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가 누구야
오체투지 열이레째 - 순례길, 눈물이 흘렀습니다
흰그늘
2008. 9. 26. 10:06
오체투지순례소식( 22일차/9.25) -고단한 순례길. 눈물이 흘렀습니다. |
글쓴이 : 불교환경 날짜 : 08-09-26 09:34 조회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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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단한 순례길. 눈물이 흘렀습니다. -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 그것은 차별하지 않아야 가능합니다. 남성과 여성에 차별, 남북 북의 차별이, 가진자와 못가진의 차별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인종과 인종의 차별이, 지역간의 차별이 없어야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 비정규직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기륭전자의 한 노동자가 그리운 얼굴을 떠나 먼 안식의 길로 떠났습니다. 그의 지난하였던 삶에 비추어진 우리 사회의 서글픈 모습을 위해 기도합니다. <순례길. 눈물이 흘렀습니다.> 오늘 순례길에서 한 성직자가 눈물이 흘렀습니다. 순례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순천 하늘씨앗교회에서 오신 한동수 목사님과 구례 수평교회에서 오신 김광철 목사님이 하루 순례길에 동참하기 위해 도착하였습니다. 순례단이 잠시 쉬는 지점에 미리 도착하신 한동수 목사님. 멀리서부터 느리게 빗물이 고여있는 지점을 오체투지로 다가오는 두 성직자를 보더니 눈물을 보이며 급기야 몸을 돌립니다. 두 성직자가 쉬는 지점에 도착하여 한참을 쉬는 동안에도 인사조차 못하고 눈물이 고인 상태로 바라보기만 합니다. 지리산에서 구례지역을 통과하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순례단보다 먼저 아침 출발장소에 도착하고 하루 길을 함께 걸었던 분들이기에 도착 소식을 전하니 신부님과 스님이 인사하고자 일어났으나, 마주보지 않고 그냥 몸만 돌려 먼 산 바라봅니다. 그 모습에 수경스님이 다가가 뒤에서 살며시 안고 한참을 있습니다. ![]() 서로가 말이 필요 없습니다. 서로 갈라져 반목하여야 하는 이 땅의 현실을 가슴 아파하고, 생명 평화의 소중함이 일상에서 피어나길 기원하는 마음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조건과 차별을 인정하지 않고, 사람답게 살수 있는 공동체를 꿈꾸는 마음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 그렇게 순례길에 한 성지자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순례길. 또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순례단에는 가벼운 긴장이 흘렀습니다. 오늘 가야 할 길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그보다 오늘이 순례단 진행팀에 참여하는 한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였던 날이기 때문입니다. 마웅저((Maung Zaw 버마) 선생님과 관련한 대법원의 중요한 재판이 진행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웅저(Maung Zaw 버마)는 아침부터 순례와 관련한 물품을 준비하고, 숙소로 사용하였던 성당 주변을 청소하기에 정신없을 뿐입니다. 어제 밤에 재판이 진행되는 시간에만 전화통화를 하기위해 잠시 역할을 못하게 될 것 같다는 말을 전하더니, 아침부터 분주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역시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 순례가 시작된 오후 2시 30분. 계속 전화기를 한손에 잡고 한손에는 교통 통제봉을 들고 도로에서 차량만 주시합니다. 연락이 왔는지를 묻는 진행팀의 말에 ‘아직이요’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여전히 차량만 통제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순례단이 쉬는 지점에 도착하기 바로 전. 진행팀이 사용하는 무전기로 ‘팀장님. 됐어요. 저 꿈을 이루었어요. 하늘에서 별을 땄어요. (이 말은 버마에서는 ’내가 무엇인가 잘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로 ’아주 행운이 다가왔다‘는 말이라 합니다) 잘 되었어요.’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순례단의 무전기를 잡고 있는 사람들은 그제서야 환하게 웃고,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어리둥절합니다. 그리고 바로 쉬는 시간에 이를 전해들은 모두가 함께 박수를 치고 기뻐하였습니다. 재판 관련하여 한참을 차량에서 통화하던 마웅저 선생님이 순례단에 도착하고 두 성직자와 악수를 하고 기뻐하였습니다. ![]() 마웅저(Maung Zaw 버마). 버마 8888 항쟁 당시 고등학생으로 시위에 참가한 후 버마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습니다. 1994년 군부권력의 탄압을 피해 버마를 탈출하여 한국에 온 후, 2000년 이후 현재까지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 중이며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결성에 참여했고,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활동 중입니다.) 마웅저님은 현재 오체투지 진행팀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마웅저 님을 비롯한 버마민족민주행동의 8명은 2000년 첫 난민지위 신청 이후 불허결정과 재심청구, 행정법원과 고법을 거쳐 8년 만에 난민인정불허결정처분취소소송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확정판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정부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일만 남은 듯 합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진행팀에서 준비한 작은 케익을 밥상에 올려놓고 작은 축하파티가 열렸습니다. 새롭게 태어났다고 할 수밖에 없는 25일 오늘을 기억하기 위한 촛불이 꽃혀있습니다. 신부님과 스님의 격려와 축하 말씀 이후, 마웅저님이 눈물을 보입니다. ![]() 한손에는 신부님의 손을 잡고 또 다른 한손에는 수경스님의 손을 잡은 마웅저. 수경스님이 전해준 염주를 꼭 쥐고, 한참을 눈물을 글썽입니다. 마웅저님은 “13년 동안 부천과 서울에 오가며 살면서 9년 동안 난민신청을 했지만 좋은 결과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버어마 민주화 운동 해오다가, 최근 오체투지 순례단 진행팀에 참가하고 있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너무 기뻐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버마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며 조국 버마의 상황을 걱정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저는 한국에 대해 혼자 짝사랑만 했는데 현재 오체투지 순례단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저를 좋아해줘서 너무 기쁘다.”며 기쁨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신부님과 스님께서 축하해 주고 따뜻하게 해주었습니다. 종교가 다른 두 분, 그리고 제가 처해있는 상황으로 보았을 때 버마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종교 때문에, 정치 때문에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더욱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해야겠! .” 고 하셨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마음 고생의 한 모습을 전하기도 합니다. “승소 전에는 3개월에 한 번씩 체류기간 연장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또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아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론 그럴 일도 없어지고 이후, 개인통장, 운전면허 취득, 해외출입은 물론 자유롭게 돈도 벌수 있게 되었다.”며 개선될 사항에 즐거워 하셨습니다. ![]() 끝으로 “앞으로 한국과 버어마의 시민사회단체등과의 교류 및 운동을 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고 공부도 더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길을 떠나온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자신의 삶터와 공동체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생명평화의 길을 떠나온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의 대법원 결정이 마웅저 선생님의 고단하기만 하였던 삶에 작은 평화와 위안이 되어 평온한 삶이 이어졌으면 합니다. 마웅저 선생님은 오늘도 여전히 도로에서 순례단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교통통제봉을 흔들고 있습니다. ![]() 오늘 그렇게 순례단에는 또 한사람의 눈물이 흘렀고, 순례단 모두 평화의 의미를 새롭게 전해 준 마웅저 선생님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몸은 무거워지지만 마음은 평화롭습니다.> 오늘 순례길은 오수념 오수 휴게소 인근 월평교 지점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아침부터 보슬비가 내려 ‘오늘도 비를 맞겠구나’ 하였으나, 다행히 그리 많지 않은 비가 오전에만 잠깐씩 내렸습니다. 그러나 순례자에게는 그 비도 많은 양이었습니다. 내린 빗물이 도로에 모여 있으니, 빗물은 옷에 젓어들고 몸은 갈수록 무거워지기만 합니다. 두 성직자는 ‘괜찮다. 언제는 이러지 않았나?’라는 말을 계속하지만, 장갑은 짜기만 하면 빗물이 흘러내리고, 쉬는 시간 가슴보호대와 상의의 빗물을 탈수하기 바쁩니다. ![]() 순례단의 몸은 고달프지만, 오랜만에 갈증을 해소한 대지는 빛납니다. 안개를 머금은 산야는 빛을 발하고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환해집니다. 그래서인지 쉬는 시간 두 분의 표정은 밝기만 합니다. ![]() 비가 오는 날이라 몸은 더 고달프지만 함께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평화의 마음은 환하기만 밝기만 합니다. 잠시 짬의 시간마다 근육을 풀어주는 시간에는 고통스러운 얼굴이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환한 얼굴로 마음을 나눕니다. 쉬는 시간. 한 꼬마가 다가와 사탕을 전해줍니다. 그 마음이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 오늘 순례단은 군평리와 봉천교, 봉천역(전라선)을 지나 봉강리 덕재라는 지역에 도착하여 하루 일정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순례단은 여전히 17번 국도 상에서 무던히도 오가는 차량을 벗 삼아 전주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최정수 목사(임실 영천교회)님은 “어제 인터넷을 보고 알았습니다. 직접 보니 미안합니다. 특히 최근 발생한 종교차별에 대해서는 안타깝습니다. 이밖에 사회적인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제 제일주의는 갈수록 심해질 것입니다. 현 정부에서 노골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시고 순례단이 건강하게 순례를 잘 마치시기를 기원하셨습니다. 지리산 실상사 인근에 사시는 김길수(산내)님은 “오늘 비가 와서 몸이 더욱 무거우실 것이며, 이곳은 위험한 도로이기 때문에 더욱 안쓰럽다.” 이라며, 비오는 날씨에 진행되는 순례를 걱정하면서, “두 분은 새만금 삼보 일배 때부터 항상 무거운 짐을 짊어지시는 것 같다.”고 합니다. 또한 최근의 사회적 문제와 관련하여 “이명박 정부가 올곧게 사시는 분들을 가만두지 않는 것 같다”며, “최근 벌어지는 정치, 사회 뉴스를 보면 처참합니다. 꼭 오체투지를 해야 하는 세상이니 안타깝다.”고 합니다. 또한 “저도 여행길을 다니는 사람인데 경험상으로 비춰보면, 불편한 것이 진정한 사람, 생명, 평화의 길인 것 같습니다. 시골길은 불편하지만 마음이 편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길이라 생각합니다. 너무 편함만 추구하지 않으면,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고, 평화롭게 사는 길이 열린다.”고 하셨습니다. ![]() 송희철(서울)님은 “촛불 집회 때 개인적 갈등이 있었습니다. 또 내가 옳다는 생각도 떨쳐 버리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점을 순례를 통해 각성하고 수행자적 생활을 통해 자기성찰을 하고자 왔다.”고 참여 동기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분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특히 숨이 차오르는 소리를 들을 때면 더욱 참기 어려웠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두 분이 하셔야 하는지 안타깝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국민의 소리를 듣고 정치를 하라고 이명박 정부에 메시지를 던지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세상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국민들의 소리를 모아 바른 세상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하셨습니다. 끝으로 “두 분께 죄송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나서야 하는데 너무 무관심 한 것 같다.”며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송희철, 윤병일(서울) / 한성수 목사(순천 하늘씨앗교회) / 김광철 목사(구례 수평교회) / 최정기 목사(임실 영천교회) / 김길수 (지리산 산내) / 한근춘, 주성용, 방현(수원) / 최소영, 정진경(서울) / 전미숙(남원) / 강완묵, 신태근(임실 농민회)님 등이 함께 순례를 진행하였습니다. <일정 안내 - 상황에 따라 변동 가능> ● 9월 26일(금) : 오류리 이동령 주유소(시작) - 월평교회(경유) - 월평로터리(종료) ● 9월 27일(토) : 월평로터리(시작) - 임실제일교회 앞(경유) - 임실역 인근(종료) ● 9월 28일(일) : 휴식 예정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서울 잠실교당의 김인경 교무님께서 후원금과 과일, 식수 등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 서울에서 오신 정진경님께서 음료수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 오수성당 서광석 신부님께서 숙박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 임실경찰서에서 교통통행과 순례단의 안전을 위해 노력해주셨습니다. * 도보순례 참가 일정과 수칙은 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