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금 나는 길에 있다 -- 도법스님 / 김기돈
2008/10/08 14:41


바람결이 부드럽다. 눈에 드는 하나하나 맑고 그지없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이 마주하는 모든 것들과 하나가 된다. 지금 길에 있다. 머리로만 만나던 것을 털어내고 타박타박 내딛고 몸으로 느끼고 만난다.


작아가 만난사람_도법스님

지금 나는 길에 있다


글·사진 김기돈



바람결이 부드럽다. 눈에 드는 하나하나 맑고 그지없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이 마주하는 모든 것들과 하나가 된다. 지금 길에 있다. 머리로만 만나던 것을 털어내고 타박타박 내딛고 몸으로 느끼고 만난다. ‘어부바’ 엄마 등에서 생명의 숨결과 품을 느끼고, ‘걸음마’ 발을 떼면서 홀로 서서 사람답게 관계 맺고 소통하면서 살았다. 걷기를 배우면서 몸이 알아듣고 깨달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바람이 내 어깨를 스치면서,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삶이 정말 괜찮은지 묻는다.

지금이 내삶의 황금기
도법(59세) 스님이 일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과 공간은 ‘길’이다. 걸을 수 있는 길에 있으면 어디든 충분하다. 걸을 수 있어서, 길에 있을 수 있어서 날마다 좋은 날이다. 5년 가까이 걸으면서 이보다 좋을 수 없는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길은 경청하는 공간이에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거죠. 지금 걷는 시간이 내 삶의 황금기예요. 내가 살아온 시간 가운데 걷고 순례한 지난 5년이 덜 부끄럽고 괜찮았던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2004년 지리산을 시작으로 제주도, 경상도, 부산, 전라남도, 광주, 경북을 지나, 지난해 충청북도와 강원도지역을 걸었다. 그리고 올 들어 운하를 반대하는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이란 이름으로 낙동강부터 한강에 이르는 길을 100일 동안 걸었다. 이 사회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해와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이 너무나 천박하다. 어떤 예술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대신할 수 없고,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넉넉함과 여유로움과 따뜻함과 건강함을 줄 수 없다. 사람들이 이러한 아름다움의 존재의미와 그 가치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지하다. 그래서 감히 ‘운하’를 팔 생각을 버젓이 내놓는 것이다.
“강을 따라 걸으면서 스스로 뭔가 잘못 보고 잘못 생각하는 것, 말은 그럴듯하게 하면서도 삶은 그럴듯하게 살지 않는 자기모순과 자기결함을 면밀하게 관찰하게 되니까, 말이 아니라 삶을 멋지고 참되게 살겠다는 다짐이 일어났던 거지요.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몸으로 체험하며. ‘운하는 해서는 안 된다’라는 확신을 드러냈던 거예요.”
이렇게 시작한 ‘생명평화 탁발순례’는 5년째 다채로운 삶의 모습, 이 사회를 가로지르는 모순의 깊이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뼈저리게 공감하고, 그 왜곡된 실체를 마주하며 이 땅 구석구석을 두 발로 걸었다. 산과 강을 따라 걷고, 들과 마을로 접어들고, 얼굴을 마주하고, 이름을 부르며 서로의 말을 듣고 배우면서 걷고 또 걸었다. 이제 마지막 구간, 서울 경기지역만 남았다. 경기도와 수도권 지역 순례를 마치는 9월 초순부터 100일 동안 서울지역을 걷는다.
“서울은 한국사회의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어요. 거기서 어마어마한 힘과 모순이 함께 확대 재생산되고 있죠. 이곳을 걸으면서 그러한 실체를 드러내겠지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생명평화의 가치에 눈뜨고 이를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여 삶으로 이어가기를 바라는 거지요.”
사람들이 이 왜곡된 문명 속에 살아가면서 자기 소리를 듣지 않는다. 생명의 소리, 내면의 소리, 영혼의 소리가 건강하고 온전하게 드러나야 하고, 그 소리에 따라 살아야 허튼 일을 안 하게 되는데, 그 소리를 듣지 않는다. 엉뚱한 것에 홀리고 사로잡혀있다. 걷는 것은 자기 소리를 모자람 없이 울려나오게 하는 것이다. “그 소리를 잘 듣고 살면 삶이 참되어져요. 듣지 않으니 성찰의 문화가 사라지고 결국 껍데기만 남았어요. 사실 걷기야 많이 걷지요. 하지만 이동을 하거나 살을 빼기 위한 걷기는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해요. 걷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자신이 온전하게 드러나요. 걸음을 찾아야 해요. 이 문명이 지속되려면 걷기문화를 일상에 두어야 해요.”
미래를 말하는 것은 ‘지금 내가 조화롭고 건강한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지금이 엉망인데 내일을 준비하거나 변혁을 꿈꿀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삶을 괜찮게 살기 때문에 미래가 문제가 되는 거예요. 내 삶과 네 삶이, 우리들 삶이 괜찮은지를 깊이 묻다보면 결국 우리 삶은 어떤 세계관을 가질 것인가에 달려있다는 것이 분명해져요. 관념운동을 하자는 게 아니라 삶을 제대로 살자는 거예요.” 지금 여기 내 문제로 시작하지 않는 것이 늘 문제이다. 자기 혁명을 기초로 삼지 않는 사회혁명은 의미 없다. “그래야 그 일이 잘 안되더라도 상처받거나 좌절하지 않고, 잘된다고 해서 오만해지거나 무례하지 않아요.”

대안은 참됨에서 온다
42년 동안 ‘도법’이라는 한 수행자가 가지고 있던 화두는 무엇일까. “한 인간으로 인간답게 사는 것이고, 바람직한 수행자로 살아가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잘해보자 하는 거예요. 이것이 지금 생명평화란 개념으로 총화된 거지요. 생명평화 삶이 내 삶이 되게 하고, 내 현장이 되게 하고, 내 이웃과 동료들의 삶이 되게 하는 거예요.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스님은 18세 때 출가 했다. 기복신앙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 손에 이끌려 절에 다녔다. 유복자이자 막내로 태어났고, 어른들이 이끄는 대로 불교신앙 안에서 커왔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것도, 엄청난 전환이 있던 것도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수행자의 길로 들어섰다. “사는 것이 모두 고단하던 때였으니까 막내는 스님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던 것 같아요. 그 분위기 속에서 절집으로 연결되었던 거죠. 스무 살 되기 전까지는 스스로 주체가 돼서 무엇을 하고 싶다는 의식이 없었어요. 이광수가 쓴 <원효대사>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스님’에 대한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자의반 타의반 인연 따라 스님이 됐어요.”
전북 김제 금산사에서 처음 생활을 시작했다. 출가한 지 2년 되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순간 ‘죽음’의 문제가 바짝 다가왔다. 스무 살 젊은 도법이 스스로 갖게 된 첫 문제의식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죽음’이라는 화두가 충격이 되어 오롯한 고민과 번뇌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수행자로서 깊은 의식이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명예나 수행이나 그 어떤 것을 쌓아 올려놓는다 해도 언젠가 다 덧없이 사라져 버리는데,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초적인 존재이유를 물었어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얻지 못하면 그 어떠한 것에도 가치를 둘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삶을 덧없게 하고 허무하게 만드는 죽음이 무얼까, 경험해볼 수는 없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다리에 서서 아래로 흐르는 물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딱 한 번인데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 수행의 길이고 유일한 화두라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오던 길 날마다 근원에 닿은 물음에 대답하며 살겠다는 마음을 새겼다. 자신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수행자로서 문제의식이 정리가 되면서 조금 여유가 생겨 주변과 절집을 들여다 볼 눈이 생겼다. 그런데 깊이 들여다볼수록 경전이나 어록에서 봤던 내용이 현장의 삶으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려웠다. “선방에도 가보고 강원에도 가봤는데 무언가 아니란 말이지요. 이름만 남아있는 거예요. ‘불교가 아닌 것’, ‘불교를 거스르는 것’이 되레 종단을 운영하고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었어요. 개인이나 집단이 근본성찰을 하지 않고서는 길이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뒤로 친구들과 근원을 따져 묻고 본질을 찾아가는 ‘선우도량’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우선 스스로를 진단하고 생각을 모으면서 종단의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바탕과 뿌리를 새롭게 하지 않고서는 길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와중에 1993년 종단상황에 부딪쳤다. 불이 났고 불을 꺼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러 개혁의지가 있는 모임들이 함께 종단개혁에 마음을 모았다. 바탕은 그대로 두고 사람과 형식만 바꾸는 식으로 제도개혁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선우도량’은 바탕을 문제 삼고 이를 중심에 두고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풀어냈다. 생각의 폭과 관점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자연스럽게 종단개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바닥에서 들고 일어나 뒤집었던 사건이었어요. 여러 한계와 결함이 있었지만, 체계와 사람을 바꾸고 새로운 집행부를 만드는 일까지 했어요. 거기까지였어요.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참된 가치와 공동의 가치를 가지고 바꾸기에는 우리 철학과 신념과 자질과 품성과 솜씨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그 안에서 희망을 만들어가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스님만의 방식대로 새로운 희망과 대안을 만들자는 생각이 더 깊어졌다. 이런 계기로 지리산 자락 산내면 실상사로 내려가 작은 실험들을 하면서 희망의 자리를 만들었다. 대안교육공동체 <작은학교>와 실상사 귀농학교를 통한 귀농공동체운동을 이어왔다. 대안은 관념이나 제도나 형식이 아니라는 생각,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참됨’의 문제라는 것을 드러내는 시절이었다. 이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고, 더욱 분명해졌다.

말보다는 삶을 멋지게 살아라
인간은 본디 자연의 존재인데, 도시문명이 극대화하면서 인간생명의 근원지인 자연으로부터 결별해 왔다. 보이지 않게 연결된 생명의 끈이 단절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내리닫고 있다. 생명은 스스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다. 생명이 할 수 있는 것은 살려달라는 절규와 몸부림이다. 이렇게 몸이 스스로 소리치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이 지금 이 정국이 보여주는 실체이다.

도법 스님은 ‘말을 멋지게 하는 것보다 삶을 멋지게 사는 것’을 생각한다. 거창한 말이 얼마나 삶을 어리석게 만들고, 되레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지 알고 있다. “요즘 금강경을 가지고 다니면서 읽고 있어요. ‘언어에 속지마라, 구속당하지 마라, 관념놀음이다.’ 일관되게 ‘관념의 타파’를 말하고 있어요.” 달마가 ‘성스러움은 따로 있지 않다’라고 했을 때, 몸을 관통하며 가로지르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를테면 ‘부처의 똥보다 부처가 더 거룩하다 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관념에 사로잡히면 삶은 왜곡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도 그것을 잘 못 보는 거예요.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을 떠벌리는 것보다 한 걸음을 내딛는 실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막혀있는 시절을 살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평지돌출’한 것이 결코 아니다. 성찰하지 않고 조급하게 눈앞의 이익을 얻으려는 풍토에서 생긴 모순의 상징일는지도 모른다. 지금 꽉 틀어막힌 단절을 경험한다. ‘소통’이란 말은 넘쳐나는데 ‘소통’은 없다. 정직하지 않고,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민주주의에 대한 상식과 조심스러움이 없는 이 시절을 살아내는 지혜를 생각한다. “지금 이 시대가 지식과 재주도 많아지고 똑똑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더 참되어지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건 똑똑한 것과 상관없는 것이에요. 참됨이 되레 빈곤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 엄청난 아픔을 겪고 있는 거예요. 우리 삶이 참되어지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들여다보아야 해요. 그것이 지금을 살아내는 힘이죠.”
날마다 탁발순례를 시작하고 마치면서 ‘생명평화 백배서원’을 한다. ‘진리가 삶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첫 번째 절을 올립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임을 믿으며 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삶의 근본을 모르고 사는 나의 어리석음을 돌아보며 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 내가 밝힌 생명평화의 등불로 인해 온 누리의 뭇 생명들이 진정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발원하며 백 번째 절을 올립니다.’ 서로에게 절을 올리면서 돌아보고 다짐하며 다시 걷는다. 지금도 길에 있다.


출처: http://jaga.or.kr/zb/view.php?id=reader&no=726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TAG
more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