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경기한파에 일자리 ‘뚝’…“난방비 겁나요”
불황의 겨울…벼랑 몰린 서민
① 기초생활수급자 ‘고단한 삶’
한겨레 황춘화 기자
 
» 치솟는 난방비를 아끼려 기름보일러에서 연탄보일러로 교체한 한아무개 씨가 3일 오후 서울 영등포쪽방촌 자신의 집에서 연탄을 보일러실로 옮기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주식과 부동산값이 떨어져 소비가 얼어붙고, 이를 버티지 못한 기업들의 구조조정으로 실직 공포도
확산되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번 불황이 ‘길고도 깊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그 파장은
못가진 이들에게서 먼저, 그리고 가장 고통스럽게 나타난다.

반토막 날 주식도, 가격 폭락을 걱정할 아파트도 없지만, 서민들의 삶에는 이미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가
밀려들고 있다.

네 식구가 한 달 100만원으로 버텨야 하는 기초생활 수급자, 한끼를 때우려 무료 급식소를 찾는 노인과
노숙자, 몇천만원짜리 전셋집을 찾아 헤매는 세입자들 ….

이명박 정부 들어 복지와 사회 안전망이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기에 이들이 느끼는 불안과 고통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정부 수급비 빠듯했는데 일자리 끊겨 곧장 적자로
물가는 왜 자꾸 오르는지…“단수·단전 직전까지 버텨요”

 

“가스하고 전기·수도료는 석 달 밀리면 끊겨요. 끊기기 직전까지 버티다 내는 거죠. 연체료가 붙지만
수급비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어요.”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 임아무개(33·서울 노원구)씨는 석 달치 도시가스 요금 10여만원을 지난달 말에
한꺼번에 냈다. 임씨의 수첩에는 가스비·전기료·수도료를 각각 언제 얼마나 냈는지가 적혀 있다.

석 달 이상 밀리면 일방적으로 공급이 중단돼, “안 내면 끊기는 것부터 막으려면” 납부 날짜를 꼭 기억해
둬야 하기 때문이다. 이달에는 지난 8월부터 밀린 전기료를 내야 할 차례다.

“사실 월세도 많이 밀렸지만 당장 생활은 해야 되잖아요? 연말에는 월세 독촉도 심해질 텐데….”

임씨의 ‘공과금 돌려막기’는 몇 달 전 시작됐다. 친정어머니(56)를 모시고 7살, 12살짜리 남매를 키우는
그는 매달 103만원의 수급비를 받는다.

여기에 산모 도우미 일을 하면 나오는 취업장려비 15만원을 합쳐 118만원으로 한 달 살림을 꾸려 왔다.
그러나 지난 7월께부터 도우미 일을 나가지 못하게 되자 살림은 곧장 적자로 돌아섰다.

월세 8만5천원, 공과금 및 세금 35만원, 병원비 35만원, 휴대전화 요금 10만원, 교육비 26만원,
교통비 10만원, 용돈 2만원…. 임씨가 10월에 지출한 생활비는 모두 116만5천원.

한 달 생활비가 꽉 짜여 있는 임씨한테는 10만원 가량의 적자도 버티기 힘든 부담이다.
“구청에서 일감도 없다고 하고 아이 건강도 나빠져 일을 그만뒀어요.
병원비까지 더 들어가니 수급비로는 감당할 수가 없죠.”

임씨 같은 기초생활 수급자의 주된 밥벌이인 ‘저소득층 지원·자활사업’은 최근 들어 수요가 크게 줄었다.
산모 도우미의 경우 전체 비용 60여만원(2주 기준) 가운데 15%를 본인이 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지원 대상인 저소득층 신청자가 급격히 감소한 것이다.

서울 성북자활센터 관계자는 “직접 부담금이 최고 10만원 가량인데, 경기가 나빠지면서 저소득층
산모들은 이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며 “예산도 예산이지만, 도우미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은
많아지는데 신청자는 줄어드는 불균형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꺾이지 않는 장바구니 물가도 갈수록 이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기초생활 수급자 김아무개(44)씨는 며칠 전 대형마트에 갔다가 필요한 물건을 절반밖에 사지 못했다.

몇 달 전만 해도 3천원대이던 2.5㎏짜리 밀가루는 4500원으로 올랐고, 우유 1ℓ는 2천원을 웃돌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걀은 한 달도 안 돼 한 판에 3500원에서 4천원으로 올랐다.

그는 “여기서 뭘 어떻게 더 줄여야 할지 모르겠다”며 “주가하고 집값이 떨어져 난리라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제발 물가나 더 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지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요즘은 환율이 워낙 높아져 수입 원재료를 쓰는 가공식품 값이 아직도 오르고 있다”며
“지난해와 견주면 전반적인 생필품 값이 최고 30%는 오른 상태”라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올겨울 난방비도 발등의 불이다.
수급비 30여만원이 소득의 전부인 김아무개(80·인천 동구)씨는 “기름값이 겁나 연탄난로라도 방 안에
들여놓고 싶은데, 가스 중독 사고가 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쪽방촌상담소의 김정연 상담원은 “몇 해 전 주거환경 개선 차원에서 기름보일러로 교체한
집이 많은데, 요즘 들어 ‘연탄보일러로 바꿔 달라’고 요구하는 가정이 적지 않다”며

“또다시 수십만원의 설치비가 들기 때문에 참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최근 내년 예산안에서 저소득층 난방비 지원금 316억원을 모두 삭감했다.

김아무개(37·목포시 대양동)씨는 얼마 전 큰딸(12)을 데리고 지역 공부방에 갔다가 ‘대기표’를 받았다.
학원을 끊고 이곳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이 공부방을 운영하는 이미경 아동센터장은 “저소득층들이 경제 불안감이 커지자 현금 부담이 큰
아이들 학원을 제일 먼저 끊는 것 같다”며 “없는 집 아이들의 교육과 보육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황춘화 기자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TAG
more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