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는 서로 기대고 산다 그래서 힘이 세다
ⓒ최수연/논07-01 강화 112cm x 157cm,2007
사진작가 최수연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이미 논길을 따라 걷는다. 그 길을 따라 가면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서글프게 담아낸 김영갑이 생각난다. 하나를 보면 둘이 겹치고, 둘을 보면 하나로 모아진다. 최수연(농민신문/전원생활 사진기자)은 전국 방방곡곡의 논과 밭을 사진에 담고 있다.
우연찮게 지인의 소개로 만나 책에 넣을 사진을 받았는데, 트리밍을 잘못해 작품이 손상(?) 되고 말았다. 사진을 다시 게재해야지 하면서 차일 피일 시간만 지나버렸다. 새벽녘 최수연의 논사진을 다시 보았다.
논과 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나는 나무라고 생각한다. 생명의 근원이자, 노동의 호흡이 살아 흘러 넘치는 마중물이다. 그런데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우리의 논과 밭은 사라지고 있다. 거대 관행논법(농약)으로 죽어간 생명들. 사람들은 환경파괴와 자연보호를 얘기하며서 나무를 연중행사처럼 심는다. 논과 밭에서 자라는 벼는 땅과 하늘을 잇어 사람과 자연과 생명을 살리는 뿌리이다. 뿌리가 송두리채 흔들리고 있다. 지역은 비어있고, 논과 밭은 지키는 사람들도 사라지고 있다.
풍경은 풍경으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실체가 있는 풍경의 진실없이는 풍경은 이미 풍경이 아니다. 하나의 길을 간다는 것. 사라지는 혹은 기억되어야 할 것을 담아낼 때 풍경은 값지다.
사라져서는 절대 안될, 그러나 사라지고 있는 논과 밭, 사람들. 기억의 뿌리로서 우리가 살려 내어야 할 가치로서 최수연의 기록이 계속 되기를 기대한다. 벼는 힘이세다. 벼를 살려내는 논은 힘이 세다. 논을 살려내는 땅과 사람은 힘이세다.
가을이다 누렇게 익은 논길 따라 마음 고향따라 길을 나서보자. 생명을 거두어 보자.
ⓒ최수연/논05-01 김제 200cm x 90cm,2005
벼(이성부)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괴로움,
이 넉넉한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