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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분’과 ‘공감’ 건네는 통쾌한 소리
<시사난타>의 젊은 소리꾼 남상일
남신희 기자  


<명박산성은 狂宗(연호: 조지) 부시8년(戊子年)에 조선국 서공(鼠公)이 쌓은 한양의 내성으로
서공과 언관을 책하는 촛불민심이 서공의 궁으로 향하는 것을 두려워 해 만든 것이다…>

다음 ‘아고라’의 한 누리꾼이 만든 풍자시가 읊어진 다음 “국민과 역사 앞에 혹시 교만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면서 더 낮고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고…” 등등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씀이 이어진다. 그 뒤를 잇는 건 콘테이너박스 용접하는 장면. ‘말’과 ‘짓’의
간극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막에 씌어진 대로 ‘이 남자가 소통하는 법!’은 대략 이러하다.

“소통 소통 하던 양반이 아 고로코롬 뒤에 숨어불문 아 요거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것 아닌가”라는
소리꾼의 일갈이 때맞춰 날아든다.

지난 6월10일 전국100만촛불대행진에 맞서 난데없이 등장한 이른바 ‘명박산성’을 풍자한
이 동영상은 누리꾼들에게 열렬한 지지와 환호를 받았다.
하수상하고 괴이쩍은 짓들을 향해 눈을 뚱그렇게 치뜨고 호통과 야유를 본때있게 쏟아내는
젊은 소리꾼을 향해서도 관심이 모아졌다.

하수상하고 괴이쩍은 짓들 향해 본때있게 호통과 야유
이 삐딱하고도 귄있는 소리꾼은 누구인가. 국악계에서는 진즉 ‘될성부른 떡잎’으로
주목받았으며 그 주목에 값하는 탄탄한 성장을 이뤄온 남상일(30)씨다.
국립창극단에서 막내급에 드는 그는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연 역할을 맡았을 만큼
실력을 갖춘 소리꾼으로 통한다.

현재 KBS2TV <시사투나잇>에서 시사문제를 판소리로 풍자하는 <시사난타>를 이끌고 있다.
“특히 요즘 이명박 정부 하는 꼬라지 보면서 속에서 열불 터지는 분들, 꼭 보시기 바랍니다”는
한 시청자의 추천사마냥 합리와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폭주하는 이 시국에 웃음과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라도 보지 않을 수 없는 코너가 <시사난타>.

북으로 장단을 착착 맞추며 시원하게 내지르는 소리는 물론 남상일 특유의 너름새와 극적
표현이 풍자의 묘미를 더한다.
“시국이 그렇잖아요. 이명박 대통령 잘못하는 것 까대고 가려운 곳 긁어주는 게 통쾌하다며
응원해 주시는 시청자 분들이 많아요.”

▲ 빼어난 소리기량은 물론 익살스런 표정과 찰진 재담으로, 후안무치한 짓
거리들을 쥐락펴락 발가벗겨내는 남상일.

패러디 동영상과 판소리가 어우러진 <시사난타>는 1주일에 한 번(수요일) 5분 정도 분량으로
방송된다. 하지만 말과 삶이 함께 짓눌리는 요즘, ‘난타’의 위력은 작지 않다.
‘누이야/ 풍자(諷刺)가 아니면 해탈(解脫)이다’(김수영, ‘누이야 장하고나!’ 중)
그 시구처럼, 해탈할 수는 없으니 풍자로라도 이 시절을 견뎌야 하는 이들에게 <시사난타>는
단지 한바탕 웃음이 아니라 ‘공분’과 ‘공감’이란 힘을 건넨다.

조상현 명창 판소리를 듣고는 울음 뚝 그친 ‘울보 아이’
방송을 시작한 것은 지난 봄부터. <시사난타>라는 새 코너의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망설임없이 냉큼 받아들였다고 한다. ‘냉큼’의 배후에는 이런 욕심이 있었다.
“판소리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알릴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을까 싶었다.

대중의 눈길을 끄는 인물이 나오면 그 분야가 함께 주목받지 않던가.
김연아 선수나 박태환 선수 때문에 피겨스케이팅이나 수영에 대한 관심이 더 늘듯이 말이다.”

스타가 되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국악을 좀더 알리는 일에 자신의 ‘이름세’가 쓰여졌으면
하는 욕심이 이 젊은이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전주가 고향인 그는 서너 살 때 판소리와 인연을 맺었다. 시도 때도 없이 잘 울어 ‘울보’로
불리던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텔레비전에 나온 조상현 명창의 판소리를 듣고는 울음을
뚝 그치더니 그 소리를 따라 부르더란다.

울보아들의 자질을 눈밝게 알아본 아버지는 아들의 소리를 테이프에 녹음하고 편지를 써서
조 명창에게 보냈다. 그것을 계기로 테이프가 오가는 소리수업이 2∼3년 이어졌다.

이후 조소녀 명창을 사사한 그는 전주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을 거쳐
지난 2003년 국립창극단에 최연소 기록을 세우며 입단했다. 국악실내악단 ‘수리’의
대표이자 음악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국악을 좀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나눌 수 있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는 그 열정으로
<시사난타>도 스스로 즐기며 해내고 있다. 혹시 국악계 선배나 어르신들이 샛길로
치부하며 마뜩찮은 눈길을 보내지는 않았을까. “전혀. 스승인 안숙선 선생님도 열심히
해보라며 격려해 주셨다.”

“판소리의 기본정신이 풍자와 해학 아닌가”
<시사난타>엔 ‘쎈’ 내용들이 많다. ‘저래도 괜찮나’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시대가 어느 땐데…’라고 자신의 소심함을 탓하다가도 전속력을 다해 후진하는
이명박 정부를 떠올리면 그런 걱정이 때때로 드는 것이다. <시사난타>를 하면서
직간접적인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까.

“판소리의 기본정신이 풍자와 해학 아닌가. 애초 풍자라는 건 없는 사람의 소유물이고
비판은 자연스레 위로 향할 수밖에 없다. 내가 소리꾼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첫 회 나가고 나서는 전주에 계시는 어머님이 전화하셨더라. 아야 너 그러다 뭔 탈이라도
나문 어쩔라그냐고. 잔뜩 걱정 섞인 목소리였다. 요새는 주변 분들한테 아따 속시원하게
잘하더라는 평을 종종 들으셔서 그런가 그런 말씀 안하신다.”

그가 믿는 건 우직하게도 이것 하나. “내가 없는 말 하는 것 아니지 않나.”
그것이 이 청년의 당당함의 배경이다.
“내가 좀체 주눅도 들지 않고 겁대가리가 없고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다.
누군가 잘못하는 꼴이나 부당한 상황을 보면 잘못했다는 걸 각인시켜 줘야만 직성이 풀린다.”

▲ 지난 8월10일 광주MBC <新얼씨구학당>에 출연해서 객석과 어우러지는 모습.

그러니 참 피곤하게 산다는 소리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대충’은 그의 사전에 없는 말. 그
래서 얻은 별명도 ‘잔소리꾼’이다. 공연할 때는 소리꾼, 일상생활에서는 잔소리꾼.
그 잔소리는 크고작은 잘못들을 허투루 넘어가거나 침묵하지 않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얼크러지지 않는 깐깐한 건강함이기도 하다.

그 타고난 성정을 <시사난타>에서 제대로 발휘하고 있다. 잘못했다는 걸 ‘각인’시켜줄
꺼리들은 너무 넘쳐서 탈이다.

“소재가 궁해서 제작팀이 고민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연일 풍자할 꺼리가 쏟아지니까.
그만큼 불합리하고 억울하고 말 안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도 될 것이다.
역설적으로는 ‘MB님의 선물’이고. 고민할 겨를도 없게 다양한 소재들을 안겨 주시지 않는가.”

대본이 넘어오면 말투와 표현을 판소리에 맞게 고치고, 아니리로 갈 부분과 소리로 갈 부분
등을 정해 <시사난타>만의 고유한 맛으로 차려낸다.

재미에 더해 답답함 풀어주는 후련함과 통쾌함
지금까지 방송된 <시사난타> 중 최고작으로는 ‘명박산성’편을 꼽는다.
“누리꾼들이 여기저기 퍼나르면서 반응이 정말 뜨거웠다.

‘1박2일보다 재밌다’ ‘개그맨들이 배워야 한다’등등. 사실 <시사난타> 말고도 재미있는
것들은 많지 않나. 재미에 더해 답답하고 암울한 심정을 풀어주는 후련함과 통쾌함이
있어서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명박산성’ 편의 후반부에서 “백척간두 사면초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 믿을 건
이제 친구들뿐이로구나”라는 사설 뒤에 MB의 친구로 등장하는 무리는 김홍도 추부길
임헌조 조갑제 서정갑. 만화영화 파워레인저로 패러디된 이들이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에 더해지는 걱정과 당부소리는 이러하다.

“근디 시방 저 냥반들은 도대체 어디로 날아가는 것이여? 잉, 뭐라고? 5공으로 날아간다고?
에구구, 국민들이 사는 세상은 21세긴디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빨갱이타령 하는 냥반들아,
제발 정신 좀 차리소 제바알∼.”

가짜 영농계약서 등 투기의혹에도 불구하고 지난 6월 청와대 물갈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동관 대변인을 두고는 “아, 나도 그 비결 쪼까 배워봤으면 좋겄네잉”이라고 꼬집고,
종부세 완화를 주장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향해서는 “어쨌건 이 강부자 정권에서는 9억은
가져야 중산층이다 이거지?”라고 힐난란다.

정두언 의원과 이상득 의원이 갈등을 빚었던 국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이상득 의원의
손을 들어주는 패러디 화면이 흐를 때는 “형은 아우를 사랑하고 아우는 형을 섬기고,
두 냥반 형제애에 내가 눈물이 다 나네그려”라고 능청스레 눈물콧물을 찌익 짜내면서
“오죽하문 만사형(兄)통이란 말까지 나왔겄어”라고 내지른다.

망가지기를 두려워않는 익살스런 표정과 찰진 재담

후안무치한 짓거리들을 쥐락펴락 발가벗겨내는 그. 슬근슬근 눙치는가 하면 벽력같이
호통치고 살살 간질이는가 하면 부릅뜬 눈으로 내려본다.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익살스런 표정과 찰진 재담 외에도 판소리 대목들의 효과적
활용이 풍자의 맛을 더한다.

“춘향가 중에 암행중인 이도령이 고을 정사를 묻는 말에 농부가 ‘원님은 노망이요,
좌수는 주망이요, 아전은 도망이요, 백성은 원망이니 사망이 물밀 듯 하지요’라고
답하는 대목이 있다. 백성의 진솔한 소리이고 원망이다.

판소리를 들여다보면 오늘의 현실에 대입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대목들이 참으로 많다.
의원님들께 금배지값 좀 단단히 해주라며 싸움질 많은 국회를 풍자할 때는 적벽가 중
‘죽고타령’을 넣어 봤다.

없는 사람들은 살기가 무장무장 힘들어지는 폭폭한 현실을 이야기할 때는
‘가난이야 가난이야 원수놈의 가난이야…’라고 흥보가 중 ‘가난타령’을 부르면서
서민들의 심정을 실어보기도 했다. 어느 소재를 다루건 전통판소리에서 끌어올
대목들이 무궁무진하다.”

때로는 가요랑 광고음악들도 활용한다. 문국현과 이회창 연대를 풍자할 때는
김건모 노래 ‘잘못된 만남’을 판소리 버전으로 걸죽하게 선보였고, 광고음악 ‘
되고송’으로도 풍자의 주먹을 날렸다. “촛불시위, 반미좌파라 하면 되고,
대통령이라는 게 외로워질 때면 미국 친구 보면 되고. 어이∼부시∼”.

자기 앞에 펼쳐진 ‘판’에 ‘시대’ 담고
오늘의 사회현실을 그렇게 짚어내듯 어디에서든 ‘판’을 읽는 것은 그의 직업적 버릇이다.
“판소리의 매력 중 하나는 즉흥성이다. 그 즉흥성은 돌발적인 게 아니라 판의 흐름을
읽는 데서 출발한다. 거기에서 소통이 싹트고 판을 살리는 신명이 돋는다.”

지난 6월 전통예술분야 유망주들의 릴레이공연으로 꾸려진 정동극장의
‘아트프론티어 페스티벌’.
자신의 공연 때 그는 <흥보가> 외에 <노총각 거시기가> <10대 애로가(哀怒歌)> 등
창작판소리도 펼쳐 젊은 층의 호응을 끌어냈다. ‘이 남자가 소통하는 법’은 스스로를
틀에 가두지 않는 자유로운 넘나듦, 상대를 헤아리는 마음에 있는 것이다.

<10대 애로가>(김상규 작사·남상일 작창)는 0교시 타율학습 등 입시경쟁교육에 지친
10대 청소년들의 애로사항과 희망사항을 풀어낸 판소리이고 <노총각 거시기가>
(김은경 작사·남상일 작창)는 결혼하기 힘든 농촌 노총각의 결혼담을 엮어낸 판소리.

“청소년들에게 <10대 애로가>를 들려주면 ‘아 판소리에도 내 문제를 담을 수 있구나’
하는 신기함과 가슴 시원함을 느낀다. 오늘의 문제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는 데서
느끼는 공감이다.”

마음을 트는 길 하나가 그렇게 열린다. ‘통(通)하라!’를 늘 자신에게 주문하고 고민하는
그는 창작판소리 분야에서도 값진 성취를 이뤄가고 있다.
창작판소리에서 느낀 재미와 친근함이 전통판소리에 대한 관심과 재발견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판소리에 대한 수많은 정의들 중 그가 좋아하는 건 ‘시대를 담는 그릇’.
공연장이든 텔레비전 시사코너를 통해서든 자기 앞에 펼쳐진 ‘판’에 ‘시대’를 담으며
동시대인들과 울고웃고자 하는 그의 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얼쑤! 그렇제! 조오타! 추임새가 많아지면 더욱 신날 판이다.

▲ <시사난타> 중 시청자와 누리꾼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은 ‘명박산성’편의 일부 장면들. 단
지 한바탕 웃음이 아니라 ‘공분’과 ‘공감’이란 힘을 건네는 풍자가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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