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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 가방가게 옆 윤남웅씨의 뻥튀기 전시장. 생활과 예술이 나란히 이웃한다. |
ⓒ 남신희 기자 |
‘금산인삼 앞집 이사’. 정겨운 그림과 글씨로 가게 이전을 알리는 종이.
약초가게 아짐을 대신해 작가 윤남웅씨가 예전 가게 문 앞에 붙여 놓았다.
무엇이든 쓱쓱 그려내는 작가가 이웃이니 아짐 왈,
“재주가 이리 좋으까. 참말로 든든하요잉.”
수말스럽게 그 종이그림을 그려 건넨 윤남웅씨는 요즘 날마다 시장으로 출근한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비엔날레기간 동안 ‘뻥튀기 가게’ 주인이라 해도 좋고
‘뻥튀기 전시장’ 작가라 해도 좋을 신분이다.
전시장만 지키고 있기는 심심해 작은 평상을 노점 삼아 ‘賣畵店’이란 입간판도 내걸고
지나는 이들 얼굴을 그려준다. 작업대는 바둑판. 그동안 바둑통은 옆에서 다소곳이 휴식중.
오가던 사람들 멈춰 서고 즉석 품평도 쏟아진다. 시장에 새로이 보태진 풍경이다.
“언제 시간 나문 저짝 벼랑박에 그림 쪼까 그려주문 좋겄는디…. 비어 있응께 아심찮혀서.”
시장 골목 지나던 작가들 붙잡고 그런 청탁을 하는 가게 아저씨도 있다.
그냥 버려두고 살던 벽, 비어 있던 벽을 꾸미고 싶은 마음.
작가들이 옆에 있어 꿈꿔보는 일상의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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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신희 기자 |
시장골목 오가는 작가들의 존재 더 이상 낯설지 않고
2008광주비엔날레(9.5∼11.9) 전시 중 하나로 ‘복덕방프로젝트’가 펼쳐지고 있는 대인시장.
골목을 오가는 작가들의 존재가 시장 상인들에게도 이제 더이상 낯설거나 쌩뚱맞지 않다.
배가 고풋해지는 네다섯 시 무렵이면 누구네 가게에서 내온 막걸리에 누구네 아짐이 달달
볶아온 돼지고기 등을 놓고 벌어지는 새참판에도 작가와 상인들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비어있던 옆집에 작가들 들온께 얼매나 좋아. 문이 다 함께 늘늘이 열려 있어야 좋제.”
“사람이 워낙 없응께 원래는 여그서 저 끄터리꺼정 훤해분디, 미술 본다고 암만해도 사람들이
더 오잖애. 우리집 물건 안사가도 사람 귀경허는 것만도 오져.”
거창하게 시장활성화가 아니라, 오랫동안 비어 있던 이웃 가게에 스민 온기,
사람 드문 시장 골목을 채우는 발길들을 그리 반기는 것이다.
‘복덕방프로젝트’는 시들어가는 기운 어쩌지 못하는 구도심의 대인시장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전시다. 지역 작가들이 기꺼이 ‘호객’의 역할을 맡았다.
거기 엄연히 존재하면서도 도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존재감을 잃어가던 시장이
‘나, 아직 살아 있소’라는 말을 전한다.
생활의 지도 속에 백화점과 마트만 점찍어 놓았던 이들에게는 시장을 재발견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복덕방프로젝트’를 진행한 박성현 큐레이터는 “시장이라는 공간 안에는 과거의 생활방식이나
삶의 희로애락에 얽힌 많은 기억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시장이 지닌 역사성과 고유의 맛,
인정과 온기가 덤으로 오고가는 거래의 미덕을 돌아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제목에 ‘복덕방’이 붙은 건 예전 같으면 동네사랑방 역할을 했던 복덕방의 중매·매개 역할에
끌렸기 때문. 사람과 사람, 작가와 관객, 파는 이와 사는 이, 예술과 생활, 전시장과 시장….
단절돼 있던 많은 것들을 이으려는 아름다운 의욕이 복덕방프로젝트를 채우고 있다.
“자기 안에 갇히지 않고, 전시장내 한계성을 띤 소통에 자족하지 않고, 삶에 고급 저급이 있을 수
없듯 고급과 저급의 경계를 무색하게 만드는 생활 속 예술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박성현 큐레이터는 “시장이라는 장소성만 취하지 않고 삶 속에서 예술이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실어내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이 프로젝트의 의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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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도선수 장미란이 셔터문을 들어올리고 있다. ‘으랏차차’ 소리
가 울려나오는 것 같은 그 가게 앞. 대인시장이 기운차게 일어서길
바라는 마음 담은 구헌주씨 작품. |
ⓒ 남신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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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 여기저기 붙어있는 광고용 스티커들을 재활용해 꽃으로 피
워냈다. 닫힌 가게문이 말을 건네는 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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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거시기 파는 가게도 있고 ‘노랑파프리카’ 가게도 문 열고
시장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고 싶어서였을까. 가게 형태나 상행위를 끌어들인 작품들이 많다.
대인시장의 현실을 말해주는 ‘빈 가게’들이 전시장이 되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건넨다.
홍어가게들 옆에 자신도 홍어 뭣이라도 파는 가게인 양 천연스레 끼여든 이는 박문종씨. ‘
만만한 홍어 좆 있습니다’라는 도발적인 간판도 내걸고 그것을 본뜬 조형물을 하나씩 팔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홍어는 죽기 살기로 먹는, 카리스마 넘치는 음식이다. 그 맛만에 주목하지
않고 ‘맨맞(만만)한 게 홍어 좆’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나섰다.
‘무담시’ 이리저리 치이고 무시당하는 그것을 약자의 대명사, 곤궁하고 팍팍한 삶을 헤쳐가는
서민의 대명사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1코 2애 3날개 4살…’
대접받는 부위들 다 놔두고 특별히 홍어 거시기만을 모신 가게를 열었다.
이웃도 잘 만났다. 진짜 홍어를 파는 맞은편 덕림상회 아짐은 관람객들 손을 잡아끌고
자신의 가게로 데리고 가서 실제 홍어 좆을 보여주며 설명 덧붙인다.
“자, 요것을 봐봐. 크기도 모냥도 진짜 똑같애 불어. 나는 이날 평상 홍어를 폴고 삼시롱도
뻘로 봤는디 작가는 역시 다르더랑깨. 요런 것을 작품으로 맹글 생각을 워치고 했으까.”
홍어를 다루고 살아온 햇수가 38년이라는 영광상회 아짐도 거든다. “(작품처럼) 저 색깔일
때가 매웁도 않고 심심허도 않고 마치 맛날 때제.”
작업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소감도 건넨다. “작가들은 험한 일도 안허고 우리하곤 영판
다른 시상에 사는 줄 알았는디 작품 맹그니라 고상을 그러고 합디다. 참말로 애씁디다.”
백기영씨는 ‘피코시아닌 가게(노랑 파프리카)’를 열었다. 노란 색이 압도하는 가게. 진열된
과일도 야채도 소품도 모두 노란 색이다. 강렬한 시각적 메시지는 천연색소의 유전공학적
활용을 놓고 조작된 자연, 개조된 먹을거리들의 문제를 제기한다.
재밌는 것은 이 파프리카프로젝트가 지역별 체인점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 안양 석수시장에선
빨강 파프리카, 화성 사강시장에서는 초록 파프리카 가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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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기영씨는 ‘피코시아닌 가게(노랑 파프리카)’를 열었다. 압도하는 노란 색으로
작가의 목소
리를 전한다. 판매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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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 천장에 내걸린 ‘복덕방프로젝트’ 현수막. 열쇠모양 디자인이 전시공간을 가리켜 주지
만, 눈길 닿는 곳 어디라도 전시가 펼쳐져 있는 곳이 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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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문호씨 ‘열망’…대인시장에 보내는 응원의 마음
“내가 미술을 알가니…”라면서도 “재미져. 요새는 보기 힘든 것인께. 아무튼 가봐”라고 건어물
파는 대림상회 아짐이 강력추천한 곳은 ‘뻥’이란 간판을 단 전시장.
이제는 대인시장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뻥튀기 기계와 튀밥들로 차린 윤남웅씨의 작품이다.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다가오더니 검은 비닐봉다리를 제 손에 가만히 쥐어 주시더라고요.
뭣인고 열어봤더니 쌀이랑 강냉이 튈려고 갖고오신 것이었어요.”
그런 예기치 않은 만남과 이야기들이 전시기간 동안 쌓여 간다.
마문호씨는 버려진 폐품들을 재료로 ‘열망_천 개 만 개 꽃을 피우자’란 작품을 꽃피웠다.
쓸모 잃은 비닐푸대나 천막, 낡은 이불천 등을 모아 한 땀 한 땀 바느질했다. 숨을 불어넣었다.
이 노동집약적 작업에는 조각난 삶, 떨어져 있는 틈(사이)을 잇고 꿰매려는, 회복에의 기원이
담겨 있다.
전시장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한 작품에는 시장 사람들의 모습이 바느질한 선의 형태로
스며 있다. 저마다의 삶과 그 속에 깃든 열망들의 무늬. 대인시장에 보내는 응원의 마음이
느껴진다.
정치적 코멘트가 담긴 작품들도 한데 섞여 또 다른 열망을 드러낸다. 전시장 문을 도배한
‘일등’과 ‘광주’라는 글자들은 무등(無等) 아래 살면서 ‘일등광주’ 구호가 웬말이냐는 풍자다.
이상호씨의 전시장은 역사를 기억하는 장소다. 4·19, 5·18, 6·10, 전태일, 촛불항쟁 등을 우표나
엽서 형태에 담았다. 누구나 가져가라고 쌓아 둔 건 ‘나눔’과 ‘확산’의 의도. 마음을 나누는
그 작은 매개체들을 통해 기억해야 할 역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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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려진 폐품들을 재료로 ‘열망’을 꽃피운 마문호씨 작품 중 하나. 한 땀 한 땀
바느질에 틈을
잇고 꿰매는 회복에의 기원을 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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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집창촌’중 김현돈씨의 작품 ‘0+1’. 시장 안 상인들의 손때 묻은 살림살이들을
흑과 백
의 전시공간에 끌어들여 작품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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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집창촌’중 2층 신호윤씨 전시공간을 외국인 관람객들이 찾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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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전시를 겸한 공간 ‘즐거운 집창촌’
아예 대인시장에 살러 들어온 작가들도 있다.
작가 레지던시 프로젝트로 진행된 ‘즐거운 집(단)창(작)촌’. 신호윤·전준모·김현돈·노유승·
유재명씨 등 젊은 작가들이 3층짜리 빈 가게건물에 세들어 창작과 전시를 겸한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가파른 계단을 꿰고 오르내리고, 접어들고 꺾이고 숙이고….
눈만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하는 전시공간이기도 하다.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비좁고 굴곡 있는 구조를 오히려 매력으로 살려냈다.
신호윤씨는 “현장을 찾아들어 작업하던 ‘놀던 가락’이 있었기 때문에 시장 공간에 입주하고
작업하고 전시하는 게 새로운 실험이나 도전이기보다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쇠락해 가는 재래시장’이라는 전제를 들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시혜적인 입장에
서기보다 그저 한 주민을 자처하는 것. “파는 상행위가 생활인 분들과 만드는 창작이 생활인
작가들의 이웃으로서의 동거. 생활인 대 생활인으로서의 만남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대인시장 근처에 자리한 ‘매개공간 미나리’와 연계해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소통하는
구조로 대인시장 관련된 프로그램들도 꾸려갈 생각이다.
이번 전시에도 시장에 다가든 작업들이 보인다. 김현돈씨는 시장 상인들의 손때 묻은
살림살이들을 전시공간에 끌어들여 작품화했고, 노유승씨는 대인시장 사진을 보여준다.
익숙한 낮 풍경이 아니라 새벽 두세 시쯤의 시장이다. 적막하고 어둔 공간에 스민 빛은
대인시장의 또 다른 모습을, 내재된 희망을 보여준다.
신양호씨도 최근 대인시장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시장이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작업의
소재나 관심사도 자연스레 변화되는 걸 느낀다”며 “그 변화를 즐기고 있다”고 말한다.
이호동씨가 대인시장 안 ‘민수네 가게’의 아들 민수와 그 또래들과 함께 진행한
‘춤추는 고래’도 시장 공간에 불어온 한 변화. 아이들이 책도 보고 놀 수 있는 쉼터가
아이들의 상상력과 손길로 만들어졌다.
구헌주씨는 ‘시장구경프로젝트’란 제목으로 시장 곳곳에 벽화작업을 펼쳤다.
특히 닫혀진 가게 셔터문에 그린 베이징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 장미란 선수의 모습은
큰 인기를 누렸다. 시의적절하게 파고든 대중성이다.
“저것이 장미란인디…”라고 시장 아줌마들도 자신있게 설명을 자청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장미란이 셔터문을 들어올리는 바로 그 순간, 으랏차차 소리가 울려나오는 것 같은 그 가게 앞.
닫힌 가게들 문 열리고 대인시장이 기운차게 일어서길 바라는 마음 전해진다.
주차장 벽에 그려진 해태 타이거즈 시절의 선동렬 선수 등 예기치 않은 곳에서 작품을
맞닥뜨리는 즐거움이 있다. 닫힌 가게 문이나 무표정한 빈 벽이 ‘열림’과 ‘소통’으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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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호씨의 전시장은 역사를 기억하는 장소. 작가는 우표나 엽서 형태의 작품을
나눠주며 당신이 또다른 누군가와 ‘역사의 기억’을 나누길 희망한다.
그러니 그곳 대인시장에서 편지를 써도 좋다. |
ⓒ 남신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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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엔날레기념 티셔츠도 ‘아트상품’이란 이름으로 조명 받으며 내걸리지 않고 건어물
가게 마른 오징어랑 북어 같은 것들 사이로 끼여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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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현장 속에서 상생 꿈꾸는 작가들의 마음 빛나고
‘시장구경’의 제 맛은 해찰. 작품이나 전시장만을 애써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눈길 닿는 곳 어디라도 전시가 펼쳐져 있는 곳이 시장.
시장 상인이 나무판에 순정하게 써놓은 <홍어 상어 있습니다> <고급 남방 5천원> 같은
글씨에 마음 움직이고 단순대범하면서도 의표를 찌르는 시장만의 진열방식이 지닌 매력에
새삼 눈뜨게 된다.
그런 시장의 맛은 외국작가들에게도 통했다. 지난 9월3일 전시 프레오픈 때 시장을 찾은
외국작가들은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눈을 빛냈다. 머릿고기야 부침개야 두부야 막걸리야
걸게 차려진 잔치판이 벌어졌고 모르는 이들끼리도 한 상에 머리 맞댔다.
대인시장 아짐들은 외국 작가들에게 스스럼없이 젓가락 쥐어주며
“요것은 전라도 홍애(홍어)” “요것은 전”이라고 일러 줬다. 영어몰입교육 따위 없이도 정으로,
웃음으로, 주눅들지 않는 당당함으로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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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문종씨의 홍어 가게. ‘홍어 좆’ 설치물로 ‘만만한 게 홍어 좆’이란 말을 다시 들여다본다. 영
상 속에는 술청에 들어앉아 젓가락장단 두드리는 작가 모습이 담겨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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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신희 기자 |
일상의 공간 속으로 걸어들어온 ‘복덕방프로젝트’.
이번 비엔날레 전시중 ‘제안’ 섹션에 속한 복덕방프로젝트는 가장 관점과 열망이 분명한
‘제안’이기도 하다.
광주라는 지역, 시장이라는 공간, 전시장 바깥의 생활현장을 다시 들여다보자는.
그 제안에 걸맞게 한번 휩쓸고 지나가는 볼거리가 아니라 지역의 자산과 경험으로 축적되고,
지역을 살아가는 작가들에게 고민과 실천의 장이 되고, 관람료 없이 문턱 없이 누릴 수 있다.
노래 부르려면 노래방 가고, 전시 보려면 갤러리 가고…. 그렇게 공간도 삶도 단절되거나 조각난
이 시대에 상생과 통합을 꿈꾸는 마음가짐 역시 빛난다.
복덕방프로젝트가 시장 속으로 생활 속으로 내디딘 걸음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는다.
박성현 큐레이터와 ‘매개공간 미나리’ 등을 중심으로 대인시장 작가 입주나 관련 전시 등이
긴 호흡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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