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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위기시대의 노동운동에 대하여



정호

근대자본이 지배한 이 후, 지구는 인간이든 동식물이든 모두가 고통의 복판에 있으며, 수술대 위에 놓여 있습니다. 지구는 무한한 약탈의 대상이 아니라 유한하고 매우 비좁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시점에, 몇 안 되는 거대자본과 권력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는 실업자, 주변인, 고독한 노인, 불안한 노동자와 농민, 풀, 꽃, 새, 돌, 바다와 같은 다양한 생명체와 공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제 노동운동 뿐 아니라 삶의 욕망을 가진 모든 존재의 중요한 숙제가 되었습니다. 절멸의 위기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근대 이성은 자연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행위가 자연 파괴적일지라도 자연은 저절로 복귀됨으로 고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고입니다. 이런 근대의 사유체계가 재앙과 같은 환경의 역습을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대 인간이 예상했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브라질 열대우림의 파괴와 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 화석연료 고갈에 따른 에너지전쟁 등 재앙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근대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어 자연은 회복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으며, 생태무지의 무조건적 성장과 개발의 논리로는 인간 자신마저 절멸할 수 있다는 이기적 각성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탈근대가 논의되기 시작했고,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연과의 유기적 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반성이 일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생태주의 운동의 시작입니다. 생태주의 운동은 반자본주의 대항전선에서 대단히 중요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사회와 지구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 않을 능력이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다는 신념에 기반한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한없는 욕망에 기초한 맹목적인 성장을 인간이 극복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반자본주의적 사회변혁의 가능성의 척도라는 것입니다.

생태주의 운동은 파국의 비관적 종말론이 아닙니다. 나아가 종말로 치닫고 있는 현실운동의 저항세력으로만 남자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이후의 현실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매우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꿈과 이상으로 치부되는 미래의 전망을 바로 지금 여기서 만들어내고 보여주어야 할 것으로 간주하며, 대안은 바로 여기 언저리에 있다는 것을 줄기차게 강조합니다.

청년시절 주물공장과 자동차공장에서 산업별 조직 활동가로 일했던 사회적 생태주의 노동운동가 머레이 북친이 “사회생태주의”라는 저서에서 생태적 노동운동이야말로 인간해방과 사회변혁을 가능케 하는 힘이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지구생태계의 대위기를 초래한 기업과 국가의 책임은 무한합니다.

이런 점에서 생태적 노동운동의 제1의 의제는 기업과 국가의 무한책임을 주장하고 현실적으로 실행에 옮기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 기업의 이익 창출이 공동체로 환원되지 않는 기업은 반드시 퇴출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국가권력 역시 언제든지 바뀌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읽어야 합니다. 근대 노동운동이 지적한 착취의 문제는 인간의 노동이 도구나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하지만 탈근대 사회의 실업자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노동이 도구로써 이용될 가능성조차 없는 일자리배제의 상황입니다.

자본은 노동이 배제되어가는 새로운 상황을 노동의 유연화로 활용하려고 하며, 그들의 이러한 기획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로 나타나고, 정규직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를 일상화하려 합니다. 생태주의 운동은 이러한 차별을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노동의 공공성을 확립하고 차별과 배제가 없는 협동의 경제라는 강한 조건을 그 전제조건으로 삼습니다.

사회적 노동이라는 큰 틀에서 노동의 새로운 연대를 요구합니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노동을 국가와 기업에게 요구하는 지점에서 단결을 강조합니다. 노동운동이 기업과 국가의 무한한 생태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의제를 생산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태적 노동운동은 이런 의미에서 기업의 기후변화대응의제나 비정규직의 사회적 노동으로의 포섭의제를 테이블 위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장 내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정규직 노동자를 비정규직화하려는 노동의 유연화정책을 단결하여 막아내는 길은, 기업과 국가의 무한한 책임이 노동자에게 다시 돌아올 때 근본적으로 해소되는 일이니 만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노동운동이 주장하고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업과 국가의 이산화탄소 배출 책임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기업은 사활을 걸고 CO2 제로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생태위기의 시대에 기업은 도태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석유정점에 도달하고 있는 시점에 무엇으로 공장을 돌린단 말입니까?

이제 노동운동이 공장과 기업을 생태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노동운동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노동의제로 삼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노동의 종말의 시대에 일자리를 단결하여 사수하는 길입니다. 노동운동이 공장을 바꾸지 않으면 탈산업사회의 자본이 생태적 노동운동을 통해 절감된 원가를 독식할 것입니다. 결국 자본과 국가에게 노동의 생존을 맡기게 되는 노예적 상황이 계속될 것입니다. 생태적 노동운동이 일자리를 단결하여 사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비정규직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자가 여전히 변혁의 주체이며, 따라서 만국의 노동자와 진보정당은 대단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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