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윤행석
‘프로그램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고운정 미운정 들고,
헤어지는 광주MBC PD입니다.
현재 광주MBC <신얼씨구학당>을 만들고 있습니다.

진도 오일장에선 입 벌린 사람마다 민중예술가

▲ “나는 창(唱)은 창인디 돼지 곱창이여.” 김이영 어르신.
ⓒ 윤행석

확실히 다르다. 노래를 잘한다. 우리 민족 정서로 신명이 많다는 것. 그것을 “정말 맞아”공감하게 하는 곳.  2·7일로 열리는 진도 5일장이다.
말 한마디 부침새도 어쩜 그렇게 귄이 쫙쫙 흐른가 모르겠다. ‘던지는 말을 받아먹는 것’이 다르고 ‘받아서 내놓는 것’이 다르다.

장이 서면‘오리지날’ 방식으로 튀밥 튀는 일로 자식들을 키웠다는 오명복(85·진도 의신면) 할아버지. 노래는 안 내놓고 연신 튀밥기계를 돌리며 애를 태우더니 나지막한 목청으로 응답하신다. “말은 가지고 네 굽을 치고/ 임은 날 잡고 놓지를 않소/ 석양은 재를 넘구요/ 나의 갈 길은 천리로구나/ 임하야 날 잡지 말고서 지는 해를 붙잡아주렴.” 이런 때를 대비해서 준비한 밑천이라도 된 듯, 이 노인의 낮은 음성이 감미롭다.

말 한마디 부침새도 귄이 쫙쫙 흐르고
오토바이를 타고 장구경을 하던 김이영(78) 어르신의 ‘말 받아내는 법’도 그런 식이다. 노래 한자리 내놓으라 했더니 “나는 창(唱)은 창인디 돼지 곱창이여” “떨어진 구두창!”이라며 일단 한자락을 깐다. 역시 밑천 한자락은 갖고 있다.

▲ “사람이 살면은∼/ 몇 백 년이나/ 사드란 말이냐∼.” <육자배기>를 내놓은 한남주 어르신
ⓒ 윤행석

“어화 청춘 벗님네들 백발 보고 웃들 마소/ 어제 청춘 오날 백발/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물이라도 건수가 되면 노던 고기가 아니 놀고/ 꽃이라도 낙화가 되면 오던 나비가 아니 온다.”
“나∼이나이나∼ 나∼이나이나∼”구음(口音)을 하던 한남주(76) 어르신께 옛 노래를 청했다. 나오는 소리가 “고나∼ 헤∼”였다. 산등성이를 못 넘을지라도 <육자배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면은∼/ 몇 백 년이나/ 사드란 말이냐∼”글자로 적으면 16자밖에 안 되는, 이 별것 아닌 노랫말에 깃든 공력은 녹록하지 않다. 결국 어르신은 등성이를 넘지 못하고 말았다.    

▲ “아이고 안돼 못하겄네” 하면서도 끝까지 <흥타령>에 <육자배기>를 해낸 김후길 여사.
ⓒ 윤행석

▲ 산전수전의 뻥튀기 경력을 자랑하는 오명복 할아버지.
ⓒ 윤행석

이름부터가 진도 냄새를 물씬 풍기는 김후길 여사(65·진도 임회면)가 진도 5일장의 ‘눈’이었다. 마이크를 대자 “뭔 뜬금없이 노래가 나오겄소?”하더니 바로 입을 마이크에 바짝 댄다. 남도 소리 <흥타령>이다.

“푸른 풀이∼/ “아이고 안돼야”/ 우거진 골짝/ 내 사랑이 묻혀 있네/ 진이여 내 사랑아/ “아이고 안돼 못하겄네”/ 자느냐 누웠느냐/ 불러봐도 대답없고/ 어여쁜 그 모습은/ “안 나와∼”/ 어디를 가/ 땅 속에 뼈만 묻혀/ 나오는 줄 모르네그려/ 잔을 들어 술 부어도/ 잔을 받지를 아니나 허네/ “아이고 나 못하겄어 챙피스러”/ 아이고 데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중간중간에 계속 “안돼 못하겄네”하면서도 끝장을 본다. 이어부른 <육자배기>도 같은 요령이었다. “고나∼ 헤∼/ 내 정은∼ 청산이요/ “아이고 안맞아 박자가”/ 임의 정은 녹수로구나/ 녹수야∼/ “아이고 나 안할라 그냥”/ 흐르∼건만/ 청산이야 변할쏘냐 /“아이고 여러라 그만 해”/ 고나 헤∼”이런 식으로 <육자배기> 역시 완주를 했다.

<흥타령> <육자배기> 주옥같은 노랫말이 입에서 줄줄줄
애완견처럼 진돗개 대신 새끼 돼지를 끌고 다니던 조명옥 어르신(67·진도 고군면). 노래 한자리 청하는 말에 바로 “흥타령 하까?”하고 받는다. 꼭 자신만만해서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어르신의 밑천도 허하진 않다. “잠아 오너라∼/ 한없이 잘란다∼/ 행복도 나는 싫고/ 이 세상도 나는 싫으니/ 한없이 잘란다 헤∼.”짧고도 간결한 <흥타령> 한토막.    

▲ 흥타령을 부르는 조명옥 어르신.
ⓒ 윤행석

어떻게 저런 <흥타령> <육자배기>의 주옥같은 노랫말이 이 양반들 입에서 줄줄줄 흘러나온단 말인가. 매끄럽게 쭉 뺀다면 멋이 없으리라. 평생 농사짓고 노동에 허리 휘게 살아왔을 것 같은 어머니가 못한다며 엄살떨면서 해내서 멋진 것이다.

도대체 진도 사람들에겐 어떤 DNA가 들어있기에 저토록 멋있단 말인가. 진도 사람들에겐  분명 내륙 사람들과 다른 유전인자가 흐르고 있는 것만 같다. 

 


"전라도의 힘 전라도닷컴을 지켜주세요" >> 전라도닷컴 후원 신청하기 <<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TAG
more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