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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약에 대하여
 ― 만물을 알뜰하게 모시고 이웃과 나누라






  그 다음이 검(儉)인데요.
노자에 “치인사천막약색(治人事天莫若嗇)”이라는 말이 있어요.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 알뜰함만한 것이 없다”는 말씀인데요.
그런데 지금은 알뜰할 수가 없게 돼있어요.

왜 알뜰할 수가 없게 돼있느냐.
지구 전체가 지금 온통 장삿속으로 돌고 있어요.
죄다 욕심판이에요.

그걸 하면 돈이 얼마나 드느냐, 그거 하면 얼마나 받느냐,
박사 되면 월급을 얼마나 받나, 사장 하면 얼마를 받느냐,
전부 이 관계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돈이 기준이 돼있는 세상이니까,
사람이 기본적으로 살아가는 데 적당한가,
알맞나 이러한 문제는 얘기도 안되는 거라.

옷도 유행에 따라서 맞춰 입지 않으면
그 사람은 흰 오리떼 속에 검은 오리 모양 끼이지 못하는 거죠.
세상이 그렇게 돼 있잖아요.


  이제 그렇게 되니까 지구가 파멸상태로 가고 있어요.
인간의 이 문명이란 게 어느 지경까지 왔느냐.
미국도 그렇고 소련도 그렇고, 영국, 독일, 불란서 같은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
심지어는 우리까지도 사람 죽이는 무기를 생산하고 있어요.
그게 지금 이익이 제일 많아요.

전부 무기장사라고.
그러면서도 우리가 문화인이라고, 문명인이라고 거들먹거리고 있으니 완전히 넌센스죠.
그것을 받쳐주고 있는 오늘날의 학문, 오늘날의 문화, 오늘날의 문명이 도대체 뭐예요.

자원을 누가 많이 차지해서, 누가 많이 만들어서, 누가 많이 팔아먹느냐 하는 데
모두들 혈안이 되어있잖아요.
이익을 많이 남기는 놈이 왕인 세상이에요.

그것은 반(反)생명적이고 반자연적이고 반인간적인 거예요.
그것이 얼마나 낭비를 가져오고 무한정한 소비를 가져옵니까.
그러면서 결국은 한정되어 있는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켜버리는 거라.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 죽이는 무기를 생산해서 돈을 벌려고 아우성을 치다니, 도깨비도 이런 짓은 안해요.
심각한 문제지요.


  앞에서 말한 ‘색(嗇)’자를 봅시다.
요게 ‘인색하다’고 쓸 적에 ‘색’자인데요.
그런데 인색하다는 건 남에게 베풀지 않는다는 얘긴데,
여기서는 사물을 ‘알뜰히 여긴다’는 얘기예요.



  동학의 2대 교주이신 해월 선생은
밥 한사발을 알면 세상만사를 다 아느니라,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의암 손병희 선생도 밥 한사발은 백부소생(百夫所生)이라,
즉 많은 농민들이 땀흘려서 만든 거다,
그러셨어요.

그런데 사실은 사람만이 땀흘려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일체가 앙상블이 되어서,
하나로 같이 움직여서 그 밥 한사발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 밥 한사발은 우주적인 만남으로 되는 거지요.

한걸음 더 들어가보면, 해월 선생 말씀에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는 말씀이 있어요.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는 말이에요.
동학에서 일컫되 인내천(人乃天)이라,
그리고 사람만이 하늘이 아니라 곡식 하나도 한울님이다 이 말이야.

돌 하나도, 벌레 하나도 한울님이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자연을 무시하면서
― 그건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마찬가지예요 ―
무한히 자원을 개발해서 제대로 분배만 하면 그게 복지고 민주주의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게 지금 한계에 와 부딪치고 있잖아요.
이래가지고는 이제 인류가 살 수가 없다는 거예요.


  사실 자연의 모든 존재가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 주고 있어요.
그 뒷바라지가 없으면 사람은 살 수도 없어요.

그러니까 이 밥 한그릇의 이치를 알게 되면 만사를 다 알게 되느니라 하셨고,
그래서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는 거예요.
중요한 이야기지요.

그런데 거기에 갈비가 있어야 되고,
외국에서 들어온 무슨 좋은 음식이 있어야 되고,
그래야 잘 먹는 거다 하는 생각,
그거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생각이지.
그 길로 우리가 잘못 온 거지.
그렇지 않아요?


  요새 영양문제에 대해서 말들이 많잖아요.
무슨 영양분이 있어야 되고,
어떤 것은 없으면 안되고,
뭐 영양학 같은 학문까지 있어서 이렇게 떠들어대는데,
그런데 우리는 이제 차원을 달리해서 봐야 해요.

오늘날 과학이란 게 전부 분석하고 쪼개고 비교해서 보는 건데,
우리는 통째로 봐야 해요.
쌀 한알도 우주의 큰 바탕, 빽이 없으면 생길 수가 없잖아요.

벌레 하나도 이 땅과 하늘과 공기와 모든 조건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어.
하물며 인간은 어떻겠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말이지, 벌써 땅이 나를 받쳐주고 있잖아요.

태양이 동쪽에서 떠올라 비춰주고 있고, 이 맑은 공기가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줘요.
한 오분만 코를 막아봐. 누구든 죽지.
만물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일하는 만민(萬民)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한몸으로 꿈틀거리고 있어요.
모두가 이 한몸을 지탱해주고 있단 말이야.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는 알뜰함만한 게 없다” 했어요.
그 얘기는 뭐냐.

우리가 농사지은 거,
그리고 모든 물건을 알뜰히 해서 소중히 쓰면 많은 사람에게 베풀 수 있어요.
알뜰하게 해야 남는 것을 주지.

하늘과 땅과 만물의 도움으로 생긴 물건을 알뜰하게 모시고
남는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게 바로 한살림의 정신이에요.


  그런데 요새 우리 사는 꼴이 이 검약과는 멀어도 한참 멀어요.
우리 옛날 속담에 “너구리 굴 보고 빚돈 내 쓴다”는 말이 있어요.
너구리가 지금 내 손에 있는 것도 아닌데 “나 너구리 있어.

그거 잡히고 돈 좀 꿔줘” 그렇게 허황하고 어리석은 짓을 한다는 거지요.
내가 월급이 얼만데,
저 물건 당장 탐이 나니까 월부로라도 들여놓자고 그러고, 다달이 그 빚을 물고 가잖아요.

이건 제대로 사는 게 아니라 겉도는 거예요.
그러니까 남을 돕기는 어떻게 남을 도와?
이미 빚살림을 하고 있는데.


  여기 아주 좋은 장농이 하나 있다 칩시다.
내가 죽고 손자대, 증손자대까지 물려 써도 까딱없는 좋은 건데,
그런데 이게 요새 유행하는 이태리 장하고 멋이 좀 달라.

그러니까 그 멀쩡한 장농을 고층아파트에서 내버린다 이 말이에요.
그리고 새 것을 들여와. 그
것도 빚으로 들여와요.

아무개네 집에도 그거 들여오고 아무개네 집에도 들여오고 ?
그게 또 식상해지면 이제는 돈있는 사람들이 옛날 것을 골동품이다 뭐다 해서
비싼 돈 주고 다시 사서 모으고, 죄다 그 짓 아니에요?
다들 뭐에 홀려 있는데, 장사치들이 그렇게 최면을 안 걸면 어떻게 장사를 해먹겠어요.


  미국에서 흑인들이,
마틴 루터 킹 같은 분이 앞장을 서서 “흑인도 사람이다” 하고 팔을 걷고 인권운동을 했어요.

그런데 그때 전세계에 “Black is beautiful” 검은 것은 아름답다,
흰 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해가지고 검은 인형들이 나도는데,
기왕이면 이걸 흑인들이 장사를 하면 오죽이나 좋겠어.

하지만 이것도 백인 장사꾼들이 울궈먹더라고.
이 한국에도 웬만한 집에 보면 그때 쏟아져나온 까만 인형들이 다 있어요.
아무튼 사기치고 울궈먹는 데는 이런 머리좋은 장사치들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잘났다는 사람, 세상에 좋다는 거, 이런 데 홀리지 말아야 해요.
거기에 홀리면 가는 거요.
다 같이 가니까 가는 줄 모르고 가는 거요.


  옛날에 내가 5?16 쿠데타 나고 사흘 만에 유치장에 들어갔는데, 그날 내가 제일 늦게 잡혔어요.
나하고 같이 일 거들던 분들이 먼저 다 유치장에 들어가 있는데,
밤 열두시가 지나서 특무대를 거쳐 딱 들어가니까 “야, 만세” 하더라고.

아, 내가 들어가면 싫어해야 될 것 아닙니까.
동지가 하나라도 잡혀 들어오면 재미가 없는 것 아니야.
그래도, 지옥도 같이 가니까 반갑다,
이 얘기지. (웃음)


  지금 얘기가 “치인사천막약색(治人事天莫若嗇)”이라, 알뜰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요새 더러들 일본 가서 공부를 하고 와요.
또 일본 관찰하고 오기도 하고.
일본 어느 재벌의 회장 댁을 갔더니 집이 겨우 이십평이더라 이거야.

내외가 사는데.
하기야 그렇지.
늙은 할망구하고 사는데 이십평이면 과하지.

그런데 식탁에 보니까 반찬이 아주 몇개 없고 아주 소박하게 살더라 이거야.
기름지게 먹어봐야 동맥경화증이 생기고 성인병만 생기니까 그렇게 됐겠지.
왜 그것 때문에 놀라요?

그 사람들이 거기까지 온 것은 세계 약소국가들에서 장사 기차게 해먹으면서도,
그래 봐야 별볼일 없으니까 소박해진 거야.
뭘 놀라, 놀라긴.

우린 그렇게 둘러가지 말고,
우리가 스스로 깨달아서,
하늘과 땅과 대자연,
그속에서 이 만물과의 관계를 깨닫고 우리 자리를 깨달아서 ‘알뜰함’과 ‘소박함’을 배워야 합니다.


 
아까도 얘기했습니다만
벌레 하나, 돌 하나, 풀 하나에 다 하느님이 함께하시는 거예요.

카톨릭에 보면 아씨시의 프란치스꼬 있잖아요.
그분의 평화의 기도는 얼마나 멋있는 기도입니까.
그런데 이건 교회 가면 입으로만 외는 거라.

가슴으로 하지 않고.
내가 그러니까 그렇다는 얘기요.
여러분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이 양반은 말이지 들에 가면 꽃하고 대화를 하잖아.
새하고 대화를 하고.
들짐승들하고 대화를 하고.
하느님 아버지가 함께하는 거를 거기서 보는 거라.


그런데 이 얘기를 요새 교회에서는 기가 막힐 정도로 안해요.
교회 안에만 하느님이 계신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사람을 다스리고 ― 다스린다는 얘기 재미없지요?

사람을 모시고 하늘을 섬기는 길은 알뜰함만한 게 없다는 거요.
알뜰해야 모시고 대접하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농부가 타작한 뒤에 마당에 콩 하나 팥 하나가 있을 때 그걸 집어서 모으잖아요.

그 작은 콩 하나 팥 하나 속에 우주 전체의 힘이 들어있는 거라.
만남이 거기 들어있고, 생명이 있는 거라.
알뜰하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1988년 9월 19일, 서울 대치동 성당에서 열린 ‘한살림 월례강좌’에서 하셨던 말씀 "세상 일체가 하나의 관계” 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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