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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행석
‘프로그램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고운정 미운정 들고,
헤어지는 광주MBC PD입니다.
현재 광주MBC <신얼씨구학당>을 만들고 있습니다.

굿도 보고 떡도 먹고
이어라 '굿의 마음'

▲ 민중들과 평생을 함께 해 온 진도 의신면 원두리 채정례 당골.
ⓒ 윤행석

생활문화도 시절따라 변하는 것인가 보다. 요즘 굿현장을 다니다보면 굿을 필요로 하는 의뢰인이나, 굿을 주재하는 무당이나 시나위 악사들 못지 않게 굿보러 온 사람들 때문에 난리굿이 나곤 한다.
민중들의 삶 자체가 굿으로, 단골판으로 이루어져 있던 수십 년 전 진도땅이 아닌데도 “굿났다”는 소문은 온라인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간다.

2007년 11월23일 진도 씻김굿 명인 고(故) 박병천 선생을 씻기는 씻김굿이 벌어진 진도읍 철마광장. 서로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기를 쓰는 방송 카메라들, 민속학자들, 굿 애호가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굿보러 온 진도 사람들도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그런데, 돌아가신 아버지를 씻기는 박미옥 무녀도, 송순단 무녀도, 시나위를 연주하는 악사들도 이미 탤런트나 배우가 되어 있는 모습이다.

굿거리 중간중간에 판소리나 춤, 민요 공연이 곁들여진다. 굿을 벌이는 것이 민속(民俗)이 아니라 진짜 공연(公演)이다. 사람이 죽고, 죽은 사람의 혼을 건지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평안을 기원하던 굿. 인생사 희로애락의 순간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행해졌던 생활문화인 굿도 점차 생활현장을 떠나가고 있다.

 “액을 물리치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해 끼치지 말아달라”는 한 뜻
다큐멘터리 <굿>을 제작하느라 2007년 한 해동안 여러 굿을 보러 다녔다. 진도, 신안, 경남 통영, 경기도 수원, 의정부….. 그런데, 보면 볼수록 미궁에 빠지는 것 같았다.

전라도를 대표하는 ‘진도 씻김굿’이 다인 줄 알았더니 다른 지역에서는 ‘전라도 씻김굿’이라고 하지 진도 씻김굿만을 일컫지 않았다. 경상도에는 남해안 별신굿이 있고 부산에서 동해안으로 따라 강원도까지는 동해안 별신굿이 있었다. 서해안쪽으로는 또 서해안 지역에서 해온 굿이 따로 있었다. 서울에는 서울굿이, 경기도에는 또 서울과 다른 양식의 굿이 있었다. 제주도의 굿은 내륙지역과 또 달랐다.

▲ 씻김굿을 하고 있는 채정례 당골.
ⓒ 윤행석

“굿이 우리 민족문화의 뿌리다” 하는 말이 그것이었다. 지역마다 사투리가 다르고 음악색깔(토속민요의 토리)이 다르고 즐겨먹는 음식이 다르듯, 굿의 형식과 이름도 지역마다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본질은 같았다. 사는 지역이나 기질은 달라도 같은 한국인이듯, 지역마다 다른 굿도 “액을 물리치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달라”고 기원하는 뜻은 하나였던 것이다.

새마을운동 바람 앞에  ‘미신타파’ 구호의 대표적 희생양
한민족의 기질과 지역색을 명료하게 드러내주었던 굿, 인생살이 생로병사의 순간마다 행해지던 굿이 급속도로 쇠퇴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새마을운동을 펼치면서 내세운 ‘미신타파’ 구호의 대표적인 희생양이 바로 굿이었던 것이다.

민중들 사이에서 생활문화로 이어지던 굿은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 기독교 문화의 도입을 거치며 계속 아래로 깔리고 깔려 천민집단의 호구(糊口)를 면치 못했던 터다. 그런데, 지배계급의 제도적 탄압으로 굿당이 부셔지고, 구속되는 무당들이 생겨나면서 ‘무당굿=미신’의 등식이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뿌리내린다.

바다와 인접해 있어서 늘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굿문화로 극복하며 살았던 동·서·남해안 어촌 마을의 별신굿들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전남 진도나 신안처럼 마을마을마다 당골들이 사제기능을 하던 단골판 문화도 깨지기 시작한다. 새마을운동은 마을 공동체를 깨고 도시화 산업화를 촉진했고, 마을 공동체를 지탱하던 생활문화들을 무대로 옮겨가게 했다.   

가무악(歌舞樂)이 분화되지 않은 채 한 덩어리로 엉겨있는 미분화 종합예술, 아버지의 끼를 아들이 잇고 어머니의 예능을 며느리가 이어가면서 대대로 세습가계(世襲家系)를 이뤘던 굿판도 많이 변해갔다.

▲ 경남 통영의 남해안 별신굿. 바다와 인접해 있는 까닭에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늘 굿문화로
극복하며 살아왔던 어촌 마을에서 별신굿들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 윤행석

태어나면서부터 천민(賤民)의 신분을 벗지 못했던 구식 시절을 지나면서 굿을 ‘민족 예술의 저수지’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굿이 점차 민속악(民俗樂)의 모태로, ‘판소리’와  ‘산조(散調)’의 고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양반 상놈을 차별하던 농업 중심의 제1의 물결 시대가 가고 고도 경제성장 시대, 산업화 시대로의 진입에 따른 변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농어촌 공동체의 터전을 잃은 생활문화들은 전국 민속경연대회라는 이름의 경연장으로 쏟아져 나왔고, 여러 가지 민속들이 문화재 지정을 거쳐 ‘예술’이 되어갔다. 천골(賤骨)이었던 무당들이 ‘인간문화재’ 대접을 받게 된 맥락도 여기다.

“굿은 모여노는 것=재미진 것=마을 축제”
안전망이 생겨나고 보호막이 생겨야 약자들도 사람 대접을 받듯, 이런 제도적 보호가 시작되자 그동안 사회의 냉대와 모멸을 견디지 못해 굿판을 떠났던 굿쟁이들도 하나둘 굿판으로 돌아온다. 3세때부터 어정판(굿판)에서 밥을 먹었던 경남 통영의 세습무 정영만(1956년생)씨도 그런 경우다. 초등학교때부터 굿판을 다니며 피리를 불었던 소년은 늘 친구들에게 ‘무당 새끼’라는 놀림을 견뎌야 했고, 결국 굿을 피해 온갖 밑바닥 직업을 전전하며 ‘인생의 대학’을 다녀야했다.

1987년 경남 통영의 남해안 별신굿을 잇던 선조들이 모두 “니가 이어라” 유언하고 작고한 뒤에야 그는 굿판으로 돌아왔다. 사재를 털어넣고, 어린 후배들을 다독여가며 <남해안 별신굿>을 살려냈다.

그의 노력과 의지가 없었다면 지금은 기억되지 않은 여러 마을굿 가운데 하나였을 것, 그것이 우리 한국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면면히 살아숨쉬던 문화였는지도 모르고 사라졌을 것, 정영만의 <남해안 별신굿>이다.

ⓒ 윤행석

우리나라 굿에 ‘무당 내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당과 악사들이 주관하는 무당굿과 함께 마을 사람들끼리 행했던 굿도 많았다. 옛날 마을마다 두레패가 있을 때 풍물패를 이루어 농사의 능률을 올리던 두레 풍물굿이나 풍장굿, 풍물패들이 돈과 쌀을 얻어내려고 가정집을 돌던 걸립굿. 요즘도 정월대보름이면 많은 농촌 마을에서 행하는 당산제(=마을굿=동제), 여름 농번기가 끝나면 ‘써레씻음’이라고 해서 마을에서 음식장만해서 재미있게 모여노는 풍습도 무당없이 치르는 굿문화의 사례다.

 이렇듯 예로부터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살던 시절에는 ‘굿문화’라고 할 만큼 굿이 일상적인 생활문화로 자리했었다. 지금도 농촌에 사는 어른들의 감성 레이다에는 “굿은 모여노는 것=재미진 것=마을 축제”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하찮은 미물도 소외된 사람들도 함께 하는 굿판 
새마을운동 이후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세대에게 ‘굿=미신’이라는 인식과 달리 왜 가방끈  짧은 어르신들은 ‘굿=좋은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건 ‘굿의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굿의 마음에는 저주가 없다. 굿이 열리는 곳에서는 누구든 잘 먹여서 보낸다. 굿을 여는 사람들은 밥과 술을 내놓고, 굿판에 참여한 사람들은 밥과 술을 나눈다. 하찮은 미물도 겸손하게 대하는 마음, 손주를 대하는 할머니의 마음, 가난한 노동자와 소외된 사람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마음, 그런 마음이 바로 굿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평생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았던 세대들은 지금도 굿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하는 것이고, 서구적 가치관과 이해타산에 익숙한 산업화 이후 세대들은 굿의 마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날로 강퍅해지는 세태는 굿의 마음을 간직한 굿쟁이들도 찾아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예능은 날로 세련되고 ‘예술’의 꽃은 여기저기서 피어나는데 정작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보듬어주고 상담해주고 치유해줬던 그 옛날 마을의 성직자, 당골의 모습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니 지금도 농사지으며 쓸쓸히 늙어가는 진도 의신면 원두리의 채정례(83)·함인천(81) 부부처럼 ‘굿의 마음’을 이어가는 분들이 갈수록 그리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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