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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이 내린 눈이 도로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행담도 휴게소에서 쌓인 눈으로 장난을 치며 지금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역사가 역주행하고 있다.
상품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개혁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역주행에
교육은 그 이름을 당당히 선두에 올렸다.



아이와 나는 역주행을 멈춘다. 아니 처음부터 발을 디디지 않았다.
독일에서 낳고 자랐던 아이인지라 이 나라 교육에 적잖이 당황했고,
같은 길을 걷지 않기로 상의했다. 그래서 아이는 자유롭다.

생각이 자유롭고 삶이 자유롭고 관계가 자유롭다.
그렇게 3년째 한국생활을 적응해 가고 있다.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서산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올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맘껏 뒹굴고 상상력을 펼쳐야 할 아이들이 획일이라는 틀에 갇혀,
그것을 쫓아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사회는 점점 더 그런 경쟁을 고착화하고 있다.

나와 내 아이들은 공교육에 머물 것이다. 하지만 따라가고 싶지 않다.
공교육이 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한 발씩 걸음을 내 딛을 것이다.

많은 분들이 묻는다.
아이에게 부모의 생각이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냐고.
한 가지 결정을 위해 수없이 의견을 교환하다.

정말 중요한 결정은 마지막 순감까지도 아이의 의견을 다시 확인한다.
이번 일제고사가 그렇다.
다른 말이지만, 아이를 아는 사람들은 그런 질문은 생각지도 않는다.


1시 20분, 교실을 떠나 함께 한 철새체험을 마무리한다.
철새를 구별하며 우쭐해하고,
나르는 기러기떼를 보며 환성을 질러대던 아이들은 오늘 점수로 자신을 규정하는
시험지 대신에 훨씬 소중한 것을 얻었다.

다시 한 번 길을 따라 올라가며 철새를 보고 싶은 마음을 아쉽게 접고 자리를 옮긴다.
아이는 오늘 하루 그만큼 상상력과 삶이 자랐을 것이다.


(노랑부리저어새 무리가 날아오르는 순간) 

(날아오른 노랑부리저어새와 쇠오리, 휜빰검둥오리 떼) 

이명박 정부 들어 가장 심심찮게 듣는 말이

아이의 친구들에게서 문자가 한 번씩 날아온다.
친한 친구들이지만 문자가 올 때 외에는 다시 철새에게 빠져든다.

한 아이는 서산까지 내려와 철새에 빠져 있고,
그 아이의 친구들은 일명 일제고사를 보고 있다.

역주행하던 교육정책은 결국 아이들에게 획일적인 학습의 요구와 경쟁이란 이름으로
아이들 하나하나를 전국적으로 줄을 세워 버렸다.

그로 인한 부작용은 누가 어떻게 감당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부모들은 조바심으로 학원문을 두드리게 될 것이고,
아이들은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건강권과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

초중등학생이 경쟁 때문에 자신의 건강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회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백로의 화사한 몸짓이 아름답다) 

 
(망원경으로 철새를 관찰하는 큰 아이와 작은 아이) 

“10년 만에 최고로.... 10년 만에 최저로..., IMF이후 처음으로...” 등이다.

지금의 우리의 경제나 사회가 10년 전,
IMF전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지표로 보여줄 때 나오는 말들이다.
 

10년, 12년이 짧은 시간인가, 그렇지 않다.
그로 인해 당하는 국민들의 삶이나 느끼는 마음의 어려움은 너무 크다.
하지만 이건 아무 것도 아닌 분야가 있다. 교육 분야가 그렇다.

무더기 교사해직은 정확히 22년 전으로 돌아갔다.
근현대사 교과서를 비롯한 극우보수이념 정책은 40-50년 군사독재의 시절로
단번에 비행해 버렸다. 일제고사가 그 중심에 꿋꿋히 서 있다.


아이의 일제고사일이다.
나는 역사가 이념이나 선도하는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경우 잠시의 반동은 있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역사는 걷는 사람만큼 걷는 사람의 생각만큼 진보하게 된다.
들뢰즈의 말처럼, 차이에서 긍정적 생성을 만들어내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이
역사를 진보하게 하는 유효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와 상의했고, 체험학습을 선택했다.


23일, 서산 천수만의 간월호로 향한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 그리고 나 세 사람의 단촐한 체험학습이다.

제도권 교육의 파워, 그 안에서 한 발을 빼는 순간 내 아이에게 미칠지 모르는
막연한 두려움이 이번 어김없이 힘을 떨쳤다.

함께 가기로 한 아이의 친구들이 마지막에 모두 포기해 버린 것이다.
부모들의 권유에 의해서이다.
무단결석이라는 엄포가 담긴 가정통신문의 위력이 한 몫을 했다.
 

오전 11시 간월호의 비포장도로는 너무 예뻤다.


울퉁불퉁한 경쾌한 촉감을 느끼며 조금 움직이자 어디선가 갑자기
겨울 철새 몇 마리가 푸드득 날아오른다.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아름다운 행복한 체험학습이.
새들의 깃털에 살짝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만큼 하루가 좋았다.


약 10여km 간월호를 왼편에 끼고 바다 쪽으로 향하는 길은 철새들의 보고였다.
수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때로는 홀로 때로는 무리지어 간월호에 한 겨울 살이를
지나고 있었다. 
 

새에 모른다. 잘 모르는 것이 거의 모른다.
조류도감을 준비해서 찾아보면서 철새를 만나려던 계획이 쉽지 않은 것.
조류도감을 뒤적이고 망원경으로 자세히 보지만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지인 한 분께 전화를 한다.
새로운 새를 만날 때마다 색깔과 생김새 서식하는 곳을 설명하고 어떤 새인지 묻는다.
간월호의 철새생태에는 전문가이신 지인 분은 조금도 불편해 하지 않고 하나하나
설명해주신다.

십여차례 통화를 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새들을 구별하고 그 특성을 공부하며 하나씩 찾아보는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분이라 고마운 마음만 담는다.

꽤 긴 거리를 아이들은 열심히 뛰고 걷는다.
차로 이동하면서 보려고 했던 것이 나 혼자 차량 이동조수가 되어 버린다.

처음에는 막막하던 철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도무지 차로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차로 돌아오는 시간은 중간 중간 중요한 메모를
하기 위해서일뿐이다.

철새를 따라 뛰고 달리고 다시 한쪽에 무리로 나타난
철새에게 놀라고를 반복하면서 너무 행복하다.  


(논에서 날아오르는 큰기러기 떼) 

(물 가운데 서 있는 도도한 외가리) 

 
(그리고 물 위를 낮게 날으는 외가리의 아름다운 비행) 


(큰 고니의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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