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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행석
‘프로그램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고운정 미운정 들고,
헤어지는 광주MBC PD입니다.
현재 광주MBC <신얼씨구학당>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늘길 배웅하는 그 소리
상여소리

▲ 다시 못올 길로 떠나보내는 무상(無常)의 노래, 그것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알려
주는 진리(眞理)의 노래, 하늘가는 길 울리는 그 <상여소리>를 우리는 언제 얼마나 더 들을 수
있을까. 사진은 광주 용연마을 어르신들의 상여소리(2002년 제2회 한국만가무속제전에서)
ⓒ 전라도닷컴

시골 마을에서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테이프 하나 부탁허요”하는 소리를 곧잘 듣는다. 하지만 이 마을처럼 “찍은 놈을 통째로 복사해 주시먼 안되겄소?” 부탁을 하는 마을은 드물다. 구례군 광의면 온당리 당동마을 이야기다.

<상여소리>도 립싱크로?
 ‘찍은 놈을 통째로’ 복사를 해서 보내 놓고는 그 뒤로 별 소식이 없길래, 받았나 보다 하고 말았다. 그런데, 요 참에 그 마을의 소리꾼 이재수 어르신을 수소문하던 중 다른 소리를 듣게 되었다. “화면이 나오는 놈이 아니라 소리만 나오는 놈을 통째로 보내달라”는 것, VHS 테이프가 아니라 상여소리 CD 녹음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였을까. 그 마을 <상여소리> 앞소리꾼 이재수 할아버지(82)의 연세 때문이었다. 이 분의 건강과 연세를 고려해 이제 상여가 나갈 때면 ‘라이브 음악’보다는 ‘립싱크’를 하겠다는 것이다. 초상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치르고 싶으나 이 분도 곧 돌아가실 연배고 후계자도 없으니 <상여소리> 녹음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의 삶을 관통해 왔던 수많은 전통문화가 전승 단절에 직면해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지만 그 가운데 <상여소리>는 더더욱 듣기 어려운 노래가 되어 있다. <진도아리랑> <상사소리> <강강술래>와 같은 종목이야 놀 만한 덕석만 깔아지면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지만 <상여소리>는 덕석 자체를 깔 수가 없어지니 말이다.

문명의 속도로부터 비교적 거리를 갖고 있는 산촌이나 섬마을이야 아직도 마을에서 장례를 치르고 상여를 나가지만, 이조차 웬만한 소도시마다 생겨나는 장례식장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뿐인가, 밤 9시만 되면 고즈넉해지는 농촌이다. 진도의 <다시래기>나 신안의 <밤달애놀이>처럼 상주들을 즐겁게 해주거나, 출상 전날 밤이 축제 현장이 되는 풍경을 보기가 어려우니, 밤에 하는 그런 놀이들이 낮에 하는 무대예술로 변전되는 게 당연하다. 

매장(埋葬) 일변도에서 화장(火葬), 수목장(樹木葬) 등 장례문화의 다변화, 외래종교의 유입, 상여를 메고 나갈 젊은이들의 부재, 상여소리를 할 줄 아는 소리꾼의 부재… 이러한 현실 속에서 <상여소리>는 갈수록 희소(稀少)한 문화가 되어 간다.

ⓒ 전라도닷컴
 
<들노래> 앞소리꾼과 <상여소리> 앞소리꾼은 겸직

그렇다고 전라도 일대에 <상여소리>가 씨가 말랐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 동네 소리꾼을 찾아라> 촬영을 다녀온 마을들만 해도 자타가 공인하는 상여소리꾼을 세려면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란다. 구례 당동마을의 이재수(82), 담양 주산리의 정병태(79), 나주 봉추마을의 박선배(78), 남원 사석마을의 임태종(76), 나주 백촌마을의 이맹범(74), 보성 선소마을의 김유남(71), 진도 소포리의 주동기(67) 어르신 등등.

이들은 당신 마을에 초상이 났을 때는 무료봉사, 인근 마을에 초상이 났을 때는 모셔가는 유급(有給) 소리꾼들이다. 실제로 <상여소리>를 할 줄 아는 ‘프로페셔널(전문가)’들은    더욱 많을 것이다. <상여소리>라고 하는 분야가 보통 <들노래>와 같은 뿌리라는 점에서 그렇다.
<상여소리>는 <들노래>와 마찬가지로 앞소리꾼이 메기고, 마을 일꾼들(두레꾼 혹은 상여꾼)들이 뒷소리를 받는다. 나주 봉추마을이나 나주 백촌마을처럼 <들노래>가 살아있는 마을에서는 예외없이 <들노래> 앞소리꾼과 <상여소리> 앞소리꾼이 같다. 겸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소리꾼의 필수 조건은 ‘음악성+방대한 사설’이다. 젊은 시절 유성기를 들으며 <춘향전> <심청전> <흥보전>을 달달 외우다시피 했다는 이재수(구례 광의면 당동마을) 어르신의 증언이다. “내가 젊었을 직(적)에는 일본놈들이 방죽 막는 일을 그렇게 많이 했어. 방죽 막는 일을 헐 때먼 <다구질소리>라는 것을 해. 그때 내가 구례 광의면 관내 저수지 공사 8개를 헐 때마다 <다구질소리> 앞소리를 했어. 그 소리가 팽이야(결국) <상사소리(모심는 소리)> 계통이거든. 애려서(어려서) 판소리 배운답시고 외워둔 <춘향전> <심청전> <흥보전>을 넣어서 헌께 및(몇) 시간이고 한없이 허제. <상여소리>도 마찬가지여.”

보통 <상여소리>는 출상 전날 삼경(三更)을 올리면서부터 사경(四更), 오경(五更)마다 한 번씩 세 번 소리를 한다. 출상날에는 상여를 메고 서서 출발하기 전에 부르는 <오장 소리>, 평지를 천천히 가면서 부르는 <관암보살>과 <나무아미타불 소리>, 보통 걸음으로 가면서 부르는 <어이가리>와 <어하넘차 소리>, 좁은 다리를 건너면서 하는 <너화널 소리>, 마지막 상여를 내려놓으면서 하는 <관암보살 소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 전라도닷컴

웬만한 밑천 없이는 네댓 시간 소리 힘겨웠을 법

“옛날같잖애 되드랑께(힘들어). 상가에서 묘지까지 거리에 매였는디(거리에 따라 다른데) 아무리 가차운 디(데)로 가도 한 시간은 걸리제. 시방은 늙은께 머리가 안 돌아가서 메기는 소리도 헌 놈 또 허고 그래”

담양 고서면 주산리 정병태 어르신의 솔직한(?) 고백이다. 출상 날만 해서 보통 5km 이상의 거리를 너댓 시간 동안 소리를 하려면 웬만한 밑천 없이는 힘겨웠을 법하다. 그러니 판소리 사설, 상사소리 메김소리, 아리랑타령 메김소리 등이 머릿속에 총동원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었을 게다.

실제로 2005년 11월 구례 광의면 당동마을 정자에서 녹화한 이재수 어르신의 <상여소리>에도 <춘향가> 사설이 등장한다. “남원에도 봄이 오니 각색화초가 무장허네/ 허∼농 허∼농 어이가리 어허농/ 추야장 달도 길구나 남도 요렇게 갑니까/ 허∼농 허∼농 어이가리 어허농/이때 춘향모는 옥중에다가 딸을 두고/ 허∼농 허∼농 어이가리 어허농/ 천지가 아득하여 엎더지면서 자빠진다/ 허∼농 허∼농 어이가리 어허농/ 무산자 누구냐 한탄을 말어라 부귀빈천은 돌고 돈다/ 허∼농 허∼농 어이가리 어허농…”

나주 백촌마을 소리꾼 이맹범 어르신의 상여소리 노랫말에도 판소리 <수궁가>의 흔적이 보인다. “가자 가세 어서들 가세/ 어허 어화너/ 자래(자라)등에 저 달을 싣고서/ 어허 어화너/ 내 고향을 언제나 올거나/ 어허 어화너…”
우리 소리의 세계는 이렇듯 ‘뿌리 깊은 나무’를 연상시킨다. 뿌리가 튼실하게 내린 나무는 이 가지도 튼튼하고 저 가지도 튼튼한 것처럼 말이다.

상주들 눈물이 쏙 나오게 슬프게
그런데  <상여소리>는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비장미 일변도는 아닌 듯하다.
“젊은 나이에 죽은 사람을 보낼 때는 상주들 눈물이 쏙 나오게 슬프게 부르고, 나이 많이 잡순 분이 돌아가셨을 때는 호상(好喪)인께 훨훨 잘 가시라고 허는 거여”(남원 사석마을 임태종).
“보통 초상집에 초청을 받어 갖고 호상(好喪)이다 싶으먼 ‘웃음엣소리(재담)’도 섞어서 하고 그래. 하루 저닉(저녁)에도 및(몇) 시간을 해야 되는디 어디 슬픈 소리만 허겄다고?”(보성 선소마을 김유남)

처음부터 끝까지 비장미 일변도여서는 ‘예술’이 안 된다는 것, 잠깐잠깐 들어가는 희극적 요소를 통해 비극의 묘미를 살린다는 것이다.
 "진짜 소리 잘하는 분들은 다 돌아가셔 불었제. 옛날 어른들은 진짜 깃발 날렸어. 소리고 뭣이고 옛날 분들이 다 잘했지 암은.”

남원 대강면 사촌리 임태종 어르신(76)의 말은 우리 시대 <상여소리>가 처한 운명을 드러내고 있다. 대부분 70세를 넘긴 할아버지들이나 부를 수 있는 소리, 배우려고 하는 이들이 나서지 않는 분야의 소리, 후계자들이 배웠다 하더라도 완숙미가 떨어지는 소리가 오늘 우리에게 남은 <상여소리>인 것이다.

“어쩔끄나 어쩔끄나 불쌍해서 어쩔끄나/ 허∼농 허∼농 어이가리 허∼농/ 북망산천이 멀다더니 저기 안산이 북망일세/ 허∼농 허∼농 어이가리 허∼농”(남원 대강면 방동리, 진일하)
“일가 친척 형제 많다 헌들/ 어떤 누가 대신 갈끄나/ 허농 허농 허농 허농/ 꽃은 피어지건만은/ 다시 명년 삼월 춘삼월되면/ 다시나 오네/ 허농 허농 허농 허농…”(담양 고서면 주산리, 정병태)
다시 못올 길로 떠나보내는 무상(無常)의 노래, 그것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알려주는 진리(眞理)의 노래, 하늘가는 길 울리는 그 <상여소리>를 우리는 언제 얼마나 더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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