 협조의 주창자와 첨예한 차이가 있음에도
그를 사랑하는 일, 그를 견뎌내는 일이다.

협조 주창자를 비방하고 경멸하며 야유하는 것은 품위있는 일이 아니다.
품위는 맨발로 그의 집에 가서 그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시민불복종을 시작하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최초로 해야 할 일은
정부의 협조자 모두를 만나, 그들과 우리가 서로 다르긴 하지만
그들에 대한 우리의 우정어린 존경심을 증명해야 한다.
 

비협조자의 자질은 사랑으로 협조자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검증받을 수 있다.
거짓된 아첨과 무례함 모두 피해야 한다.
가장 최초의 교훈은 중도를 밟아가기 위해 우리 모두가 단결하는 것이다.

 ● 협조가 사심에서 나왔다면 협조라고 부를 만한 가치가 없다.
그것은 차라리 뇌물의 일종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증오에서 나온 비협조는 중대한 죄이므로 양쪽 모두 피해야 한다.
 

● 비협조를 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밖에 없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줄 수 있는 하나의 해답은,
비협조를 실행하는 자는 승리할 것이고 과오에서 자유롭게 될 것이고,
그 제국은 그의 협조를 잃어버린 만큼 약하게 된다는 것이다. 
 

벽돌 한 장이 빠진다고 해서 집이 무너지지는 않지만 그 벽돌이 빠진 날부터
그 집은 분명 약해지기 시작한다는 점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첫 번째 벽돌이 느슨하게 되는 일은 어려워도,
두 번째 벽돌이 떨어지거나 제거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세상의 모든 개혁은 한 사람의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나쁜 풍습은 쉽개 사라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허풍을 떠는 데는 용감하지만 행동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실패의 이유는 그들이 비록 비협조를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장기간의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권력 장악의 야망을 지니고 있다고
불평하는 그들 자신이 야망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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