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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근선
ccac123@hanmail.net
착한 마음으로, 지극한 정성으로 땅과 사람과
생명을 대하는 해남의 농군

차를 마신다는 것은

ⓒ 전라도닷컴

언제부터 차를 마셨나 ?

중국 전설의 제왕들 중에서 수인(燧人). 복희(伏羲), 신농(神農)이 있다. 이들을 흔히 삼황이라 부른다. 점(占)을 칠때 쓰는 팔괘(八卦)를 만들고, 수렵과 어로를 가르켰다는 복희씨, 음식을 불에 익혀 먹는 것을 발견한 수인씨, 얼굴은 소이고 몸은 사람인 염제 신농씨는 마차와 쟁기를 만들고, 가축을 길들이고, 농사와 약초의 효능을 알아냈다. 이 신농씨가 여러 가지 풀을 맛보다 하루는 72가지의 독이 퍼져 쓰러 졌는데, 옆에 향기로운 잎이 있어 뜯어 먹었는데 해독되었다. 그 잎이 바로 茶였다. 차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 하여 처음에는 약초로 인식되었다. 당나라 이후부터 비로소 일상 음료화 되었고, 우리나라에 차가 처음으로 전래 된 것은 신라 선덕왕 때이다. 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차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신라 흥덕왕 때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 대렴이 차 씨앗을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남쪽 주변에 심어 재배한 것이 효시라고 기록에 전하고 있다. 또한 가락국의 시조 김 수로 왕의 비 허황후가 인도에서 시집올 때 차씨를 가지고 와 심게 된 것이 우리 자생차의 시작이라는 남방 전래설도 있다. 그러니 정확히는 모른다. 설들이니까. 고려시대에는 차 문화가 민간에 까지 퍼져 “차례”“다반사(茶飯事)” 등 차와 관계된 말들이 일상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쓰여 질 정도로 우리 조상들이  차를 즐겨 마셨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차도 증흥과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달처럼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차오른다. 현재의 차는 사찰 주변과 일부의 부유층의 문화로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80년 중반부터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심을 끌게 되었다. 90년대 들어와 차가 널리 보급되었고 간편하게 마시는 티백이나 음료, 차를 이용한 여러 가지 산업으로 까지 정착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왜 차를 마실까?

그냥 마셨다. 목마르니 마셨고 향이 있어서 마셨다. 마셔보니 좋아서 마셨고, 자꾸 끌려서 마셨다. 몸에 좋다고 해서 마셨고, 폼내기 위해 마셨다. 잠 안 오려고 마셨고, 사람 만나 마셨다. 그런데 옛날 분들은 그냥 마신게 아닌 모양이다. 차라고 하는 것은 세상이 다되어가는 판에 이를 살려내는 신선한 잎사귀다.(茶也末代養生之仙葉). 사람으로서 누려야할 목숨을 늘리기에 기묘한 술법(人倫延齡之妙術也)이라고 일본의 에이사이선사의 끽다양생기(喫茶養生記)에서 의미를 부여했다. 다소(茶蔬)에는 해노(解勞) 피로를 풀어주고, 각성(覺醒) 깨우침을 주며, 소화작용을 돕고, 이뇨작용을 하여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조혈(造血) 피를 맑게하고, 해독(解毒)작용을 한단다. 또 차에는 열가지 덕이 있는데 혹하게 되어 있다. 청량해갈(淸凉解渴) 갈증을 해소하여 시원하게하고, 맑은 머리와 눈을 갖게하고, 청협두안(淸夾頭眼). 식욕을 증진시키며 증진식욕(增進食慾), 해주제신(解酒提神) 술기운을 해독하여 정신이 들게하고, 기억력을 좋게하고 조강기억(助强記憶), 번거러움을 버려 풀처럼 깨끗이 하고 제번척려(除煩滌慮), 머리를 맑게하여 지혜롭게하고 성뇌익지(醒腦益智), 소적하기(消積下氣) 쌓인 것을 사라지게 하여 아래에 기운이 있게 하고, 독을 가시게 하여 살찌게 하고 거독제니, 눈백기부(嫩白肌膚) 피부를 깨끗하고 어리게 만든단다. 이렇게 써 놓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영서(榮西)에는 아침에 한 잔의 차는 정신을 맑게하고, 저녁의 차 한잔은 마음을 위안하며, 식후 일배는 소화를 증진시키고, 휴식때 마시는 차 한잔은 원기고무(元氣鼓舞), 응접(應接)때 차 한잔은 견목, 간좌일배(間座一杯)는 무료함을 씻어준다 했다.우리가 잘 아는 초의스님은 차의 아홉가지 덕을 "머리에 이롭고, 입맛을 좋게하며, 눈을 밝게하고, 잠을 조정해주고, 귀를 맑게하고, 술기운을 해독하고, 추위는 막아주고, 더위는 물리치며 피로를 회복시킨다" 하였다. 허준은 동의보감에 "차는 정신을 진정시키고 소화를 돕고 머리와 눈을 맑게 하며, 소변을 잘나오게 하고 소갈증을 멈추게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적게한다. 또한 뜸질하여 데인 독을 풀어준다".고 하였다. 조선 연산군 때 문관 이목(李穆)은 그의 다부(茶賦)에서 오공육덕을 말하는데 육덕에 이르기를 "첫째 오래 살게 하고 사인수수(使人壽修), 둘째 병을 낫게 하고 사인병기(使人病己), 셋째 기운을 맑게 하고 사인기청(使人氣淸), 넷째 마음을 편안케 하고 사인심일(使人心逸), 다섯째 신선같게 하고 사인선(使人仙), 여섯째 예의 롭게 한다 사인예(使人禮) "라고 하였다.이 밖에도 다경을 쓰신 육우선생이나 수많은 이들이 차를 마셔야 하는 이유를 설하고 있다. 나도 한마디 덧붙이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그침과 여유를 주며, 대화의 시간을 만들어 주고, 효율적인 수분섭취를 통해 고운 피부와 건강을 유지 시켜준다고 말하고 싶다.   

ⓒ 전라도닷컴

차를 만나기 위해서는?

혼자여야 한다.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나만 있어야 한다. 아무리 가까이 있는 사람도 나를 모른다. 나속을 누가 알겠는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 모처럼 밖을 향하던 일상에서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고, 방향을 바꿔 하는 내면으로의 여행시간. 손끝에 느껴지는 다관의 질감, 없이 있는 향과 맛, 물 따르는 소리, 들려오는 바람소리, 한 잔의 차가 입술에 닿기까지 우주의 일치된 협력과 조화, 한 잔의 차를 마시면서 혀끝에 전해 오는 오랜 사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혼자가 좋다. 다신전에는 차 마시기 대하여 차 마시기는 손님이 적은 것을 귀하게 여긴다. 객이 많으면 시끄럽고 시끄러우면 아취가 없어지고 궁핍해진다. '홀로 마시는 것을 神신(신령스러움)이라 하고, 둘이서 마심을 승勝(무던하고)이라 하며, 서넛이 마시는 것을 취趣(재미있다), 대여섯이 마시는 것을 핍乏(덤덤하고), 칠팔명이 마시는 것을 시施(퍼주는 것과 같다)라 했다. 임어당이란 분은 “생활의 발견”이라는 책에 손님이 많으면 소란스러워 지고, 소란스러워지면 차의 고상한 매력이 사라져 버린다. 혼자서 차를 마시면 속세를 떠났다 이르고, 둘이서 마시면 한적이라 이르고, 서너 명이 마시면 유쾌라 이르고, 대여섯이 마시면 저속하다 이르고, 예닐곱이 마시면 비꼬는 말로 박애라 이른다 했다.왜 옛 다인들은 차는 홀로 마셔야 한다고 했을까?  왜 차마시는 데는 수가 적어야 좋을까?그 합당한 이유로 우록 김봉호선생님은 첫째로 자성(自省)의 시공(時空)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그간의 일속에서 용서와 그리움 등 자신을 추스리는 공간이니까, 둘째 느긋해야 색 향 미를 즐길수 있으니, 셋째 선(禪)의 경지에 들 수 있고, 넷째 품격이 돼야 되니까 등등을 들고 있다.다록에 따르면 '차 취미의 정수는 그 색채와 향기와 풍미를 감상하는 것이며, 그 조제원칙은 청순, 건조, 청결에 있다'라 되어 있어 이것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정적이 필요하다고 했다.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좋은 물을 끓여야 하고, 차와 차를 내서 마실 수 있는 다관 찻잔 등이 필요 하다. 물을 제대로 끓이고, 다관에 차와 물을 적당히 넣어 우린 것을 찻잔에 따라 마시는데, 손님이 한분이라도 있으면 손님에 대해 신경을 쓰느라 조급해지고 집중력이 흩어지게 된다. 이러다 보면 물도 빨리 끓여 속까지 익지 않은 맹탕이기 십상이고, 폼 내려고 비싼 다기를 갖추고, 수선스러워져 차의 성품과 차의 참맛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후루루 마시게 된다. 그냥 아무렇게 마시는 차를 빗대어 명나라 다인 도융은 그의 저서 “고반여사(考槃餘事)”에 '아무리 좋은 차라도 차를 모르는 사람에게 마시게 하는 것은 젓샘의 물을 길어서 잡초에게 붓는 일과 같다' 하였다.

어떻게 차를 울일까?

알고 있다. 라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알기 위한 첫걸음이다. 너무 익숙해서 늘 보아 와서 안다.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을까? 라는 질문이나 점검한번 없이 생각을 굳게 믿고 차를 울인다. 정말 차를 바르게 울이고 있을까? 한번 점검해 보자. 찻물 끓이는 방식과 정성은? 찻물의 온도는? 넣고 있는 찻잎의 량과 물의 량은? 우리는 시간은? 이렇게 묻지 않고 늘 해 왔던 대로 하면 늘 그렇고 그런 색 향 미를 만나게 된다. 차를 울이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기능성이냐 기호성이냐에 따라서 물의 온도 찻잎의 량 차 울이는 시간을 달리 해야 한다.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우선 장비가 필요하다. 저울과 온도계, 타이머, 물의 용량을 알 수 있는 그릇 등. 그리고 하나하나 측정해 점검하면 된다. 첫 번째 찻물의 온도이다. 요즘 편리하게 사용하는 전기온수기의 온도가 100℃라고 표시 될 때 바로 물 식힘 그릇에 따라서 측정하니 95℃를 넘지 않았다. 그것을 바로 물식힘 그릇을 거쳐 다관에 따르니 87℃이하로 떨어진다. 우리들이 생각으로 느끼는 온도에 비해 많이 낮다. 기능성으로 찻잎의 성분을 축출하여 음용하기 위해서는 약 80℃물에서 하는 것이 좋다. 기호성으로 부드럽게 즐기기 위해서는 70℃정도에서 약 1분 30초 울이면 좋다. 찻잎에 따라서 이런 온도와 시간도 달라지는데, 손으로 따서 제다한 수제차는 세포막만 파괴되고 찻잎이 온전하므로 약간 높은 온도에 울여도 좋다. 그러나 기계 채엽에 기계제다는 세포뿐 아니라 조직이 파괴 되어 있어서 잎이 온전하지 않고 찟겨져 있어서 많은 성분이 빨리 축출되므로 낮은 온도에서 시간을 적당히 하여야 향미로운 차를 즐길 수 있다. 두 번째는 찻잎의 량과 물의 량이다. 보통 차포장지에 표기된 1인기준 2-3g은 너무 많은 량 이다. 또 물의 량은 너무 적다. 2-3g에는 150㎖이상의 물이 필요 하는데 이정도의 물과 차의 량이면 2-3인이 찻잔에 따르는 량이다. 표기 된 대로 차의 량을 넣고 차를 울이면 너무 농하게 나온다. 차 울이는 시간도 측정해 보니 너무 짧게 울이고 있다. 경험 한가지를 말씀 드리면 혼자서 차를 마실 때는 유리컵에 찻잎 15-20개(약0.5g)를 넣은 후 온수기 물을 바로 150㎖를 부어 약2분(말렸던 찻잎이 풀려나고 색이 형성됨)있다가 마시면 맑고 부드러운 색과 향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제다공정이 다르고 조직의 파괴 정도가 다르니 모든 차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세 번째는 하나하나 알아차리기이다. 물을 끓일 때도 포트에서 얼른 끓인 물과 숯불에서 천천히 속까지 잘 익힌 물의 온도가 다르다. 차와 어울어 지는데도 빨리 끓인 물은 차와 물이 따로 느껴지기도 한다. 정성을 드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그것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잘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참외 밭에서 수박을 찾아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오래된 소나무로 만든 차탁. 동백기름을 칠하여 그 결이 더욱 살아 있다. 많은 사람의 손때가 묻어 정경움과 질감이 더 하다. 그 위에 감물 염색한 다포를 깔고 눈처럼 하얀 다관을 올려놓고, 물을 끓이고 다관을 씻어 차를 넣고 물을 붓는다. 울인 찻물이 잔에 담기고. 향이 피어오르고, 손끝에서부터 점점 온기가 느껴진다. 온기는 점점 온몸을 따뜻하게 한다. 다탁 한쪽에는 국화와 양초. 오디오에서는 장시익님이 노래한다. 나에게 꽃이 있었지 어느 별 어린왕자처럼 매일매일 물을 주고 항상 바라봐 줘야 하는.....혼자서 하나하나 느껴 본다. 주변을 알아차린다. 창밖에 바람결 따라 춤추는 그것. 그를 바라보는 그. 분위기. 들숨과 날숨. 접촉 되는 순간들. 황량한 벌판 그곳에 꿈꾸는 그가 있다. 차씨를 심고 봄이 되고 여름되고 가을되고 겨울되고 그렇게 또 봄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몇 번이 되풀이. 지금의 차밭이 되었다. 또 꿈을 꾸어 본다. 철에 따라 피고 지는 꽃과 열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작품. 삶의 공간을 작품 해 가는 그. 일상이다. 이런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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