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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 돈 없으면 죽니?"

-무위당선생-





돈을 꿔간 사람이 도무지 갚을 생각을 안 했다

독촉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화가 난 최병하는 결국 법으로 처리 할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서류를 다 갖추어 놓고 장일순을 찾아갔다

기관에 서류를 내기만 하면 되는 단계였다

그런데 최병하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장일순이 한 말은 이 것 하나 였다

"너 그 돈 없으면 죽니?"

그 돈이 없으면 죽기야 하랴, 최병하는 그때 제재소를 하고 있었다, 살만 했다.



" 그 돈 없어도 너는 살지 않니?
네 말대로 하면 그 사람은 죽는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너도 발 뻗고 못 잔다.
평생 그 원한을 어떻게 받으려고 그러니?

포기해라."


적지 않은 금액 이었다.
그 돈을 포기하라고 장일순은 말하고 있었다.
바로 받아들일수 없어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최병하에게
장일순은 아주 못을 박았다.


"니가 그 돈이 없어 밥을 못 먹는다면 내가 쌀 값을 마련해주마,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포기해라, 없는 돈이다 생각하고 편안하게 지내라,
그 사람이라고 속이 편하겠냐. 그 사람도 발 뻗고 못 잘거다 아마."


그날 밤 고민 끝에 최병하는 그 일과 관련된 서류 일체를 불태워 버렸다,
그렇게 하자 그 돈에 대한 집착이 떨어져 나가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중에라도 갖다주면 고마운 일이고,
안 가져오면 그래도 그만이라고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그렇게 탁 놓아버리자 비로서 맘 편히 잠을 잘수 있었다.





<좁쌀 한알>도솔 발행...

한국 생명 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무위당 (혹은 조한알) 장일순 선생10주기를 기념하여
2004년 발행된 일화집 겸 서화집 , 장일순 선생은 20대에 아인슈타인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원 월드 운동"에 참여 하고 원주에 대성중고등학교 를 세웠다.

1960년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립해 나갈수 있도록 돕는 신용협동조합의 설립과 정착을
도왔고 70년대에는 반독재 재야 운동가로 80년대에는 생활운동을 통한 사회운동을 이끌었다.

늘 시대 흐름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한번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원주에 살다간 예수"라고 불리던 그의 집은 일년 내내 그를 찾는 이들로 빌 틈이 없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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