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발지몽 - 한국에서 초록정치의 가능성
한국에서의 초록정치의 가능성1)
널리 알려져 있듯이 서유럽에서 초록정치는 빨강정치의 극복 혹은 대안을 의미한다. 초록은 물론 상징이다. 낡은 진보, 이미 기성권력이 되어버린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노동조합에 맞서는 새로운 차원의 진보를 의미한다.
2008년 오늘 한국에서도 초록정치, 특별히 초록정당의 창당을 중심으로 하는 선거정치는 의미와 적실성을 가질 수 있을까? 유일한 진보정당을 자부하는 민주노동당마저도 짧은 역사에 취약한 기반과 정치력을 노정하고 있는 현실에서, 더욱이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득표제라는 제도적 제약 속에서 초록정당이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1)1980년 서부독일, 2008년 남부한국
1980년 1월 서부독일의 한 도시에 250여개 단체의 회원들이 모여들었다. 페미니스트, 환경 평화 공동체운동가, 아나키스트들이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모습으로 자리를 함께 했다. 초록당의 주체들이다. 이들은 옛 빨강(red)과는 선을 그었지만, 사실 레드에 가까운 이들이었다. 68혁명의 또 자식인 레드아미(적군파)가 폭력혁명을 통해 자본주의의 전복을 꾀했을 때, 비폭력을 주요 원칙 중 하나로 내세우며 환경, 평화, 여성 등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통해 정치혁명을 꿈꾸었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대안정당의 주체들은 자신의 색깔을 핑크라고 하지 않았다. 레드와는 전혀 다르게 초록(green)이라고 했다. 차원변화라고나 할까. 질적인 변화, 즉 전환이라고 할 수도 있다. 만약 이들이 스스로를 ‘분홍’으로 ‘정의’했다면, 운동과 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었을까? 사실 레드나 그린은 상징일 뿐이다. 더욱이 한국적 맥락에서는 레드건 그린은 정서적으로 잘 맞지 않는다.2)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차원변화, 진보/보수의 틀을 뛰어넘으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것이 아닐까. 독일초록당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대안정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표면적 변신에 머물지 않고, 환골탈태가 제대로 이루어졌기 때문 아닐까.
2008년 남부한국, 초록의 정치기획은 가능할까. 유사한 점이 적지 않다. 민족 분단 상황도 같거니와 경제수준도, 적어도 양적으로는 80년 독일초록당 창당 당시보다 월등하다. 경제적 조건은 된다는 말이다. 후기산업사회의 특징이 드러나는 시점이기도 하다.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운동적 토대다. 68혁명 이후 생태, 평화, 여성 등을 의제로 하는 신사회운동이 독일초록당의 기반이 되었다면, 한국사회에서는 87년 민주항쟁 이후 압축 성장해온 한국판 신사회운동인 환경운동을 포함한 시민운동과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생활협동조합과 대안학교, 귀농운동 등의 이른바 생명평화운동이 바탕이 될 수 있다.
반면 결정적인 차이도 존재한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내각제와 대통령제, 정당명부식비례대표제와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득표제 라는 권력구조와 정치제도의 차이에서 드러나듯 한국에서는 다당제적 구조와 다양한 정치실험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대통령제와 전형적인 양대 정당 체제 하에 있는 미국의 경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많이 거론되는 것이 시민사회의 성숙도 차이. 시민의식과 문화,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인프라 등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도 한국 초록당의 뿌리내리기가 불가함을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의 초록정치의 한계와 가능성과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유례가 없는 초고속의 한국적 ‘압축성장’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정당이 생겨나고 독일의 경우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반면, 한국사회의 경우 분단상황으로 인해 이념적 배제의 역사를 경험하긴 했으나, 30여년간 숨 돌릴 틈 없이 빠른 속도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고, 결과적으로 산업사회의 과제와 後산업사회의 과제들이 압축 중첩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노동운동을 비롯한 전통적 사회운동과 시민운동, 생명평화운동 등 사회운동 전반에서 ‘따로 또 같이’ 경이적인 압축성장을 보여주면서.
요컨대 한국의 경우 독일과 다르게 사회경제적 토대와 사회운동의 압축 변화/성장에 조응하는 ‘압축 기획’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근대를 넘어서 곧장 초록으로 비약하는 가능성이 될 수도 있고, 자유주의 개혁과 노동 진보, 그리고 초록대안의 ‘대통합’과 ‘융합 진화’의 가능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분립과 연대로 이루어졌던 서유럽의 적녹동맹과 달리 한국사회에서는 공존(共存)을 넘어 무지개연대방식의 서로살림, 즉 상생(相生)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탐색 중, 아직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2)한국에서의 초록정치운동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투표장에서 초록당에 기표하는 기회를 얻기는 어려울 듯하다. 대통령선거전이 한창이었던 지난해 10월 초록당 창준위를 결성하며 오는 4월 총선 참여를 목표로 창당을 준비했던 초록정치연대가 주체역량의 한계와 객관적 조건의 미성숙으로 인해 조기 창당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좁은 의미의 초록정치, 즉 초록정당의 창당을 비롯한 제도정치 진입노력은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녹색평화당, 녹색후보, 그리고 초록정치연대 등.
2002년 지방선거에서 환경운동단체인 녹색연합의 일부 임원들을 중심으로 녹색평화당이 창당돼 서울시장 후보를 비롯해 7개 시도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내는 등 제도정치에 도전했다. 전북에서 4.8%를 얻는 등 일부 시도의 정당투표에선 적지 않은 득표율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환경’과 ‘초록’은 아직 이미지에 불과했고 대안적 가치와 전망, 정책은 명확치 않았다.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풀뿌리운동, 생명운동 등 대안운동의 지지와 참여도 거의 부재했다. 그런 탓인지 녹색평화당은 초록정치의 맥을 이어가지 못하고 선거직후 사실상 정치활동을 포기했다.
오히려 같은 2002년 또 하나의 유력한 환경운동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의 정치기획이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방선거 당시 녹색자치위원회라는 특별기구를 만들고 고양시에서 시장후보를 내는 등 전국적으로 50여명의 ‘녹색후보’를 냈다. 그리고 고양, 부산, 서울 등에서 기초의원 15명이 당선되는 성과를 얻었다. 이들 대부분은 이후 초록정치연대의 의원단으로 결합했다. 하지만 녹색자치위원회는 이후 진화된 활동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환경운동연합의 주요활동가들이 참여했던 초록정치연대에 사실상 그 역할을 넘겨주게 된다.
초록정치연대는 ‘녹색후보’의 성과를 토대로 2003년 녹색정치준비모임을 거쳐 2004년 창립됐다. 전국을 순회하며 초록정치의 필요성과 실현 방안을 토론하는 한편, 부안 핵폐기장철폐투쟁, 이라크 반전평화운동 등에 참여하고, 농업연구모임, 초록의정포럼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초록정치에 대한 공감대를 확대해갔다. 그리고 2006년 5.31지방선거에서 10명의 현역 지방의원 포함해 21명의 풀뿌리초록후보를 냈으나 기초의원정당공천제가 실시된 데다 한나라당의 싹쓸이 분위기 속에서 2명이 당선되는데 그쳤다.
2006년도 지방선거의 결과는 초록정치 실험에 좌절감을 안겨주었지만, 한편으로 ‘풀뿌리정치’조차도 무당파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란 악재가 결정적이긴 했지만, 기존정당들이 각 지역에 뿌리를 공고히 내리고 있는 현실에서 정치조직 없는 풀뿌리 초록정치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초록정치연대의 2008년 4월 총선 전 초록당 창당과 총선 참여는 사실상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정치지형의 변화 속에서 초록당이 독자적인 길을 걷기도 어렵거니와, 비교적 오랫동안 준비했고 환경단체들과 시민사회단체들과의 교감도 적지 않지만, 전폭적인 지지와 참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살림 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운동 그룹과 공감대의 폭이 넓혀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초록당의 창당을 통한 초록정치의 가능성은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창당전략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초록당의 창당을 포기하고 기존 정당, 이른바 개혁정당 혹은 진보정당에 참여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일까.
3) ‘등대’가 될 것인가 ‘주류’가 될 것인가
다시 ‘제도적 제약’이다.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가 강제하는 양당제적 정치지형 속에서 초록이건 계급이건 ‘급진(radical) 정치’가 존립할 수 있을까. 더욱이 가까운 시일 내에 집권전략을 세울 만큼 국민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을까. 전형적인 대통령제 하에서 미국의 초록당은 분명 존재하나 현실정치에서는 대안이 되지 못한다. 때문에 자유주의자를 비롯해 생태주의, 사회주의 등 다양한 진보가 민주당이라는 차선을 선택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초록과 진보의 현실적인 선택지는 사실 ‘적녹연대냐 분립이냐’ 가 아니다. ‘등대정치인가 권력정치인가’ 이다. 진보정당은 反자본의 전위가 될 것인지, ‘미국식 시장주의’ 대신 ‘유럽식 시장주의’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또 다른 정치적 주류(主流)가 될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 초록은 非근대의 길을 갈 것인지, 생태적 가치의 정치화에 만족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진보정당의 어느 유력한 정치인이 야당의 주류를 바꾸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이를테면 민중에 의한 ‘진보 주류화’이다. 물론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가까운 장래에 그것이 가능할까. ‘우향우(右向右)’ 하지 않고서도 그것이 가능할까?
옳고 그름은 없다. 융합진화와 압축 기획의 전략적 판단과 선택만 남았다. 생태, 평화, 복지 등을 중심 가치로 하는, 기존의 개혁정치세력까지를 포함한 넓은 범주의 무지개연대에 참여할 것인가, 돈의 지배로 어지러운 세상의 빛이 될 것인가. 이념형으로 보면, 앞은 사민주의에 가까울 것이고, 뒤는 체제 전환의 상상력으로 비자본주의 길을 모색하는 짙은 초록이거나 짙은 빨강의 길이 될 것이다.3) 다시 말해, 근대의 숙성을 기다릴 것인가 초록으로의 비약을 선택할 것인가. 무지개연대와 주류화를 통해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을 얻을 수도 있고, 초록과 진보가 섞여 정치적 등대로써의 역할도 득표력도 모두 잃을 수 있다.
초록이 정녕 非근대의 ‘사이 너머’를 지향한다면 마땅히 등대정치로 가야 할 것이다. 진보가 자본주의를 넘어서고자 한다면, 지구 자본주의 체제의 최상위 문턱에 선 대한민국에서는 권력정치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설사 무지개연대를 형성한다 하더라도 그때의 무지개는 하늘에 걸린 등대일 뿐이다. 초록정당이 지배정당이나 주류정당이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오히려 성장/경쟁 지상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기대한다.
사실 초록정치의 잠재적 기반인 시민운동과 생명운동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가 없는 조건에서 사실은 등대정치마저도 여의치 않다. 하지만, 정치사회적 등대로써의 역할에 대한 탐색을 계속될 것이다. ‘경제몰입’과 시장/경쟁 지상주의가 가속되는 상황에서는 특히 그렇다. 초록정치연대 창당제안서의 외침처럼. “초록대안정당의 3%는 그 자체로 희망의 기획이다. 3%의 메아리로 한국사회라는 정치사회적 생태계에 아름다운 화성(和聲)의 메아리를 불러일으키겠다는 야심찬 전략이다. 3%의 힘으로 호수 전체에 파장을 일으킬 작은 바위를 던질 속셈이다.”4)
1) 이글은 다른 이들의 글들과 함께 곧 출간될 <한국적 초록정치의 탐색>이라는 논문의 일부이다.
2) 사실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초록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동아시아적 생명세계는 청적황백흑(靑赤黃白黑)의 조화이다. 더욱이 그 중심은 황색이다. 황색은 한 없이 넓은 누런 들과 황톳길, 즉 땅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에선.
3) 거칠게, 유럽식으로 말하면, 주류화 즉 권력장악을 목표로 사민주의당으로 모두 모일 것인가 초록당을 따로 만들 것인가이다. 아다시피 유럽의 사민당은 흔하게 집권당이며, 유럽의 초록당은 5~10% 정당이다.
4) 초록정치연대는 애초 2008년 4월 총선에 참여해 3%를 얻어 비례대표 1석을 목표했었다. 현행 정당법상 전국선거에서 2%를 얻지 못하면 해산해야 하며, 3% 이상 득표할 경우 1석의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 사실 전체 299석 중 1석은 현실정치에서 거의 영향력이 없다. 이런 점에서 3% 정당은 사회문화적 상징이다. 대안적 가치와 비전의 상징. 생태공동체가 일반화할 수 있는 대안모델은 아니지만, 대안적 가치와 생활양식의 상징으로 작용한 것과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