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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 4-5일에 생명평화결사에서 주최한
'글로벌 위기시대, 생명평화의 길을 찾는다' 포럼에서
윤형근님이 발표하신 글입니다.


또 다른 길을 찾아서  

윤형근


□ 경제 위기 혹은 대공황

1.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불안하던 미국 경제가 지난 9월 중순 메릴린치, 리먼브라더스 등
연이은 투자은행의 파산으로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기축통화의 나라 미국의 경제위기는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그 위기가 한국도 강타하고 있다.

정부의 주문으로 연기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주가는 폭락하고 환율은 폭등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부도가 연이어지고, 그마나 한국경제를 지탱해 오던 수출입도 급강하하며,
금융위기가 실물로 전이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들도 들린다.    

1.2

세계경제는 물론이고 한국경제도 총체적인 위기 국면에 빠져든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2.

위기는 다른 차원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2.1

2008년 들어서면서 오일피크에 대한 우려와 투기자본의 농간으로 배럴당 60달러 전후 하던 석유가
150달러 가까이 치솟았다.
기후 변화로 인한 인류를 포함한 생명계의 생존 위기와 맞물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2.2

에너지 위기와 맞물려 식량 위기도 극에 달했다.
2006년 중반부터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 국제 곡물가가 작년 말 지나 올해 들어서면서 연일 기록을
경신하는 폭등세가 이어진 것이었다.

국제 선물시장에서 최근 2년 동안 옥수수는 132.9%, 대두는 151.1%, 밀은 182.9% 폭등하였다.
지난 2월에는 국제 밀값이 한달새 90% 올랐고, 2월 27일에는 태국산 쌀값이 톤당 580달러에서
760달러로 하루새 30%가 폭등했다는 보고도 터져 나왔다.  

2.3

카메룬, 이집트, 세네갈, 멕시코, 아이티, 필리핀, 타이, 인도네시아에서 식품가격 폭등으로
시위와 폭동이 발생했다는 외신이 전해졌다.  

2.4

식량위기의 원인은 석유 가격 폭등과 그로 인해 생산비가 증가하고 옥수수 등 곡물을 바이오연로로
전용하는 정책이 추진되면서 공급이 줄어든 것 때문이었다.

또한 중국, 인도 등 인구대국의 경제개발로 인한 곡물 소비량 증가, 기상 이변으로 인한 수확량 감소,
곡물 독점과 투기, 에그플레이션에 대한 수출제한 조치 등이 맞물려 있었다.


□ 위기의 근본 원인

3.

더 근본적인 이유는 세계적인 농업 구조조정으로 각국의 국내적 식량생산 기반이 붕괴되었기 때문이었다.

3.1

1980년 금융위기를 당한 멕시코는 세계은행과 IMF에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다.
단, 그 전제조건은 자유무역 체제 편입과 농업의 구조조정이었다.
그것은 식량자급 정책을 포기하고 미국과 유럽연합의 값싼 밀과 옥수수를 수입하는 것이었다.

(미국과 유럽의 곡물가격이 싼 이유는 보조금 때문이다.)
자급소농은 몰락하고 미국의 이주노동자가 되었다. 나프타 체결 이후 이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3.2

쌀 생산 대국이었던 필리핀도 마찬가지 경로를 거쳤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쌀을 1-4% 의무수입하기로 한다.
이제 쌀값이 떨어지고 그 부족분을 다시 수입하는 악순환을 거쳐 생산기반이 붕괴되어 버린 것이다.

농업의 구조조정으로 조성된 커피나 사탕수수 등 단작의 환금작물 농사로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멕시코와 필리핀 양국 모두 이번 식량 위기에 폭동이 일어났다.  

3.3

식량위기에 취약한 국가들의 거의 대부분은 세계무역기구 가입하거나 IMF 구조조정을 받거나
FTA가 체결되면서 근대화, 산업화나 경제성장이란 명목을 바탕으로 국내 농업의 기반이 붕괴하고
자립소농이 몰락하는 길을 걸어왔다.

식량을 공급하는 농업이 상품경제에 편입되면서 환금작물로 단작화 하고, 그 판매대금으로 몇 안 되는
농산물수출국의 농산물을 사다 먹는 형편으로 변한 것이다.

종자부터 식품까지 몇몇 다국적 농식품 기업의 지배를 받으며 농업도,
농업을 담당하던 농민들도 세계경제 시스템에 편입되어버린 것이다.  

3.4

각국의 농업과 농민은 다국적 농식품 기업을 위한 돈벌이 수단이 되어 있었다.
식량가격 폭등이라는 세계경제의 흔들림에 자국의 농업생산, 식량생산 기반이 붕괴된 이들 나라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도 이득을 누리는 것은 다국적 농식품 기업들이었다.
  

4.

금융도 농업의 생산기반 붕괴와 거의 유사한 경로를 걸었다.
IMF 구제금융을 받으며 자본시장이 대대적으로 구조 조정되고 대외적으로 개방되면서,
한국의 은행들은 외국자본들에 의해 잠식되었다.

그로 인해 국가경제에서 금융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방기하고 주주들인 외국자본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투자를 통한 고용창출 등의 은행 본래적 기능과 상관없이 신용카드 대출, 주택 담보 대출,
펀드 판매와 같은 단기적 순익만을 쫓게 된 것이다.  

4.1

국내 금융도 세계경제 시스템의 하부구조로 기능하면서 결국 외국자본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었다.

4.2

외국자본들이 슬쩍 발을 빼면서 한국의 금융시장에 위기가 증폭되었다.
투자유치를 위해 무제한으로 개방한 자본시장이 금융위기 국면에서 오히려 위기를 증폭시켰던 것이다.

4.3

금융이든 농업이든 구조조정을 통해 세계시장 시스템의 하부구조로 편입되면서 국내에서 생산된 부는
자연스럽게 세계시장의 중심부로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부의 역외 유출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제3세계 사람들이 생산한 부를 기축통화 달러의 발행을 통해 이전함으로써 미국은 풍요를 구가해
 왔던 것이다.
 
제3세계라 할 수 없지만,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환율 변동으로 국민생산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경험을 이미 외환위기 때 경험하지 않았던가. 

    
□ 경제위기의 해법

5.

해법은 단순하다.
세계경제 시스템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독립적 공간, 블록을 마련하는 것이다.

5.1

실제 기축통화 달러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유럽연합이 유로라는 새로운 화폐를 만들고
경제적 통합을 지향했던 것이다. (물론 유럽도 이번 경제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너무 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리라.)

이미 세계화가 국가적 이슈가 되던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일부 전문가집단에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가
거론되었던 것도 이 때문이고, 최근 경제위기 상황에서 일본과 중국, 한국의 협력이 하나의 길로
제시되는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다.  

5.2

그 자유의 공간, 블록은 여러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다.
유럽연합이나 동아시아처럼 지역적(region) 차원, 국가적/민족적 차원, 지역적(local) 차원,
그리고 한 가정 혹은 한 개인의 차원도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이다.

5.3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세계경제 시스템에 포획된 한 가정이나 한 개인이 그 시스템으로부터 탈락하는 순간, 어떤 나락이 기다리는지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내년에, 후년에 우리는 또 그런 비극적 이야기를 얼마나 듣게 될까?  
    

6.

서브시스턴스(subsistence), 생존을 위한 자립....
번역이 어렵지만, 세계경제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생존이 가능한 자립적 상태를 말한다.

6.1

마리아 미즈는 <힐러리에게 암소를>이란 글을 통해
서브시스턴스의 의미를 밝힌다. 생산수단인 소를 기르지 않는 미합중국 대통령 영부인 힐러리를 불쌍히
여기는 인도의 시골마을의 가난한 여성들.... 비록 가난하지만, 이윤 추구의 시장경제로부터 자유로운
그 여성들

6.2

경제위기에서도 세계경제 시스템으로부터 자립한 체계를 갖고 있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6.3

식량을 자급하고 남는 것을 시장에 내다팔던 농사를 짓던 사람은 위기와 무관하다.
하지만 시장에 내다팔 물건만을 재배하고 그 판 대금으로 식량을 사다먹는 사람은 물건값을 제대로
못 받거나 그 물건을 시장이 사주지 않을 때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6.4

자립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자급자족의 의미, 자기결정권의 의미, 그리고 주류의 경제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의 의미....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주류의 세계경제 시스템으로부터 자립이다.
이 자립을 이룰 수 있다면, 최근의 경제 위기와 같은 상황에도 위협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 대안의 지역, 지역의 대안

7.

주류의 세계경제 시스템으로부터 자립을 이룰 수 있는 단위는 한 개인이나 한 가정일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자립의 최소 단위는 바로 지역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하나로 통합되는 공간이면서 전일적 생명활동의 장인 지역......
지역(region)도 아니고 국가도 아니고 한 가정이나 개인이 아닌 지역(local)의 자립에 대안은 존재한다.

7.1

한데, 현재 우리의 지역은 서울의 내부 식민지이다. 세계경제 시스템의 가장 하단에 속해 있는 곳......

7.2

다시 말해, 우리의 지역경제는 자립과는 전혀 거리가 먼 세계 경제과정에 종속되어 있다.
특히 생명 유지의 기본적 조건인 먹을거리로부터 시작해서 고용, 물류, 금융, 교육 등 인간이 살아가는
거의 모든 것들을 세계 경제에 일방적으로 의존함으로써 생명과 환경이 위기에 처하여
우리의 생존 자체를 뿌리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7.3

지역이 세계경제 시스템에 어떻게 예속되어 있는가는 대형마트의 사례를 보면 가장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지역에 외부의 자본이 들어와 대형마트를 만든다. 물론 고용이 창출된다.

주요 관리직은 서울로부터 파견된 사람들이고, 많은 비정규직이 지역 사람들로 채워지는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들이 진열되어 팔리고, 그 판돈의 대부분은 서울의 본사로 옮겨간다.

지역의 노동력도, 지역의 신용도 창출되지 않는다.
지역의 부가 외부로 유출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부가 미국 쪽으로 유출되고 있는 모습의 축소판이다.

7.4

지역의 자원을 지역 밖으로 유출하는 월마트, 이마트에 대해 반대하면서 지역의 소상인을 보호하려는
운동도 지역의 독자적이고 자립적인 경제 시스템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7.5

이렇게 생각해보면, 한국사회가 세계경제 시스템으로부터 자립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경제자립을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6

지역의 경제자립, 과연 가능한 일일까?
노동력과 신용, 더 나아가서는 토지의 지역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력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으로 돌아오는 시스템,
신용이 지역 내에서 순환되는 시스템,
지역의 토지가 외부인의 소유가 아니라 지역의 사회관계 속에 정립되는 시스템....  


□ 호혜를 통한 지역의 재구성, 전일적 삶의 창조

8.

지역 경제자립의 관건은 지역산업의 육성이다.
지역산업은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산업을 말한다.
그 가장 기본을 이루는 것이 농림수산업이다.
농림수산업의 생산물을 가공하고 유통하는 것도 지역산업의 근간이 된다.

8.1

먹을거리를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운동을 고리로 지역의 자립시스템의 근간을
 갖춰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귀농운동에 대한 지원, 다종다양한 마을공동체 운동, 각종 지역살리기 운동, 농지 트러스트 운동,
유기농업운동, 로컬푸드 운동으로 통칭되는 지역 내 생산 식품 가공 유통 소비 운동,
학교급식, 단체급식, 군대급식, 병원급식 등 급식운동, 생협운동, 직거래운동, 시민자본의 형성,
농민시장, 지역자급운동, 먹을거리 정의와 복지 운동,
지역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하는 지역통화 시스템 등 ……  

8.2

이 지역산업의 육성은 노동력과 신용의 지역화와도 연결되어 있고, 또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지역의 신용기관을 통해 지역에서 생산된 부가 지역에서 순환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지역화의 근간에는 사회적 자본이라는 신뢰가 있다.  

8.3

지역농업 재건을 통한 경제자립의 구상 10가지.
 
① 주요 지역자원을 탈상품화하고 주민들이 공동관리한다.
② 지역에서 토지를 널리 공동이용하면서 영농을 다각화한다.
③ 다양하고 다층적인 협업 조직을 만들어 지역주민에 의한 집단영농의 고도화를 추진한다.
④ 갈이(耕種)농업과 과수, 축산, 수산, 임업, 양조 등을 조합한 지역 복합농업을 형성하는데 힘쓴다.
⑤ 화학비료나 약제에 의존하지 않는 유기농업을 중심으로 하면서 바이오 가스나 소규모 배수정화시설을
    통해 자원을 리사이클 한다.
⑥ 상품화 되지 않은 노동력을 자주관리 방식으로 조직하여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경영에 참여한다.
⑦ 농업관련 산업을 모체로 한 농촌공업을 진흥한다.
⑧ 잉여농산물의 판매나 소비재의 구입은 지역시장이나 인근 지역과 비시장적인 장기협정을 체결하여
    시장 메커니즘을 보완한다.
⑨ 신용조합을 발전시켜 경제활동에 필요한 자금의 지역 내 순환을 촉진한다.
⑩ 지역주민들이 다른 지역사람들과 인격적인 교류에 참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한다.


9.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어떠한 경제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역을 만드는 것이다.
지역에 활력을 주고 지역을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길....
농업 생산, 먹을거리 생산을 고리로 지역의 자립 시스템의 근간을 만드는 일이다.

9.1

그 길은 지역농업, 농림수산업을 근간으로 하는 생태적 물질순환과 경제적 기반의 조성뿐만 아니라
영성 문화적 교감과 자치를 통한 공공영역의 창조가 통합되는 장으로서 지역에 대한 통합적 전망을
찾는 것이리라.

교육, 문화, 복지, 생태, 환경, 경제, 의료, 자치, 공동체를 포괄하는 지역……  
사회적 협동의 호혜 관계를 바탕으로 한 지역사회의 재구성, 그리고 그것을 통한 전일적 삶의 창조.....
여기에 위기 극복의 길, 생명평화의 길이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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