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전라도닷컴 |
마이클 무어 감독이 만든 영화 <식코>(2007)는 미국 민영의료보험의 문제점을 다룬다. 강조점은 ‘민영’.
민영화된 미국의 의료보험회사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목적은 더 많은 이윤이다. 보험회사들은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장하지 않을 요량으로 열심히 일한다. 결국 다치거나 병에 걸리면 돈 없는 자는 죽어야 하고, 돈이 있더라도 어지간히 부자가 아니면 미국에서는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기업이윤 극대화 포장하는 신자유주의 허구 드러내
제니퍼 로페즈가 주연을 맡은 <보더타운>(2007)은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선 근처, 멕시코 땅에 설립된 공장지대의 참혹한 인권유린 상황을 다룬다. 멕시코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거대한 미국시장까지 포섭할 수 있는 이점이 공장들로 하여금 경계(Border)로 몰리게 만든다. 이 같은 상황을 가능케 한 ‘질서’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국가는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미국 기자 로페즈와 멕시코 대안언론 기자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이런 현실을 목숨 걸고 취재한다.
랄프 파인즈의 비극적 매력이 압권인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2005)는 아프리카를 상대로 벌이는 영국정부와 거대제약회사의 ‘실험’을 폭로한다. 의료봉사를 미끼로 아프리카 민중들은 실험에 끌려들어 가고, 이 실험은 제약회사가 새로운 약품을 보급하기 위한 병균 퍼뜨리기이다. 말 그대로 병 주고 약 주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를 추적하는 사회운동가 레이첼 와이즈가 피살당하자 그녀의 남편인 랄프 파인즈도 그 길을 따라 간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2007)는 아프리카 대륙 내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무기를 쥔 세력이 아프리카를 지배할 수 있다. 무기 구입비는 다이아몬드에서 나온다. 다이아몬드 채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무기가 필요하다.
이 악순환의 궤적에 깔려 아프리카에서는 수천 명이 죽고, 수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다. 원산지를 구분하지 않고 다이아몬드를 유통시키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분쟁지역 다이아몬드의 유통을 방지하는 ‘킴벌리협약’에 선진 40개국이 서명했지만 불법은 여전하다. 용병출신 디카프리오와 열혈기자 제니퍼 코넬리가 불법을 추적한다.
영화는 현실 벗어난 신성제국의 오락일 수 없어
네 편의 영화를 관통하는 열쇠말은 신자유주의이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공적 개입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가로막는다고 본다. 공공부문을 민영화하고 국가가 기업활동을 도울 때 자원의 최적 배분이 이뤄진다는 게 신자유주의자들의 믿음이다. 기업활동을 도우는 방법 중 하나가 노동시장의 유연화( 비정규직 양산)이고, 신자유주의의 대상범위를 지구 전체로 확장하려는 시도가 에프티에이(FTA)이다.
영화들은 신자유주의가 기업 이윤 극대화를 포장하는 허구 혹은 거짓 이념임을 폭로한다. 국가가 팔짱끼고 있으므로 개인들이 폭로의 주체로 나선다. <식코>의 감독 마이클 무어를 제외하면 이 개인들은 모두 선남선녀들이다. 랄프 피네스-레이첼 와이즈, 안토니오 반데라스-제니퍼 로페즈, 네오나르도 디카프리오-제니퍼 코넬리 커플은 가히 세계 최상급인 것이다. 영화들은 또한 긴장감 높은 미스터리 스릴러물의 형식을 차용하고, 누구나 흥미로워하기 마련인 사랑 이야기를 보너스처럼 끼워 넣는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상업영화의 틀을 지니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박은 이 코너의 몫이 아니므로 제쳐 두기로 한다. 강조하고픈 바는 신자유주의를 말하는 영화적 방식이다. 그 방식은 앞서 말한 대로 보기 편하고 재미있는 상업영화 기법이다.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는 <식코>도 끝까지 흥미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언어로 다루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가벼운 그 언어를 모두 듣고 난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진다.
한국으로 치면, 이 다룰만한 소재와 문제의식을 가지고서는 <추격자>나 <범죄의 재구성>처럼 영화를 만든 셈이다. 그것도 <화려한 휴가>와 같이 옛 이야기가 아니라 ‘광우병 소’와 같은 오늘의 이야기를 파헤친다. 그간 보여준 한국영화의 관습으로 미루어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기다려 본다. 영화는 현실을 벗어난 신성제국의 오락이 아니고, 우리라고 해서 저들이 가진 참혹한 상황에서 비껴나 있지는 않은 까닭이다.
이정우 <자유기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