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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에 대한 단상 (1) - 촛불은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가?
2008/09/2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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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가?



1. 요즘 다양한 단체와 그룹에서 '촛불'에 대한 토론회를 열거나 그에 대한 기록과 연구들을 출판하고 있습니다. 가끔 그런 자리에 참석하거나 그런 자료들을 들추어볼 때마다, 아직 꺼지지는 않았지만 처음과 같은 강력한 동력을 잃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 촛불 앞에서 혹은 지금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촛불에 대한 무성한 말의 잔치 속에서 무언가 말을 덧붙인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종종 자문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에 대해 고상하게 침묵을 지키거나 현상들을 사후적으로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패배를 기록하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말을 기억해보며 몇가지 생각들을 풀어내볼까 합니다.


2. 지난 5월에 10대 소녀들이 처음 촛불을 들고 나타났던 장면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을 것입니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통해 정치와 민주주의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고 절망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10대 소녀들의 촛불집회는 한줄기 희망을 보여주는 가능성으로 여겨졌겠지요. 그 뒤로 그에 고무된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에 쏟아져 나왔고 촛불집회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을 정리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해 이명박 정부를 뽑았던 대중들에 대한 절망은 어느새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3. 그때부터 진보적인 언론과 지식인들은 촛불시위에 대해 촛불 2.0세대,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 다중의 등장 등의 수많은 상찬의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은 이제 대의제 민주주의는 한계에 도달했고 촛불의 등장은 바로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시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여전히 어떤 불편함을 거두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조금은 악의적이지만 저는 이런 이야기들을 정반대로 꺾어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촛불은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이 아니라 오히려
대의제의 붕괴를 막으려고 하는 최종적인 마개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촛불 시위에 나왔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표출하려고 하기보다는 대의제가 위기에 처한 상황 자체를 해결하고 오히려 대의제를 복구시키려고 혹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요?


4. 촛불이 대의제를 극복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이기는커녕 붕괴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니 이것은 촛불 시위에 열심히 참여하신 많은 분들에게는 엄청난 분노와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대해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촛불이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지속적인 발전 과정을 단번에 평가절하 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지난 20년간 한국에서도 대의제의 한계들을 극복하고 직접 민주주의를 도입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2000년도부터 주민소환, 주민발의, 주민투표와 같은 제도들이 지자체 단위로 도입되었고 이러한 제도들은 주민들의 주체적인 참여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5. 이번 촛불 시위에서는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주민소환제를 촛불의 의사표현에 활용해보자는 제의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주민들이 주민소환제를 사용하여 서울 각 지역에서 한나라당 기초의원들을 심판하여 한나라당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물론 이것은 정당정치의 기본적인 정신에도 부합합니다). 저는 이것이 촛불이 직접 민주주의로 갈 수 있는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전략은 별로 적극적으로 시도되지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6.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상당한 비용을 요구하는 제도입니다. 그것은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일정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오랜 토론과 설득과 논의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촛불이 갖고 있던 한계가 바로 이점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촛불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광화문이라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유사한 의견을 갖고 있는 집단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돌아가서 주민소환제를 발의하려고 할때는 그 지역의 토호나 유지를 비롯하여 수많은 반대세력과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직접 민주주의라는 것은 바로 이렇게 유사한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의 격렬한 싸움을 감내하여 합의에 도달해야 하는 제도인 것입니다. 저는 주민소환제라는 전략이 적극적으로 시도되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촛불이 아직까지 직접 민주주의의 그렇게 크나큰 비용을 치를 준비가 안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7. 저는 촛불이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지금 10대 촛불소녀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처음에 10대 소녀들이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고 나와 정치적인 요구를 제시하기 시작했을 때 이때까지는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온갖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녀들은 어디 있습니까? 그녀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의견을 공론장에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 없는 대의제의 구조 속에서 갇혀 있습니다. 미성년이라는, 아직은 독자적인 정치적 판단을 일임할 수 없는 미성숙한 주체라는 평가 속에서 말이지요. 어쩌면 그녀들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서, 남아있는 어른들만이 10대들을 대신해서 그들을 칭찬하고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 대의제의 구조는 붕괴하기는커녕 너무나 견고하다고 느끼며, 촛불이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이야기에 대해 회의를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8. 그렇다면 우리는 촛불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촛불에는 직접 민주주의 가능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으로 이해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라 직접 민주주의로서의 촛불에 대한 과도한 찬양을 한번 정반대로 꺾어보려고 한 것입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아직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번에는 그 이야기를 한번 풀어보도록 하지요.

 - 이규원(키리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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