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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에 대한 단상 (2) - '정치'에서 '삶'으로
2008/09/3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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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 이 글은 '촛불은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가'에서 이어집니다.
-- 물론 별개의 글로 읽으셔도 크게 상관없습니다.



촛불에 대한 단상 (2) - '정치'에서 '삶'으로


1.
우리가 촛불시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려고 할 때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질문은 아마도 이 급작스럽고, 놀랍고, 예기치 못한 사건이 과연 '무엇'일까, 달리 말하자면 촛불은 누구인가, 촛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질문들일 것입니다. 이 질문은 촛불이 처음 나타났던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던져지고 있는 질문일 것입니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촛불시위에 관한 토론회가 개최되고 촛불시위를 기록하고 분석하는 책들이 출판되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답변을 제시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그렇다면 과연 '촛불'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기존의 언론, 학계 또는 인터넷 공론장에서 제시되었던 몇가지 답변들을 금새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 직접민주주의, 대의제의 실패, 기존 사회운동의 실패, 직접행동, 시민혁명, 국민주권, 민주공화국, 생활정치, 자율성, 집단지성, 자기조직화 등등. 이러한 키워드들은 이미 촛불을 설명하는 개념들로 널리 유포되어 있으며 촛불시위가 가지고 있는 일면들을 포착하고 나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러한 키워드의 목록을 보면서 어떤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개념들이 '촛불'에 참여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맥락을 제거하고 추상적인 '정치'로 환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3.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촛불이 처음 나타났던 시점으로 되돌아가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것처럼 촛불의 시작에는 '촛불 소녀'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통해 정치와 민주주의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고 절망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촛불 소녀'들은 처음에는 충격과 놀라움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놀라움은 곧 이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어떻게 나타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으로 바뀌었고 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은 10대 촛불소녀들의 등장을 칭송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도 '68 혁명'이 도래했다, 기존의 사회운동을 넘어서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2.0세대의 운동이 등장했다, 지도받지 않는 자발적인 다중이 등장했다, 투표권이 없는 10대들이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시작했다라고 말이지요. 또 일부 보수언론들은 이에 반해 촛불 소녀들이 나타난 것은 생각없는 10대 아이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이 미국산 소고기를 반대하기 위해 시위에 참석하자 우르르 소위 '오빠'들을 따라 놀러나온 것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4. 물론 10대 촛불소녀들의 등장을 직접민주주의, 집단지성, 자기조직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직접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적 개념들을 성급하게 적용하면서 광장에 나왔던 10대 촛불소녀들의 사회적 삶의 맥락들이 완전히 삭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때부터 10대 소녀들이 시위에 나왔던 이유와 배경들은 잊혀진 채 '직접민주주의의 주체'라는 추상적인 단어로만 10대 촛불 소녀들을 보게 된다는 뜻입니다. 저는 오히려 보수언론의 악의에 가득찬 비난에 어떤 역설적인 진실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들은 10대 소녀들의 등장에는 팬덤(fandom: 어떤 작가나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fan)의 집단, 또는 팬들의 영역이나 영향력을 의미하는 말입니다)이라는 사회적인 삶의 맥락이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것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어떤 분들은 처음에 촛불 집회를 주도했던 10대 소녀들을 연예인들의 팬에 불과하다고 보도하는 보수언론에 맞서 10대 소녀들의 자발성과 합리성을 강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촛불시위가 처음 나타났을 때 동방신기의 팬클럽인 '카시오페이아'와 같은 아이돌 팬클럽들이 10대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그러한 이야기로 무시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촛불시위를 주도했던 10대 촛불소녀 중에 팬덤이 많다는 것과 촛불시위는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저는 여기서 이 관계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여성주의 문화연구자들이 월드컵과 여성팬덤의 관계에 대해 분석한 현장 연구의 내용을 참조해보고자 합니다.
 

6. 월드컵과 여성팬덤의 관계에 대한 현장 연구들의 문제의식은 다음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왜 한국에서는 월드컵의 응원문화가 외국의 훌리건과 같은 집단적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축구가 강한 남성성을 대표하는 스포츠이며, 축구의 응원문화도 그러한 남성성의 강한 표출, 즉 집단적 폭력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 쉽다는 것을 고려해볼 때, 한국의 월드컵 응원문화의 질서정연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여성팬덤의 영향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여성팬덤은 '빠순이'라고 폄하되고 이해할 수 없는 광적인 열광을 보여주는 집단이라고 생각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을 인터뷰해보고 참여관찰을 해보면 여성팬덤이라는 집단은 많은 사람들의 선입견과는 달리 엄격한 규율을 갖추고 있는 매우 훈련된 문화집단입니다.
 

7. 예를 들면 아이돌 팬클럽의 경우 이들은 기획사나 음반협의 횡포에 맞서 자신들의 스타를 보호하기 위해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집단행동을 할 줄 알며, 행사장에서 장소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등 공중도덕을 엄격하게 지킵니다. 그리고 이들은 콘서트에서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구호를 외치며, 미리 계획된 전략에 따라 응원하는 등, 특정한 '행동 양식'들을 그 팬덤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면서 자신들의 '스타'의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는 적절한 행동을 하게 되고, 이러한 행동들은 매우 조율된 질서를 형성하게 됩니다. 즉, 팬덤을 통해 형성된 이러한 '문화적 주체'가 건강한 시민의식을 가진 시민이라는 '정치적 주체'를 예비하고 형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의 월드컵 문화에서 나타난 질서정연함과 비폭력성, 시민의식은 외국의 축구 응원문화와 비교해볼 때 이러한 팬덤 문화를 통해 성장한 여성들의 참여의 기여가 매우 높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8. 저는 이러한 이야기가 10대 촛불 소녀들에게도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10대 소녀들이 스타들을 통해 촛불시위에 등장하게 된 경우가 상당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이들이 매우 훈련된 문화적 주체였기 때문에, 이미 팬덤이라는 하위문화 속에서 건전한 시민의식을 획득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보여주었던 절제된 열정, 시위를 놀이처럼 즐길 줄 아는 것, 비폭력에 대한 고집, 시위현장을 깨끗이 치우는 공중도덕 의식 등. 여기서 저는 10대 촛불소녀들을 생각없이 스타들을 따라나온 '빠순이'라고 보는 보수언론의 논조에 저항하면서도 동시에 촛불시위에 나온 10대 소녀들을 '팬덤'이라는 삶의 맥락을 제거하고 단순히 '자발성' '자기조직화' '직접민주주의'의 주체로 보려고 하는 담론들을 거부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자율성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10대 소녀들의 자기조직화 능력은 원래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까?(그렇다면 왜 10대 소년들이 아니라 소녀들이 더 열렬하게 나타났을까요?) 그녀들은 어떻게 직접민주주의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었습니까? 우리는 이에 대해 대답하기 위해 직접민주주의나 자발성, 자기조직화와 같은 거대한 추상적인 정치의 개념들을 넘어 그녀들의 구체적인 삶 속으로, 그녀들이 딛고 서있는 사회적 맥락으로 깊게 파고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정치'에서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할 때 비로소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10대들이 구체적인 삶의 맥락에서 갖고 있었던 가능성들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들을 지지하고 고무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9. 이렇게 볼 때 촛불 시위는 어떤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 다양한 이유와 맥락에서 나타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또 분기하는 '교차로'와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10대 촛불소녀들 뿐만 아니라, 촛불 시위에 참여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맥락들에 대해 관심과 질문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소울 드레서'와 같은 '패션 커뮤니티'는 어떻게 운동 단체들이 기존의 논리에 사로잡혀 무력함과 지지부진함을 떨쳐내지 못할 때 그토록 놀라운 주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82cook'과 같은 주부들의 요리 커뮤니티는 또 어떻게 촛불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된걸까요? 그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구체적인 '삶'의 맥락 위에서 그러한 '정치'의 힘을 보여줄 수 있게 된걸까요? 물론 저도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마 촛불에 대해 생각하고 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다같이 풀어가야할 숙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키리냐가(이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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