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평화 정의의 길
밑으로 기어라
흰그늘
2009. 1. 16. 13:43
밑으로 기어라
경남사천자활후견기관 실장 / 최인태
퇴근 무렵 현장방문을 마치고 들어오던 이OO복지사가 주차문제가 엉망이라며
큰소리를 내는 것이 예사스럽지가 않았다.
지금 사천자활후견기관이 사용하는 건물은 옛날 농촌지도소 건물로
사천지역 미화원들과 함께 쓰고 있는데,
올해 신규 청소차량이 2대 늘었고,
우리네 승합차도 3대 늘었으며,
참여자도 100여명이 넘는 등 규모가 커지다보니 주차문제로 자주 다툼이 있다가
급기야 오늘 아침에는 집수리 차량 주차문제로
김OO팀장과 미화원 분들 간에 언쟁이 오고간 모양이었다.
이유인 즉은 미화원 분들이 주차하지 말라는 곳에 집수리 차량이 서있었다는 것이고,
김OO팀장은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큰소리 치고,
그러자 주차 하지 말라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닌데
그럼 각자 제멋대로 세우자고 하면서 덩치가 큰 음식물 쓰레기 차를
우리들이 사용하는 주차공간에 세워두었고,
현장방문을 마치고 들어오던 이복지사가 차 세울 곳이 없자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얼른 나가보니 양쪽이 다 열이 나 있고,
지금은 너무 감정적이다 싶어 미화원 반장님께
“지금은 상황이 안 좋으니까 내일 아침에 이야기 하도록 합시다.”
하고 돌아오는데 덩치가 좋은 젊은 미화원이
“한번 두 번 애먹이냐” “각자 맘대로 주차하자”는 등
성질을 돋워 “그럼 막가자는 거냐는 것이냐”며
성질을 내자 미화원 반장님이
“조금 전에 내일 이야기 하자고 해놓고 이게 뭐냐”며
화를 내기에 (그럼 반장님과 내일 이야기하기로 했는데,
성질을 돋우는 거는 뭐냐는 얘기가 입안에 맴돌지만,
그러면 말꼬리 잡는 것 밖에 안 된다는 생각에)
“그럼 내일 아침에 이야기 합시다” 하고 한수 접고 돌아 왔다.
돌아오니 사무실 식구들은 이번 기회에 주차 선을 끗든지하여
명확히 구분을 하자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등 화해의 조짐을 찾기는 어려운 분위기여서
“왜 사태의 조짐이 있을 때 이야기 안하고,
사건을 키워서 뒤늦게 알게 하느냐”며 질책을 하고,
내일 아침에 이야기 하자며 입을 닫았다.
고민은 그때부터 였다.
한 공간을 같이 사용하면서 웃고 지내야 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맞대고 지내야 하는지.
이참에 멋있고 명확하게 해결책을 제시하여,
실장으로서의 권위도 세우고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이였다.
잠도 안 오고 뚜렷한 혜안은 떠오르지 않아 몸을 뒤척이며,
날밤을 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세상 모든 이들이 고이 잠든 새벽에 어둠과 함께 모아둔 우리네 쓰레기를
깨끗이 치우시는 분들이 누군가 ?
그러면서도 각종 위험에 노출되어 뭇 사고를 당하시고,
급기야 얼마 전에는 쓰레기에 딸려 들어가는 이물질을 빼내려다 함께 딸려 들어가는
말로 표현 못할 죽음을 당한 동료를 잃은 아픔을 가지신 분들이 아닌가.
무슨 말을 할 것이 아니라 무조건 잘못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새벽잠을 얼핏 잤다.
아침에 출근하는 길로 반장님을 찾았다.
“반장님 저희들이 잘못 했습니다.
11시에 직원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싫어하시는 일,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하겠습니다.” 하였더니
반장님께서는
“우리가 쓰레기 청소나 하고 하니 우습게보고 그러는 게 아닌가 하고
기분이 상당히 않좋았는데 실장님이 그러시니 지난 감정 서로 풀고 잘 지내봅시다.”
하였다.
재차 반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돌아와 직원회의를 열었다.
“미화원 분들은 모든 이가 고이 잠든 새벽에 일어나
우리네 쓰레기를 치워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며,
각종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하시고 얼마 전에는
동료의 비참한 죽음을 옆에서 겪어신 분들이다.
그런 분들께 주차문제로 마음을 아프게 해서 되겠는가 ?
우리 모두 그 분들이 싫어하시는 일은 다시는 하지 말고,
오히려 한걸음 더 나아가 감사함이 베인 인사를 자주 드리자.“ 하였다.
그러자 모두들 동의와 함께 집수리 팀장은
“어제 저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사과를 드리고 오겠습니다.” 해서
“남자가 일을 저지를 수는 있지만 그 뒤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평가를 달리하는데
생각을 잘한 것 같다며, 자신을 낮추면 안 풀리는 일이 없다.”고
격려를 하고나니, 엷은 웃음이 입가에 감돌았다.
그제야 비로소 장일순 선생님이 평생을 두고 하신
“밑으로 기어라”는
말씀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이해가 되면서 잔잔한 감흥이 여울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