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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끝내 징계받은 설은주 유현초 교사의 등굣길


“멀리 안 가요. 금방 돌아올 꺼예요”
시험 선택 존중 ‘해임’ 담임과 학생 마지막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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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현 기자
아이들과 짧은 만남을 한 설은주 교사가 동료 교사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교실을 빠져나오고 있다.
유영민 기자

“현지는... 잘 안된다고... 속상해하지 말고. 다 잘하는... 것은 없어.
 하나만 잘 해도 그것으로 된 거야.”
“수성이와 홍이는 자꾸... 싸우지 말고.”
“박영진... 니가 전학 와서 너무 좋았어.”
“... 네!”

선생님은 흐르는 눈물에 목이 메여 자꾸 말이 끊어졌다.
그래도 29명의 아이들 한명한명의 이름을 모두
부르며 당부 아닌 당부를 했다.

아이들도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눈물을 한 번 훔치고서야 입을 열었다.

“자꾸 고개 숙이지 마세요. 고개를 들어 얼굴을 봐야 할 것 아냐.”
안경 뒤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17일 오전 8시50분 서울 유현초등학교 6학년2반 교실.
9시에 시작하는 1교시 종도 울리지 않았는데
아이들과 선생님은 때 아닌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인 설은주 교사(28)가 전날인 지난 16일 밤9시께 ‘징계통보서’를 받아 이날부터는
행정상으로는 교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장의 결재를 받지 않은 채 가정통신문을 발송해 학부모들에게 자녀들을 평가에
불참하도록 유도했다”며 설 교사를 ‘해임’했다.

슬픈 이별을 알고나 있는 듯 서울 유현초 6학년2반 학생들은 시종 울음을 터뜨렸다. 유영민 기자

설 교사는 지난 10월14일과 15일 이틀에 걸쳐 치러진 일제고사에서 29명의 학생 가운데 각각
11명과 8명의 학생들이 선택한 체험학습을 허락했다.

그러나 설 교사가 보낸 것은 ‘가정통신문’이 아닌 ‘담임편지’였다. 그리고 ‘유도’가 아닌 일제고사를 볼 지,
안 볼지를 학생과 학부모에게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그 선택을 존중해 체험학습을 인정했다.
그런데 서울교육청은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체험학습 가서 헤어지게 된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그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예요.
미안한 마음이 있다거나 안 됐다라고 생각하는 건 잘못한 사람에게 하는 거예요.
당당하게 어깨 펴고 복도에서 다른 선생님들 만나도 눈치 보지 말고 알았지?”

설 교사의 걱정은 벌써 학교에 남겨질 아이들이 이번 일로 받을 상처로 향해 있있다.
교실은 재잘거리는 소리 대신 ‘훌쩍훌쩍’ 콧물 소리로 채워졌다.

“공부하는 과정으로 생각하세요. 그 과정에서 배우기만 하면 되요. 힘들지만 꼭 배우세요.
올해 여러분을 만나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재미있었어요. 방학 잘 보내요.”

다시 눈물을 닦았다. 오른손에 든 손수건은 이미 흥건히 젖었다.
복도에서 지켜보던 정근진 교감선생님은 2번이나 앞문을 열어 “이만 하면 됐지, 빨리 끝내.
설 선생”이라며 재촉했다.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설 교사는 앞문이 아닌 교실을 가로질러 뒷문으로 향하다
끝내 소리 내어 울음을 터트렸다.
설 교사를 지지하며 1인 시위를 해온 심현영 교사와 김경숙 교사가 설 교사 등을 감쌌다.
그리고 “꼭 이 학교로 다시 돌아와야 해”라며 함께 울었다.

침착한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는 설은주 교사. 유영민 기자

심현영 교사는 “매일 아이들과 놀아주고 고민 해결해 주고 수업 준비 열심히 하셨다.
정말 강한 선생님이시다. 이렇게 좋은 선생님이 왜 학교에서 쫓겨나야 하냐”며 “꼭 돌아와야 한다.
돌아오게 만들겠다. 내년 3월 다시 이 학교에서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말했다.

눈이 붉게 충혈된 천믿음 군은 “선생님이 글쓰기 공책을 걷으라 하셨어요.
끝까지 저희들만 생각하세요”라며 “제가 하고 싶어 한 체험학습이 그렇게 잘못된 거예요?
방학과 졸업식도 함께 못하게 하고.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며 다시 얼굴을 묻었다.

민진이 어머니인 2반 학부모 노은란 씨는 이러한 상황을 복도에서 지켜봤다.
노 씨는 설 교사를 “열의가 정말 좋은 분”이라며
“딸이 쉬는 시간에 질문을 해도 친절히 다 답해줬다고 했다.
14일 날 체험학습을 보냈고 15일은 시험을 치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체험학습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 씨는 “해임도 그렇지만 이렇게 갑자기 아이들과 떼어놓는 것은 너무 부당하다.
너무나 좋은 선생님이다. 빨리 다시 돌아오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수업을 위해 교실로 향하는 설 교사를 막아서는 학교 관계자. 유영민 기자

고석천 학교장과 정근진 교감에 떠밀려 아이들을 뒤로 하고 교문 밖에 선
설 교사는 “이제 저는 이 학교 손님이예요”라며 애써 웃었다.

설 교사는 “체험학습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상상해 봤는데
그 상상을 뛰어넘는 결과가 나와 당황스럽다”며
“시험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히고
 또 책임지는 과정에서 많이 배워나가는 공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편안한 공간으로 주눅 들지 않고 누구나
다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밝히며 “아이들에게 미쳐 쓰지 못한 편지를 써야겠다”고
설 교사는 말했다.

그리고 걱정스레 자신을 바라보는 학부모들에게 “괜찮습니다.
꼭 다시 돌아올께요”라며 손을 맞잡았다.

설 교사가 자신이 1년 내내 아이들과 부대꼈던 교실에 발을 들여놨던 시각은 오전 8시34분.
그리고 복도로 나온 시각은 오전 9시20분이었다.
원래대로 수요일이면 4교시를 하니까 낮 12시10분까지 수업을 하고 함께 점심을 먹었어야 한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얼굴을 맞댄 시간은 채 1시간은 되지 못했다.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을 1주일 앞두고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짐 싸는 모양새’로 아이들과 눈물의 만남
짧은 만남도 허락지 않은 서울교육청
수업을 위해 교실로 향하는 설 교사를 막아서는 정근진 교감. 유영민 기자

설은주 서울 유현초 교사와 아이들의 1시간도 채 안 되는 마지막 짧은 만남도
학교장과 교감 학교관계자들의 방해로 수월하지 않았다.
심지어 만남 자체도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설은주 교사에 따르면 징계통보서를 받은 때는 지난 16일 밤9시께.
그것도 유현초 교감과 6학년 학년부장 교사가 직접 집으로 찾아와 전해 줬다.


그리고 “이제는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설 교사에게 말했다.
이에 설 교사는 “그것도 지침이냐.
후배 교사가 마지막으로 아이들과 인사하는 시간도 막을 꺼냐”고 따졌다.
그리고서 아이들과의 마지막 만남을 ‘부탁’해야 했다.


설 교사는
“그게 힘들다면 학교에 짐싸는 모양으로 출근할 테니
마지막으로 보고 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일인 17일 오전8시30분께 설 교사 지지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자신이 담임을 하는 6학년2반에 들어서자 정근진 교감이 막아섰다.


정 교감은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항의로 설 교사는 홀로 교실로 향했다.
설 교사는
“아침에 전화해서 하는 말이 기자들이 너무 많이 진을 쳐서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교실에 들어와서도 정 교감과 10여명의 학교관계자의 방해는 이어졌다.
먼저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하더니 이윽고 이런 상황에서는 만날 수 없다며 몸으로 밀었다.


정 교감은
“참, 너무들 하신다”며 “아이들에게 방해되니까 모두 나가달라”고 말했다.
기자들이 복도로 나온 뒤에는 창문과 문을 닫았다.


서울교육청에서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신원을 물었지만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잠시 뒤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는 사이 설 교사에게는 소중한 20여분이 흘렀다.
설 교사와 아이들의 마지막 만남은 25분에 불과했다.
1교시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설 교사는 교실을 나와야 했다.


아이들에게 방해된다던 정 교감은 이 시간도 길었던 지 2번이나 앞문을 열어
“이만 하면 됐지, 빨리 끝내. 설 선생”
이라고 말했다.


담임선생님인 설 교사와 6학년 애제자인 29명의 아이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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