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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선생의 비폭력주의 사상
김종철(녹색평론)



선생님을 실제로 뵙고 가르침을 얻었던 많은, 그러나 제한된 사람들의 범위를 벗어나서, 이제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은 우리 시대의 큰 스승으로 우리 마음에 살아 계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백년 전 지금보다 훨씬더 혹독하고 앞이 보이지 않던 시대에 이 땅의 풀뿌리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고, 사람 사는 근본도리를 가르쳤던 해월 최시형 선생이 지금 단순히 동학이나 천도교인들의 스승이 아니라 이 겨레, 이 나라 사람들 전체의 스승이듯이, 무위당 선생의 자리도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거창한 수준에서보다는 무위당 선생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분의 모습에 대한 기억이 저 자신에게 갖는 의미를 잠깐 언급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제가 관계하는 출판사에서 <나락 한 알속의 우주>가 나왔을 때, 저는 주변의 아는 사람들로부터 책의 표지가 참 좋은 느낌을 준다는 이야기를 꽤 들었습니다. 제가 엮어내는 책들이 늘 재생지를 쓴다든지, 편집기술의 부족 등으로 책의 외양이 볼품 없다는 것은 늘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위당 선생의 말씀을 모아서 엮어낸 이 책만은 똑같은 지질과 판형인데도 조금 다른 느낌을 주는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선생님 특유의 인자한 모습이 담긴 표지 사진 때문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을 사진으로라도 그 모습을 뵈면 누구라도 마음이 평화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지나온 역사는 긴 고난의 세월이었기에 이 땅에는 실로 많은 스승들이 존재하여 왔습니다. 특히 서양으로부터의 충격으로 삶의 근본이 흔들리 기 시작한 이른바 근대의 여명기 이후 비참과 고통 가운데서도 결코 꺽여 질 수 없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사색과 실천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더욱이 강자의 지배 밑에서 오랜 세월 곤욕을 치루지 않을 수 없던 처지에서, 그러한 사색과 실천이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힘을 기르고  경쟁력을 높여야 할 필요성을 말하는데 바쳐진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더러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 특히 근대 선각자들의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부국강병론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떻게 보면 역사적으로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까지 필연적이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듯이 근본적인 전환의 시기임이 분명한 듯 합니다. 한 세기가 가고 다른 세기가 온다든가, 구세대가 물러나고 새 세대가 출현한다든가 하는 역사에서 늘 보아왔던 단순한 이행기가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지구상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의 분리, 이원론적 사유의 지배, 그리고 무엇보다 이른바 문명사회가 출현한 이후 지금까지 인류사회를 지배해 온 폭력주의적 문화 전체를 근원적으로 묻지 않으면 앞으로는 단순한 생존조차 불가능할 것이 틀림없는 상황에 우리가 처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보다 크고 보다 많은 것을 무조건적으로 탐하는 욕망의 구조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입니다. 무위당 선생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바로 이런 의미의 해방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께서 생애의 특히 후반기에 한살림의 사상을 이끌어 내고, 실제로 제자들과 함께 풀뿌리 민중 속에 호혜적 경제 생활 조직을 실현시키는 일에 진력하신 일은 투쟁과 경쟁이 아니라 협동과 연대가 새로운 삶과 문화의 기본 원칙임을 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개인주의적 자아 개념에 갇혀 세상으로부터, 타자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열, 고립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끊임없이 선생님은 강조하였습니다.

무위당 선생의 가르침에는 결코 현학적인 데가 없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지식과 학문의 스승이 아니라 정신과 도의 스승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에게 있어서도 가장 큰 스승은 길가의 이름 없는 풀 한 포기였습니다. 선생님은 언젠가 “지식을 위하는 사람은 이익에 대하여 생각하지만, 도를 위하는 사람은 손해를 즐겁게 받아들인다” 라는 노자의 말을 인용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의 시선은 언제나 밑바닥 풀뿌리 민중의 삶에 가 닿아 있었고, 그 마음은 보이지 않는 생명과 우주 자연의 섭리에 늘 떨리는 감동을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철저한 소박성, 근원적인 겸허함 탓에 오랫동안 잊혀져 왔던 해월 선생의 행적과 사상이 무위당 선생에 의해 새롭게 조명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저는 가끔 이천식천(以天食天) 의 사상가로서 해월 선생을 우리들에게 소개한 것만으로도 무위당 선생의 업적은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너무나 시적인, 그러면서도 지극한 종교적 감수성에 깊이 뿌리를 박은 이 이천식천이라는 개념은 비폭력주의 문화를 열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들 모두에게 참으로 절실한 논리, 구원의 논리임이 분명합니다. 따져보면 해월과 무위당은 둘이 아니라 하나인지 모릅니다. 무위당 선생 속에 해월 선생은 다시 부활하신 셈이고, 무위당 선생은 해월 선생에게서 자신의 정신적 지주를 발견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제 우리들의 과제는 우리들 각자가 어떻게 하면 해월과 무위당이 가르친 근원적인 비폭력의 사상을 확실히 이어갈 것인지 그리하여 그분들의 선각적인 깨달음이 이 나라와 온 세계의 새로운 삶의 밑거름으로 쓰여지는데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숙고하는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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