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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영화를 만났을 때
《미술영화 거들떠보고서》 이연식 지음·지안
남신희 기자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와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영화 <스캔들> 속의 기생.




책 제목이 《미술영화 거들떠보고서》이다. 영화 보면서 거개의 관객들이 놓쳤을 장면이나 상황들을 다시 ‘거들떠 보
게’ 하는 책이다.

먼저, 영화 <타이타닉>부터 거들떠 보자. 남자 주인공 잭 도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그린 것으로 나온 소묘들이 모두 감독인 제임스 캐머런이 직접 그린 것이란 사실을 아시는지.

영화에선 사람들마다 잭의 그림에 찬탄을 보낸다. 그러나 저자 이연식씨가 보기에 그 그림들은 “애처로울 정도로 시답잖고 뻣뻣하기만 할 뿐”이다. 작품 수준이 장면의 설득력을 높이기보다 오히려 떨어뜨리고 있는 것. 그가 제임스 캐머런을 ‘뻔뻔한 감독’이라 부르는 이유다.

여주인공 로즈가 수집한 그림들을 꺼내 보이는 장면도 딱 걸렸다. 그 중엔 피카소의 걸작 ‘아비뇽의 여인들’도 있다. 그러나 피카소가 1907년 그린 이 작품은 1916년 전시회 출품 전까진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단다. 그러니 타이타닉이 대서양을 항해한 1912년에 이 그림은 바깥세상 구경도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라는 게 그의 설명. 또 가로 세로 2미터가 넘는 이 그림을 가로 세로 1미터 크기로 줄이면서 실제 그림의 비례를 무시하는 바람에 화면 바깥쪽 인물들이 찌부러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도 일러준다.

미술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숨어있던 1인치’를 발견하듯 영화 속 미술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의 관심사는 <타이타닉>의 예처럼 자기현시용 설정이나 앞뒤 맞지 않는 조각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가 미술과 미술가, 미술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두루 들여다본다. 그 중엔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부추기는 장면이나 장치들도 많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 저자는 이 영화가 '기행과 광기'라는 상투적 예술가형을 손쉽게
끌어들였다고 말한다.
ⓒ 전라도닷컴

‘숨어있던 1인치’ 발견하듯 영화 속 미술 새롭게

기행과 광기는 화가를 그릴 때 영화가 즐겨 쓰는 틀 중의 하나. 화가 고흐를 다룬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삶의 열망>도 그런 방식을 택하고 있다. 고흐의 자살은 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음에도 영화엔 고흐가 제 가슴에 총을 겨누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이를 ‘고통과 광기의 화가’라는 신화를 공고화하려는 집착 때문으로 풀이한다.
조선시대 화가 장승업을 다룬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도 손쉽게 상투적 예술가형을 끌어들인 예로 그는 들고 있다.

영화 속엔 남이 칭찬한대도 제 성에 차지 않으면 승업이 벌컥 화를 내며 그림을 북북 찢는 장면들이 잦다. 그러나 미술사학자 김용준이 <오원일사>에서 묘사한 승업의 모습은 크게 다르다. <장승업은 성격이 극히 소방(疏放)하여 그림을 그리되 그림에 붙들리는 법이 없었다. 작품과 성과에 반드시 기대를 가지는 법이 없었다…>는 것.

▲ -<타이타닉>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린 그림들은 실제로는 제임
스 카메론 감독이 그린 것. 저자는 작품 수준이 장면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꼬집는다.
ⓒ 전라도닷컴

또 곧잘 그림을 찢어 버리거나, 계곡물에 갑자기 뛰어들거나, “저 그림 밖이 다 산이고 물”이라고 눙치는 영화 속 장면들은 승업보다 백년 남짓 먼저 태어나 광태와 농지거리로 유명했던 화가 최북의 일화를 따온 것이라고 지적한다.
 <서편제>에서 그랬듯, 마음속 응어리야말로 예술창작의 동력이라고 여기는 임권택 감독의 믿음은 <취화선>에도 이어진다. 영화 속에서 승업의 응어리로 설정된 것은 글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

하지만 그는 승업의 마음 속 응어리나 그림의 독창성을 향한 집착 역시 감독의 취향과 욕망이 과도하게 투사된 결과물로 본다.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에도 ‘문제적 장면’은 있다. 도입부에서 바람둥이 조원(배용준)이 자신의 섹스 파트너인 기생을 그리는 장면이다. 그녀는 조원을 향해 등을 돌리고는 옆으로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아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다.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와 흡사한 포즈다.


그러면, 춘화는 무엇이냐고? 춘화들은 모두 남녀가 들러붙어 행위를 하는 모습들을 담고 있
다. 여성 혼자 발가벗고 화가나 관객의 시선에 몸을 내맡기진 않는다.
그는 묻는다. “서구회화가 확립한 관습을 은연중에 우리는 보편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 않느냐”고.

기행과 광기는 화가 그릴 때 영화가 즐겨쓰는 틀
화가 지망생이었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꿈>도 들여다 보았다. 이 영화 중 다섯 번째 이야기 ‘까마귀떼’는 화가 고흐에 대한 구로사와의 오마주이다.
화가인 ‘나’는 미술관에 걸린 고흐의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까마귀 떼가 나는 밀밭’…. 그림을 보던 나는 부지불식간에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 고흐를 만나게 된다. 영화와 회화가 뒤섞이는 게 이 영화의 매력. 구로사와는 첨단기술의 도움을 받아 자신에게 동경의 세계였던 회화예술에 경의를 표한다. 

▲ 고흐의 작품 ‘까마귀떼가 나는 밀밭’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꿈>이란 작품에서 스크린
에 재현한 밀밭.
ⓒ 전라도닷컴

그러나 그가 이 영화에서 느낀 것은 노(老) 대가의 퇴행적 감수성. 그는 “사람이 늙어갈수록 농담은 줄어들고 잔소리는 늘어간다”며 “구로사와의 영화는 ‘꿈’을 빙자해서 훈계하려 드는 노인네의 잔소리같다”고 불만을 털어 놓는다.
한편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천장화를 그린 시기를 다룬 작품인 캐럴 리드 감독의 <고뇌와 환희>(1965)에도 피할 수 없던 오류가 숨겨져 있다.

시스티나 천장화는 1981∼1994년 대대적 세정작업을 거쳤다. 그 결과 수백년 간의 먼지와 그을음이 벗겨지면서 막 완성됐을 무렵의 밝고 화사한 색채를 드러냈다. 하지만 영화 속 천장화는 당연히 세정작업 전의 색에 맞춰서 그려진 것이었기에 실제 이 작품의 색감보다 가라앉은 색채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비롯  <폴락> <물랑 루즈> <동상이몽> <까미유 끌로델> <모나리자 스마일> 등 서른 편이 넘는 영화를 다뤘다.
저자 이연식씨는 광주 출신으로 서울대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서예가인 학정 이돈흥 선생의 아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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