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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틴 "세계적 수준의 공황은 시작됐다"

"장기적 구조변동 함께 봐야…20~50년 혼란 뒤 새질서"


프레시안, 기사입력 2008-10-16 오후 6:48:52


    

"현재의 체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나 새롭게 들어설 체제는 다양한 투쟁의 결과이기 때문에 어떤 모습일지 예상할 순 없다.


곧 들어설 새로운 체제는 자본주의가 아니겠지만, 극단화되고 위계화된 더 나쁜 것일 수도 있고, 비교적 민주적이고 평등한 더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이 시대에 세계 수준으로 벌어지는 정치 투쟁의 핵심은 바로 어떤 체제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세계체제론'을 정립한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금융위기 발발 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는 15일 미국 빙햄턴대학 페르낭브로델센터 홈페이지에 올린 논평문을 통해 "언론은 지금도 우리가 경기침체(recession)에 들어간 건지 아닌지를 묻고 있지만 불황(depression)은 이미 시작됐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원문 바로 가기)
 

"보호주의 및 국가 개입주의로 이미 회귀"


월러스틴 교수는 "대규모 실업을 동반한 세계적인 수준의 본격적인 공황은 이미 시작됐다"라며 현 상황을 '고전적인 의미의 디플레이션'이나 '끝없이 치솟는 인플레이션'(runaway inflation)으로 규정할 수 있고, 그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는 보통사람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월러스틴은 "단기적으로 보자면 세계는 이미 보호주의로 회귀하고 있고, 미국이나 영국에서조차 은행과 사양 산업을 부분적으로 국유화하는 등 정부의 감독 역할이 더 커지고 있다"라며 "또한 정부 주도로 부를 재분배하는 인기영합주의의(populist) 방향으로도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것은 중도좌파적인 사회민주주의 체제일 수도 있고, 극우 권위주의 체제일 수 있다"라며 "모든 이들이 작은 파이를 두고 경쟁하면서, 국내적으로 심각한 사회적 갈등이 벌어지는 상태로 가고 있다. 단기적으로 볼 때, 그것은 좋은 그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 재무부, FRB, IMF 개입 한계에 다다라"


월러스틴은 이같은 위기의 원인이 파생상품이나 서브프라임, 혹은 석유 투기 때문에 위기가 왔다는 분석은 "책임 떠넘기기"이자 "먼지 긁어모으기"에 불과하다며 중기적 수준의 변동과 장기적인 구조적 변동을 동시에 봐야 한다고 말했다.


월러스틴은 50~60년 마다 돌아오는 중기적인 순환 주기(콘드라티예프 주기)와 그보다 더 긴 헤게모니 순환 주기라는 세계체제론의 기본 개념을 가지고 현 상황을 분석했다.


헤게모니 주기에 의하면, 미국은 1873년 영국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국가로 부상한 뒤, 1945년 완전한 헤게모니 국가가 됐고, 1970년대 이후 천천히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 인해 추락의 속도가 빨라졌다고 월러스틴은 설명했다. 세계는 이미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를 벗어나 다극체제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콘드라티예프 주기에 따르면, 세계는 1945년 하향세를 멈추고 강력한 상승세를 보여 1967~73년 최고조에 이른 후, 다시 하향세로 돌아섰다. 그 하향세는 45년까지의 그것과 달리 훨씬 길고 현재의 상황은 바로 거기에 놓여 있다.


1970년대 이후 생산 활동에 따른 수익률은 떨어지고 있다. 그에 따라 더 높은 수익률을 찾게 된 자본가들은 금융 분야로 눈을 돌렸다. 금융의 기본은 투기이다. 그러면서 일반적인 생산 활동은 임금이 더 낮은 곳을 찾아 주변부 국가들로 이전했다. 과거 산업도시였던 미국이 디트로이트나 독일의 에센, 일본의 나고야에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공장들이 중국, 인도, 브라질로 이전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일부 사람들은 금융 거품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거품은 언제든 꺼지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이후 하향세가 과거의 그것보다 긴 것은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국제통화기금(IMF) 및 유럽·일본의 협력자들이 주기적으로 시장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87년 주가폭락, 89년 저축대부조합 파산, 97년 동아시아 금융 위기, 98년 롱텀케피탈매니지먼트 사건, 2001~02년 엔론 사태 때 그 기관들이 보여준 모습이 그것이다.


월러스틴은 그러나 그같은 개입에는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지금이 바로 그 한계에 다다른 것이라고 말하며 "이번엔 최악을 피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생산비 증가가 구조적 변화 이끌어"


월러스틴은 이어 "과거 불황이 닥치면 세계 경제는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섰다"며 "주식시장이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면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이지만, 몇 년 정도 밖에 못 갈 것이며 이미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한 피해를 본 뒤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지금은 지난 500년간 자본주의를 지탱해 온 '훌륭한' 주기적인 패턴에 끼어든 새로운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라며 노동력, 투입자본, 세금(personnel, inputs, taxation)이라는 3대 생산비용이 500년간 지속적으로 상승해 독과점 생산으로도 큰 이윤을 얻기 힘들게 된 것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는 이같은 상황에서 나오는 단기적인 결과는 현재 세계체제가 겪고 있고, 앞으로 20년에서 50년 이상 더 겪을 극심한 혼란이라며 "그 혼란의 끝에서 새로운 질서가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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