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정치연대, 그 역사가 마감됐다.
초록의 도전, 여전히 길에 있다
초록정치연대의 역사를 마감하며
"주객관적 한계 넘어 새 길 모색"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지식인, 생활인들이 중심이 돼 ‘아토피 정치’, ‘생활정치’ ‘풀뿌리정치’ 등을 내세우며 한국에서 ‘녹색당’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초록정치연대의 역사가 마감을 했다.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초록정치연대는 지난 7월 12일 총회에서 주객관적 여건의 어려움과 창당실패에서 쌓인 피로감, 상처로 조직을 해산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는 계속해서 초록당 창당을 모색할 ‘초록당사람들’이 제안되었다. 현재 가칭 초록당사람들(준)은 앞으로 어떻게 그간의 한계를 극복하여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밑그림을 그릴 지를 고민하고 있다.
초록의 지역정당 창당론
초록정치연대의 역사는 2002년 지방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민사회단체 출신의 지방의원 배출이 계기가 되어 자신의 정치를 녹색정치로 삼고, 가칭 ‘녹색정치네트워크’ 결성을 목표로 ‘녹색정치준비모임’이 만들어졌다.
특히 초록정치연대의 ‘히트’로 회자돼 온 ‘순번제 운영위원제도’가 이 때 도입됐다. 이 제도는 모든 회원은 운영위원을 할 의무와 권리가 있고,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 제비뽑기를 통해 돌아가면서 운영위원이 되는 제도이다. 녹색가치로써 대안정치를 표방했다면, 관료제와 위계제를 극복한 평회원 중심의 대안적 조직운영원리를 실현하고자 애썼던 셈이다.
초록정치연대는 8개의 지향가치를 ‘생명, 평화, 풀뿌리, 지구, 나눔, 미래, 성평등, 다양성’로 정리하고, 회원중심의 발랄한 활동을 자원삼아, 가치와 정책, 활동, 조직원리에서 모두 참된 대안을 구현하는 초록정당을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찬 의지로 힘차게 출발했다.
그 로드맵으로, 2006년 지방선거 참여를 통해 초록정치를 실현할 지역적 토대를 마련하여 철저히 풀뿌리원칙으로 창당하겠다는 포부를 제시했다.
이른바 ‘지역정당 창당론’ 구상은 2005년부터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그것은 서울에서부터 지방정책의 대안을 만들어 변화를 끌어내면서, 서울지역당을 시작으로 전국적인 지역정당들 간의 연대로 창당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당시 서울지역 시민사회단체 녹색교통, 도시연대, 문화연대 등을 비롯한 10개의 단체로 구성된 ‘서울시민연대’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그해 하반기에는 이듬해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초록정치연대의 정치세력화 방안에 대한 본격적인 토론이 진행된다. 이로써 ‘서울지역 풀뿌리초록정당’ 만들기를 의욕적으로 시작했으나, 기대했던 당원수를 못 채우고 중단됐다.
곧이어 2006년 지방선거를 맞이하여 다양한 풀뿌리, 초록후보들이 모두 참여하는 네트워크 형태를 통해 선거에 임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창당하자는 구상으로 전국 각지에서 총 21명의 후보를 출마시킨 ‘풀뿌리초록정치네트워크’(약칭 풀초넷)을 결성한다. 하지만 정당공천제라는 제도적 장벽과 한나라당의 광풍을 못 이겨내고 단 2명(과천시, 춘천시)의 당선자를 제외하곤 전원이 고배를 마셨다. 이로써 더 이상 창당논의를 지속시키지 못했다.
이처럼, ‘지역정당 창당전략’이 좌절되면서, 초록정치연대는 중앙차원에서 ‘메시지’를 발신하는 방식으로, 2008년 총선에 참여하여 제도정당으로 존립하자는 새로운 창당제안서를 창당특별위원회로부터 건네받음으로써 새 국면을 맞이한다.
그 계획은 ‘초록정당을만드는사람들’에 의해 추진되었고, 2007년 5월 31일 시민사회단체에게 초록당을 함께 만들자는 제안을 공식적으로 했다. 그들은 창당제안서를 가지고 시민사회단체와 지방회원들을 전국각지로 밤낮으로 만나 수차례의 대화와 토론을 이어나갔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감하나 시기상조’라는 반응이 되돌아왔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시민사회운동으로부터 초록당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을 받아냈고, 동의 절차를 밟았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시민사회단체가 창당의 초기주체가 되기에는 어렵다는 인식에 이르렀고, 스스로 행동에 옮겨야 하는 다음 순서를 이어가야만 했다.
2007년 10월 20일에 서울 향린교회에서 100여명의 초록당 창당씨앗(발기인)들이 모여 ‘초록당창당준비위원회’ 발족식을 연다. 아울러 신선함과 가벼움이란 양극단의 평가를 동시에 받았던 ‘초록당 대통령후보 선출대회’도 함께 열린다. 이 대선캠페인에서는 한국의 개발성장 기조에 반기를 들고 생명평화가치를 드러내는 상징후보들(도롱뇽, 동물, 밥, 자전거, 어린이, 건강환 뫔)을 통해 초록당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전달했다.
“수명 다한 틀은 해산”
지방선거부터 누적된 내부동력의 소진과 대선시기와 창당이 겹친 시기적 한계 등으로 창당은 성공하지 못한다. 2008년 총회에서 결론적으로 ‘조기창당론’이 무리였다는 총평을 내렸다.
이와 함께 대선 이후 나타난 ‘진보진영의 재구성’ 과정에 적극 대응해야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되었다. 그 결과 초록당창준위를 해소하고 초록정치연대의 새 진로 모색을 위해 총선이후 독자창당, 연대창당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고 사회당, 진보신당 등과 가능성을 타진하자는 것으로 논의의 가닥이 잡혀졌다.
사회당과 연대창당 모색은 ‘초록정치공동위원회’라는 연대기구를 통해 창당 가능성을 탐색했다. 진보신당과는 진보신당이 창당되는 과정에서 논의주체로의 참여를 허용하였다. 초록과 진보가 함께 하는 정당을 바라는 회원들이 집담회를 열고 진보신당 참여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켜 보려했으나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거칠게 말해서) 초록당이 독립당으로 존재하는 게 적절하다는 게 간접적으로 드러난 중론이었던 것이다.
결국 초록정치연대는 ‘수명이 다한 틀’을 해산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일부에서 창당을 계속 이어가자는 그룹들이 현재 가칭 ‘초록당사람들’(준)모임으로 길 찾기를 모색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사방에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이 시절에도 한줄기 빛을 찾으려는 그들의 노력이 아무쪼록 머지않아 주변에 희망의 길을 안내하길 바란다.
*이글은 시민사회신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